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식민지 독립 75년, 23차례 IMF 차관..파키스탄 미래는?
세계는 지금
▶이코노미 인사이트 구독하기http://www.economyinsight.co.kr/com/com-spk4.html
239.67 PKR/USD. 2022년 7월29일 기준 파키스탄 루피화의 달러 환율이다. 7월 첫 거래일인 4일 환율은 달러당 204.5루피였다. 급등하는 환율로 알 수 있듯이, 파키스탄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2013년, 2019년 연속해서 두 차례나 지원받았음에도 여전히 외환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구 2억3천만 명의 세계 5위 인구대국이면서 중위연령이 20대 초반으로 노동력이 풍부한 파키스탄의 시장잠재력은 과연 현실화할 수 있을까?
23차례의 IMF 차관
1947년 8월1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파키스탄은 정책적 의무 이행조건이 없는 차관까지 포함해 총 23차례 IMF 차관을 받았지만, IMF의 그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IMF 구제금융 관리체제에서 막 벗어났던 2019 회계연도(2018년 7월~2019년 6월) 말 경상수지가 134억달러 적자(GDP의 4.9%)를 기록하는 등 다시 외환 사정이 어려워졌다. 상품 무역수지 적자도 276억달러에 이르렀다. 2017년 164억달러이던 외환보유고는 2019년 73억달러로 급격히 줄었다.
2018년 10월 총선으로 새로 구성한 PTI(Pakistan Tareek-e-Insaf·파키스탄정의운동) 주도 신임정부의 임란 칸 총리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IMF는 39개월간 60억달러의 확대신용금융 차관에 합의하고, 차관 조건으로 파키스탄 중앙은행의 독립적인 통화정책 결정, 에너지부문 개혁, 세수 확대를 비롯한 재정안정화 등 경제체질 개선을 요구했다.
이후 전개된 국제 정세로 파키스탄의 고통은 배가됐다. 2020년에는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했고, 2022년 초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악화로 에너지원 수입가격 급등 등 대외경제 여건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에너지원을 수입에 의존하는 파키스탄은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석유·천연가스 수입액이 급증하면서 외환보유고가 점점 고갈됐다.
2022년 3월 전년 대비 물가가 12.7% 급등하자 민심 이반이 발생했다. 파키스탄무슬림연맹(PML-N) 중심의 야당 연합은 집권여당인 PTI 임란 칸 총리의 불신임 건의안을 상정하고 의회에서 표결을 시도했다. 불신임안은 4월10일 의회 정원 342명의 절반을 넘긴 174명의 동의로 통과됐다.
총리 불신임안이 통과되고 입각한 셰바즈 샤리프 신임총리는 IMF 이코노미스트였던 미프타 이스마일을 신임 재무부 장관에 임명하고 미국 워싱턴으로 즉시 파견했다. 전 정부의 이행조건 불이행으로 중단된 구제금융 프로그램 재개를 위해 IMF와 협상을 시작한 것이다. 7월14일, IMF와 파키스탄 정부는 11억7천만달러 추가 송금을 위한 7차·8차 공동점검회의를 진행하고 실무자급(장관급) 합의를 끌어냈다. 이 합의 도출을 위해 샤리프 정부는 유가보조금과 전기세보조금 폐지, 세금 감면 폐지 등 정치적으로 불리한 이행조건을 받아들여야 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IMF와의 이행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5월 말부터 ℓ당 87루피에 달하던 유가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했다. 7월부터는 그간 부과하지 않던 유류세를 ℓ당 50루피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자동차용 휘발유는 연초 ℓ당 150루피에서 8월에는 ℓ당 최대 250루피를 기록할 정도로 폭등했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오토바이로 출근하는 노동자는 70% 폭등한 통근비를 감내해야 했다.
