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 레전드] 인천고 야구의 르네상스, 에이스 서동준

김현희 2022. 9. 1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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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40년이 흘렀다.

이에 맞춰 한국 프로야구를 이끈 레전드 40명 선정도 완료됐다.

40명 모두 지난 40년간 한국 프로야구를 이끈 선수들임엔 분명하다.

그래서 '한국 프로야구 40년'이 되는 현 시점에서 고교 무대를 수놓은 스타들의 존재도 분명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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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대한민국 첫 국가대표에도 막내 투수로 뽑혀. 당시 3위 기록
1954년 야구 국가대표팀의 모습. 김영조, 장태영 등 베테랑들의 모습 속에 서동준은 막내 에이스로 사상 첫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사진=국가기록원/장태영 저서(백구와 함께 한 인생)

(MHN스포츠 김현희 기자)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40년이 흘렀다. 이에 맞춰 한국 프로야구를 이끈 레전드 40명 선정도 완료됐다.

40명 모두 지난 40년간 한국 프로야구를 이끈 선수들임엔 분명하다. 그러나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프로야구 이전에 대한민국은 '고교야구'에 열광했다는 사실. 패기에 가득 찬 고등학생들의 열정이 동대문야구장과 목동 야구장에 그대로 녹아 들었다. 100년 고교야구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에서는 여전히 '선수권대회(고시엔 대회)'가 인기를 끈다. 일본 야구 유학을 다녀 온 이들은 하나같이 "일본에서는 도쿄대를 나왔다는 사실보다 고시엔에 가서 경기를 치러 본 것을 한 수 위로 여긴다."라며, 현지의 뜨거운 열기를 알려오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 프로야구 40년'이 되는 현 시점에서 고교 무대를 수놓은 스타들의 존재도 분명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국내 최초의 국가대표팀에서 막내 투수로 이름을 올린 서동준 역시 기억해야 할 레전드 중 한 명이다.

고교야구 레전드 4)편,
국가대표 막내 에이스, 인천의 서동준

서동준은 인천 야구 역사와 국가대표 역사를 거론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특히, 부산고의 에이스였던 김소식 前 MBC 야구 해설위원/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은 "내가 닮고 싶었던 선배님"이라며, 서동준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의 퍼포먼스는 바로 성적으로 증명된다. 1952년, 유일한 고교야구 대회였던 전국 체육대회 고등부 우승을 이끈 것을 시작으로 1953년 쌍룡기(부산 화랑대기 전신), 청룡기 선수권, 전국체육대회 우승에도 성공하며, 그 해 전무후무한 '전관왕'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이 때만큼 인천고 야구부가 두드러지게 활약했던 해도 드물었다.

인천고 졸업 이후에는 한양대 공업대학으로 진학하여 야구를 계속, 1954년 1학년의 몸으로 참가한 대학야구선수권에서 우수투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에 앞서 1954년 처음으로 구성된 국가대표팀에서 고교 졸업생으로는 최초로 선발되어 아시아 선수권 3위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이후에도 '투수 서동준'으로 승승장구했던 그는 1955년, 대학 2학년의 몸으로 대한체육회가 선정한 대한민국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조선운송 야구단(CJ 대한통운 전신)에서 근무했고, 해군에서 군 복무 겸 야구를 시행하다가 다시 팀 명이 변경된 한국운송 야구단에 합류하여 2년간 선수 생활을 했다. 그리고 장태영/김양중 등 앞선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1962년에는 한일은행(우리은행 전신)에 입사, 3년간 다시 선수로서 활동했다. 선수로서 글러브를 내려 놓은 이후에는 은행업무와 야구 감독직을 병행했고, 1965년에는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최초로 TBC 전속 해설가를 겸직하게 된다.

꽤 오랜 기간 야구 해설을 했던 서동준은 1977년, 한일은행 지점장으로 발령이 나면서 그만두게 됐고, 서동준의 후임으로 들어 온 인물이 바로 김성근이었다. 그러나 김성근 해설위원은 당시 해설에서 일본식 표현을 쓴 것이 문제가 되어 바로 경질됐고, 그 김성근의 후임으로 TBC 야구 해설을 맡은 이가 바로 당시 환일고등학교 체육 교사로 근무했던 故 하일성 前 KBO 사무총장이었다.

장태영, 김양중 등 앞선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금융업계에서도 승승장구하며, 야구인으로서의 삶과 사회인으로서의 삶에서 모두 성공한 서동준은 2014년 10월, 향년 78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이후에도 서동준을 기리는 글들은 많이 나왔지만, 지금처럼 1:1 단독 인터뷰가 장시간 진행된 지면 자료는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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