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의 야구, 이야기> (11) 실패를 해낸다는 것
얼마 전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의 인터뷰를 접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두세 타석 안타를 치지 못하는 타자를 교체하고, 서너 경기에서 부진한 투수를 2군에 보낸다. 단기간 결과에 따라 선수의 가치,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는 부분이 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압박을 받으며 야구 해왔다는 것을 몰랐다. 실패를 인생의 끝이라 생각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그러한 문화에 익숙해진 선수들의 틀을 깨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상적이었다.
수베로 감독은 지난해 초 부임하면서 실패할 자유(freedom to fail)를 강조했다. 실패를 통해 배우고, 연구하고, 다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선수들에게 전했다.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지시하는 등 과감한 플레이를 주문했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단기전’을 치르는 데 익숙하다. 감독이 아무리 괜찮다고 하더라도 선수들은 습관처럼, 한두 번의 실패에 바로 고개를 숙인다.
2022년 프로야구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팀과 그렇지 못한 팀, 타율 3할을 넘기는 타자와 그렇지 못한 타자가 가려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성공과 실패라고 습관처럼 나눠왔다.
나 역시 그랬다. 1996년 일본 주니치에 입단해 2군으로 떨어졌을 때,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야구 선수로서 처음 느낀 좌절감을 이겨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내가 실패하면 한국 야구가 실패한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럴수록 더 괴로웠다.
돌아보면, 그때의 실패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기본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마무리 투수로 복귀할 수 있었다. 1999년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다시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어느 때보다 노력했다.
내가 위태로울 때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나를 믿고 기다려줬다. 선수의 현재만 보지 않고 미래를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단점과 장점을 함께 본 덕분일 것이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야구는 플레이 하나하나에 성공과 실패가 나뉜다. 야구를 직접 해보고, 가르쳐도 보고, 요즘처럼 한 걸음 떨어져서 보니 야구 선수는 매일 실패한다. 그럴수록 ‘실패 이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선수, 실패를 통해 뭔가를 배우는 선수가 결국 이긴다.
유도에 넘어지는 기술, 낙법이 있는 것처럼 야구에도 실패를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요즘 최재천 변호사의 ‘실패를 해낸다는 것’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이 책은 실패에 대한 여러 연구와 경험을 소개한다. 아울러 “승자는 한 번 더 시도해 본 패자다(해롤드 G 무어)” “한번 실패와 영원한 실패를 혼동하지 말라(스콧 피츠제럴드)” “실패를 묻어 두면 계속 실패하고, 실패에서 배우면 성공한다(하라무라 요타로)” 등의 명언도 전한다. 일찍 실패하고, 자주 실패하고, 진취적으로 실패하라고 말한다.
실패의 담론은 개인(선수)보다 사회(구단과 감독·코치)가 더 고민해야 한다. 어른들이 만든 결과주의, 성과주의, 징벌주의가 젊은이들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도전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도록 가르쳤다. 동서고금의 석학들이 실패를 응원할 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그것이 패자부활전 없는 사회를 만들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야구에도 창의적인 플레이, 과학적인 훈련법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처럼 요즘 선수들은 기존의 문법과 다른 방식으로 뛰고 있다. 그들에게 “실패를 해내라. 그리고 일어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낡은 지도로는 새로운 세상을 탐험할 수 없으니까.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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