이 정도 스토킹, 유치장 보낼 수 있나요?.."판사마다 기준 달라"

최윤아 2022. 9. 1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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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가해자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
스토킹처벌법 시행 뒤 5743건 신청돼
이중 검찰·법원 기각률 각각 12%·5%
기각 이유 모호해 피해자들만 속앓이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10개월여 동안 경찰이 신청한 잠정조치 5743건 가운데 985건(17.1%)가 검찰·법원 단계에서 기각된 것으로 확인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9개월여 동안 경찰이 신청한 잠정조치 5743건 가운데 985건(17.1%)이 검찰·법원 단계에서 기각된 것으로 확인됐다. 잠정조치는 스토킹 범죄가 재발할 우려가 있을 때 법원이 내리는 결정으로 기각 사유가 불분명해 구체적 적용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스토킹 처벌법 잠정조치 청구·결정 현황’을 보면, 지난해 10월21일부터 지난 7월31일까지 9개월여 동안 경찰은 5743건의 잠정조치를 검찰에 신청했다. 이 가운데 검찰에서 694건(12%), 법원에서 291건(5%)이 기각됐다. 잠정조치는 스토킹범죄의 원활한 조사나 피해자 보호를 위해 법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내리는 결정으로, 가해자에게 △서면 경고 △100m 이내 접근금지 △연락 금지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의 제재를 할 수 있는 조처다. 잠정조치 청구 절차는 영장청구 절차와 같다. 경찰의 신청을 받아 검사가 법원에 청구하거나, 검사가 직권으로 법원에 청구하는 구조다. 검찰이 경찰 신청 없이 자체 판단으로 법원에 청구한 잠정조치는 45건으로, 이 가운데 7건이 기각됐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잠정조치 기각 건수와 비율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 시행 1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기각률이 높다, 낮다 판단하기는 이르다. 문제는 검찰·법원이 어떤 이유로 잠정조치 신청이나 청구를 기각하는지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법원-검찰-경찰 사이에 구체적인 잠정조치 신청·청구 기준, 기각 사유 등에 관한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의 신청이 검찰·법원 단계에서 기각됐을 때 안내받은 사유는 ‘스토킹 범죄의 원활한 조사, 심리 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하여 (잠정조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법률에 규정된 사유가 거의 전부일 때가 많다”고 했다. 그는 이어 “경찰은 스토킹 처벌법 시행 뒤 가장 실효적인 피해자 보호조치인 잠정조치 4호(유치장·구치소 유치)만을 별도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얻은 결론은 ‘뚜렷한 방향성을 읽어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검사, 판사마다 판단 기준과 결론이 달랐다”고 덧붙였다.

현재로선 검찰이 경찰에 공유한 잠정조치 청구·기각 기준 관련 문서는 없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한겨레>에 “법 시행 이후 전국 검찰청에서 진행한 사건을 정리·분석해 ‘이런 범죄유형에는 잠정조치 몇 호가 적당하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일종의 판단 참고 자료를 만들어 일선 검찰청에 제공하기는 했다”면서도 “(판단 참고) 자료의 기초 자료는 경찰도 갖고 있어서 경찰에 공유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스토킹 처벌법 시행 1년이 되어가면서, 법 시행 전 스토킹 행위를 포함해 잠정조치 신청해도 되냐는 등 현장에서 여러 문의가 있고, 이에 대해 수시로 답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원도 잠정조치 기각 때 그 사유를 상세하게 알리지 않는다. ‘스토킹 범죄의 원활한 조사·심리 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를 유치를 필요로하지 아니한다’ 정도의 결론만 남긴다.

잠정조치 기각 여부를 결정하는 구체적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구속영장 발부 기준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민경 경찰대 교수(행정학과)는 잡지 <여성과 인권> 최신호에 게재한 글에서 “잠정조치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치인데도, 범죄혐의를 소명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등 구속이나 체포의 기준을 들어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고스란히 피해자 보호조치의 미흡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구속영장 발부는 피의자의 도주·증거 인멸을 막기 위한 것이고, 잠정조치는 피해자를 재범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목적이 명백하게 다른데도, 실무에서는 잠정조치 청구 시 구속과 같은 정도의 사유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모호함’의 유탄은 결국 스토킹 피해자가 맞는다. 김다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은 “실제 스토킹 피해자가 경찰에 잠정조치를 신청해 달라고 했을 때 ‘직접적인 위해가 없으면 (검사가) 청구를 안 해준다’며 경찰이 만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잠정조치를) 요구해봤자 경찰이 안 될 거라고 하니까 피해자도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의 기각률은 경찰이 피해자의 잠정조치 신청 요청을 거부하는 사건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라는 점을 유념하고 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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