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절대 먼저 핵포기 없다'는 北, 핵무력 법에 명시
(서울=연합뉴스) 북한이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핵 무력(핵무기 전력) 사용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도 법에 명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74번째 정권 수립일인 9·9절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 무력 정책 및 법령 등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노리는 목적은 우리의 핵 그 자체를 제거해 버리자는데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핵을 내려놓게 하고 자위권 행사력까지 포기 또는 열세하게 만들어 우리 정권을 어느 때든 붕괴시켜버리자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못 박았다.
북한이 새롭게 핵 무력의 사명과 구성, 지휘통제 등을 규정한 법령을 채택한 점에 주목한다. 핵을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11개의 조항에 넣었다. 핵무기 사용 명령 권한을 김 위원장만 갖도록 했다. 핵 지휘명령 체제를 1인으로 규정한 것 자체가 위험천만한 일이다. 지도부에 대한 핵 및 비핵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조항도 들어있다. 핵 보유 단계를 넘어 핵을 어떻게 운용하겠다는 의지와 선제 핵 공격의 길까지 터놓은 셈이다. 비핵화 협상에 임하는 것 자체가 법령 위반이라는 논리가 나온다. 북한이 지난 2016년 7차 당대회 때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데에서 180도 바뀐 상황이다. 아울러 지난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설 90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밝혔던 "핵 무력의 기본 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고 했던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구체적으로, 적극적으로 핵 사용 의지를 표명한 것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핵을 억지하는 수단으로서의 핵 사용'이나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에 대한 핵 사용 금지'에서 벗어나 핵 사용조건을 더욱 확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및 주한미군에 대한 선제적 전술핵 사용이 가능해졌다는 우려도 크다. 북한 입장에서는 지도부 '참수 작전' 등을 의식한 대응으로 보인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보듯 핵을 포기할 경우 북한도 언제든지 안보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이 제안한 경제적 지원을 내세운 '담대한 구상'이나 비핵화 협상 복귀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핵을 대부(대가)로 개선된 경제생활 환경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 자체를 걷어차 버렸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이미 북한은 7차 핵실험 준비를 완료한 상태에서 김 위원장의 정치적 결심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소형화된 전술핵 개발을 지속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여러 발 쏠 수 있는 신형 잠수함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핵 역량을 강화해 대미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속셈이다.
한미 당국은 북한 비핵화 원칙은 유지하면서도 좀 더 유연한 접근법도 고민해야 한다. 당장 북한의 핵 위협이 현실화하고 있는 만큼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력의 실효적 운용방안을 마련하는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4년 8개월간 중단된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가 16일 워싱턴에서 열린다고 하니 실효성 있는 방안을 기대한다. 북한이 핵전력을 강화하면서 군축 협상을 요구할 것에 대비한 전략도 모색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 조치를 조율하려면 러시아, 중국과의 대화채널도 면밀히 관리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까지 내놓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북한의 핵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 북한에도 촉구한다. 핵 사용 계획을 법제화한 것은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대한 명백한 협박이자 도발이다. 북한의 '핵 고집'은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하고 북한 주민의 경제난을 심화시킬 뿐이다. 북한은 긴장 완화를 위한 대화 테이블에 즉각 앉아야 한다. 우리 정부가 제안한 남북 이산가족 대화 등 민간 차원의 접촉이나 인도적 교류로 꽉 막힌 물꼬부터 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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