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외항사에 '인천~미주' 분배 추진..결합 승인 부작용 우려
대한항공 "동남아 항공사들과 협의 추진" 밝혀
국토부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과 항공회담 검토 중"
항공업계 "합병 승인 위해 이렇게 할 필요가.." 반발
"경쟁상대 안 되는 외항사 내세울 경우 소비자 피해로"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에 대한 미국 경쟁당국 승인을 얻기 위해 인천~미국 노선 항공편 가운데 일부를 동남아시아 항공사에 넘겨주는 방안을 국토교통부와 함께 추진 중이다. 싱가포르·베트남 등 외국 항공사가 인천~미국 노선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그만큼 국적 항공사들의 입지가 좁아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을 무리하게 밀어부치는 과정에서 국내 항공 업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한항공은 12일 동남아 지역 몇몇 항공사와 인천~미국 노선 운항을 협의중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도 “각 나라 경쟁당국의 경쟁제한성 완화 조처 요구에 따라 다수의 국내외 항공사들과 협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쟁당국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에 대한 승인 심사를 하며 경쟁 제한 최소화 방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도 같은 사안에 대한 승인 심사를 하며 인천~미주 노선에서 경쟁이 제한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대한항공 계획이 성사되려면, 정부 정책당국간 항공회담을 통해 ‘이원권’을 배분해야 한다. 이원권이란 항공협정을 체결한 두 나라 항공사들이 서로의 국가를 경유해 제3국으로 운항할 수 있는 권리다. 김헌정 국토교통부 항공정책관은 “동남아시아 국가 등과 항공회담을 검토 중이다.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제는 제3국 항공사가 단순 경유가 아닌 직접 인천~미국 노선 운항에 나서게 될 경우, 국적 항공사 운항 횟수가 줄어들며 국내 항공산업 기반이 좁아지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항공업계에서도 “‘캐시카우’(꾸준한 이익을 내는 상품)로 꼽히는 인천~미주 노선을 외국 항공사에 내어주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현재 장거리 운항 저비용항공사가 없다는 이유로 동남아 항공사를 찾는 것이겠지만, 기회만 주어지면 국적 저비용 항공사들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합병 승인을 받는 게 아무리 급해도, 한국 항공산업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자제해야 하지 않나”라고 물었다.
대한항공과 국토교통부는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여객 수요 감소 등으로 타격을 입은 국적 저비용항공사들은 장거리 운항 능력이 없기 때문에 외국 항공사를 제시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제3국 항공사가 인천~미주 노선을 취항한다고 해도 한국 항공산업에 ‘드라마틱한 영향’을 줄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기업결합이 완료되면) 선택권이 넓어진다. (결국) 소비자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김헌정 항공정책관은 “인천~미주 노선이 현재 5개다. 5개 노선 모두 이미 운항 중인 항공사들이 국내·외에 있지만 인천~엘에이(LA)노선은 국내 항공사 중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제외하면 다음달 취항하는 신생 저비용항공사 에어프레미아밖에 없다. 대한항공이 현재 운항 중인 국내외 항공사들을 모두 접촉하고 있지만, 엘에이 노선은 (보유 항공기가 상대적으로 적은) 에어프레미아 운항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해 베트남과 같은 동남아국가의 항공사를 대안 중 하나로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선 독점 운영으로 인한 요금 인상 등의 소비자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공정위 조건부 승인 취지를 고려할 때, 이런 시도는 공정위 승인 조건을 실질적으로 충족하지 못하는 형식적 행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훈 참여연대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변호사)은 “공정위가 경쟁 유지를 조건으로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는데, 이러한 시도는 (대한항공이나 국토부가) 형식적·일시적 조건 충족을 시도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대한항공 쪽에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할 외항사, 예를 들어 싱가포르보다는 베트남과 같은 저개발국가의 항공사를 대체항공사로 끌어들일 가능성도 커 보인다. 이 경우 대한항공이 (이 대체항공사와의) 경쟁에서 앞서 서비스·요금 경쟁에 나설 유인이 사라지고, 경쟁 실종에 따른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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