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오랏의 '괴짜' 떼루아 알 리미트..그르나슈, 까리냥 와인 상식이 뒤집힌다
[파이낸셜뉴스] 먹어보기 전에는 몰랐다. 부르고뉴(Bourgogne) 스타일 병에 다소곳이 담겨있던 이 스페인 프리오랏(Priorat) 와인들이 왜 괴짜 와인으로 불리는지, 그르나슈(Grenache)와 까리냥(Carignan)으로 만든 와인이 어떻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에 정말 적잖이 놀랐다.
스페인 프리오랏 특급으로 불리는 떼루아 알 리미트(Terroir Al Limit Soc.) 와이너리가 지난 달 30일 서울 종로구 떼레노(Terreno)에서 자신들의 와인을 선보이는 자리를 가졌다.
떼루아 알 리미트는 프리오랏 와인 르네상스를 이끌던 마스 마르티네(Mas Martinet) 와이너리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도미니크 후버(Dominik Huber)가 독립해 2001년 설립한 와이너리다. 독특하게도 떼루아와 포도 자체에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와인 제조방식을 도입하면서 순식간에 프리오랏 최고의 와인 자리에 올랐다. 떼루아 알 리미트는 포도를 다른 와이너리보다 더 일찍 수확하고, 포도 즙을 짜내는 과정도 기계가 아닌 사람이 직접 포도를 밟아 짜내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와인 발효과정에서도 송이째 발효하며 피자주와 르몽타주를 진행하지 않는다. 피자주는 와인을 발효하는 침용 과정에서 껍질, 과육, 씨가 위로 떠오르는데 이 때 포도즙이 색, 향, 타닌을 골고루 흡수하도록 막대로 단단한 층을 위아래로 뒤집어 주는 작업이다. 르몽타주는 발효 탱크 아래에 있는 출구로 와인을 빼내 다시 위에 부어 즙을 섞어주는 과정이다. 도미니크 후버는 "포도를 송이째 발효하는 것은 매우 뜨겁고 파워풀한 프리오랏 기후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며 피자주와 르몽타주를 하지 않는 것은 인위적인 요소를 줄여 포도 자체의 특징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떼루아와 포도에 대한 이같은 극단적인 존중이 고스란히 담기자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는 2019년 이 와인에 대해 만점을 주며 경의를 표했으며, 앞서 2016년에는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은 스페인 최고의 와인 중 1위로 꼽았다.
천재를 넘어선 젊은 괴짜 와인 메이커가 만드는 스페인 프리오랏 와인 '떼루아 알 리미트'는 어떤 모습일까.
떼루아 알 리미트가 이날 선보인 와인은 '히스토릭-화이트 2018(Historic -White 2018)', '떼루아 센세 프론테라스 브리삿 2018(Terroir Sense Fronteres Brisat 2018)', '테라 데 쿠퀘스 2018(Terra de Cuques 2018)', '디츠 델 테라 2018(Dits del Terra 2018)', '레스 만예스 2017(Les Manyes 2017)', '레스 토세스 2017(Les Tosses 2017)' 등 총 6가지다.
■떼루아 센세 프론테레스 브리삿, 개성 강한 효모향에 긴 피니시 일품
화이트 와인 중에는 떼루아 센세 프론테레스 브리삿이 아주 인상적이다. 진한 금색 외양에 오렌지빛이 도는 와인으로 화이트 그르나슈 75%, 마카베오 25%를 블렌딩했다. 오렌지빛이 살짝 비치는 것은 껍질을 2주간이나 접촉시켰기 때문이다. 이 와인은 잔에 담기자 마자 주변에 쿰쿰한 두엄향과 지린내를 닮은 진한 효모향을 확 퍼뜨린다. 흰꽃 향과 약간의 더운 느낌의 과실 아로마도 있다. 산도는 미디엄으로 들어와 시간이 갈수록 계속 높아진다. 질감도 미디엄 플러스 이상의 묵직한 화이트 와인으로 피니시가 두세숨 이상 길게 이어지는 것도 독특하다.
또 히스토릭-화이트는 화이트 그르나슈 75%, 마카베오 25%로 만든 화이트 와인으로 금빛이 아름다운 와인이다. 마치 라거 맥주같이 맑고 빛나는 모습이다. 응축된 과실 아로마와 어우러지는 허브, 향신료 느낌이 좋다. 산도도 아주 높아 크리스피하다.
■잔에서 입에서 계속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레드 와인들
테라 데 쿠퀘스는 그르나슈 50%, 까리냥 50%가 블렌딩 된 레드 와인이다. '벌레들의 땅'이라는 이름을 가진 와인으로 맑은 루비색을 띠며 내추럴 와인과 컨벤셔널 와인의 중간쯤에 위치한 듯 자연 효모의 향이 너무 인상적이다. 잔에서도 입속에서도 포도 품종의 특징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와인이 입에서 사라질때쯤 제 모습을 드러내는 산도가 대단하다. 턱밑 침샘을 자극하더니 눈시울까지 그렁대게 만든다. 길게 이어지는 피니시에서만 그르나슈 특유의 레드 계열 향이 살짝 스쳐간다.
'지구의 손가락'이라는 이름이 붙은 디츠 델 테라도 독특하다. 까리냥 100%로 만든 와인으로 90년 된 올드바인에서 나온 포도만으로 빚는다. 연간 2000병이내의 극소량 생산 와인이다. 진한 퍼플색의 어린 와인으로 잔을 스월링하면 블랙 계열 아로마가 가득한 것을 알 수 있다. 까리냥 특유의 까칠한 향에 카시스 향이 더해진 아주 진득한 향이다. 특이하게도 산지오베제의 감칠맛 나는 향과 새콤한 향도 섞여있다. 그러나 입속에서는 의외로 미디엄 정도의 질감을 나타내며 타닌도 두껍지 않다. 그럼에도 아로마는 아주 진한 블랙 계열이다. 타닌도 곱고 얇지만 우아하게 촤악 깔린다. 피니시도 상당히 길다.
테라 데 쿠퀘스와 디츠 델 테라 와인 모두 로버트 파커, 제임스 서클링에게 늘 90점대 중반의 점수를 받는 와인이다.
■그르나슈와 까리냥으로 반전에 반전..상식을 뒤집는다
레스 만예스는 로버트 파커 100점 와인이다. 해발 800m에 위치한 레스 만예스 전용 밭에서 나는 그르나슈 100%로 만든다. 와인 색깔은 연한 루비색깔로 일반적인 그르나슈 와인 색깔이 아니다. 살짝 피노 누아 와인에 더 닮아있다. 잔에서는 삼나무 향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삼나무 그늘에서 맡는 향이 아니라 바짝 마른 삼나무 향이다. 음계로 따지면 묵직한 '도'의 음색이지만 높은음 '도'다. 또 산도가 동반된 감칠맛이 나는 와인향과 약간 탄내음도 들어있다. 입에 넣어보면 질감은 색깔처럼 아주 라이트하다. 레지오날급 피노 누아처럼 가볍다. 하지만 탄 내음이 묻은 독특한 타닌이 인상적이다. 아주 얇지만 굉장히 곱고 진하다. 이 독특한 탄향의 타닌은 줄기에서 생긴 것이다. 피니시는 의외로 굉장히 길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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