2022년 7월 말 기준 파키스탄 중앙은행 외환보유고는 86억달러로 한 달 반 정도의 수입을 감당할 수 있는 금액만 남았다. 시중 환율은 달러당 240루피에 이르기도 했다. 2022년 7월 물가도 전년 동월 대비 25% 상승했다. 특히 서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식품물가는 30% 가까이 올랐다. 게다가 파키스탄 중앙은행은 2020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13.5%에서 7%까지 낮췄던 정책금리를 2022년 8월 15%로 급격히 인상했다. 급상승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불가피한 조처라고 하지만 서민들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느리지만 나아지고 있다
파키스탄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파키스탄의 고질적인 IMF 재정 의존 이유로 세원 확대를 통한 세수 확보 실패, 비효율적인 전력발전과 운용시스템으로 인한 만성적 재정적자, 수출산업의 저부가가치화 지속에 따른 무역적자 등을 꼽는다. 파키스탄이 외환위기를 겪을 때마다 IMF는 구제금융 지원의 이행조건으로 경제체질 개선을 지속해서 요구했다. 하지만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소득층의 민심 이반을 야기하는 근본적 구조조정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지지부진한 경제구조 개혁의 내부적 요인 외에 대외적으로는 만성적인 무역적자가 파키스탄 외환위기 상황을 더욱 어렵게 했다. 파키스탄의 세계 10대 수출품목은 과거나 현재나 거의 변화가 없다. 대부분의 제품이 섬유, 농산물, 광물 관련 단순 노동집약 저부가가치 산업에 머물러 있다. 2010년 이후 매년 무역적자는 GDP의 5%에서 10%를 기록하고 있다.
지속적 무역적자의 원인으로 저부가가치 중심의 파키스탄 제조업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가 발표한 제조업경쟁력지수(CIP·Competitive Industry Performance) 보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의 2018년 1인당 제조업 부가가치 창출액은 190달러로, 2000년 102달러에서 큰 변화가 없다. 수출에서 차지하는 하이테크 제품 비중은 11%에 그친다. 파키스탄 제조업이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부가가치가 가장 낮은 단순 가공과 조립생산에 멈춰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예가 자동차산업이다. 파키스탄은 이미 1950년대부터 포드 자동차를 현지에서 조립생산할 만큼 자동차 제조업의 역사가 깊은 나라다. 더욱이 2016년 도입한 자동차산업개발정책(ADP·Automotive Development Policy, 2016~2021)으로 기존 일본 자동차메이커 외에 신규로 현대·기아·푸조·스코다 등 다양한 브랜드의 메이커가 현지 조립을 시작했다. 그러나 자동차부품 현지화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자동차부품 제조사가 200여 개에 그치고, 현지화율이 40% 미만으로 알려졌다. 현지화된 부품도 차체 관련 부품 등 저기술의 단순 부품 위주다.
변화가 느리긴 하지만 희망적인 것은 파키스탄 경제체질이 점차 개선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IMF와의 약속 중 하나인 파키스탄 중앙은행의 독립적 통화정책 수행을 위해 중앙은행법 개정이 통과된 점을 꼽을 수 있다. 변경된 중앙은행법은 중앙은행이 환율·통화 정책을 수립할 때 과거에 존재했던 재무부 장관의 관여 여지를 제거하고 인플레이션 관리에 집중하도록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높였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파키스탄 정부의 IMF 이행조건 완수 의지다. 과거 파키스탄 정부는 구제금융 조건으로 약속했던 IMF와의 이행조건을 완벽히 지키지 않았다. 재정수지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지만 정치적으로 위험부담이 큰 감·면세 폐지, 보조금 중단 등의 조처를 충실히 이행할 수 없었다.
PML-N 정부가 들어선 뒤 IMF와 협상을 재개할 때 이전 정부인 PTI가 IMF에 약속했던 유가보조금 폐지 실행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현 PML-N 정부는 IMF의 강력한 의지에 더해 상환불능 상태를 막기 위한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으로 정치적 리스크가 큰 조처를 모두 완결해냈다. 이렇듯 아직 불완전하지만 통화정책, 재정정책, 공공부문 경쟁력 강화 등의 구조조정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금씩 진전을 보인다.
산업화 정책도 바뀐 정권 속에서 어느 정도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자동차산업개발정책은 PML-N이 집권한 2016년에 시작해 2021년 PTI 정권이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추가적인 정책 인센티브를 도입해 자동차부품 현지화율 확대로 자동차 밸류체인 경쟁력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투자 매력, 아직 낮은 편
물론 파키스탄은 동남아시아나 다른 서남아 국가들과 비교할 때 우리 기업들의 투자 진출 매력도가 낮은 편이다. 파키스탄이 자국의 잠재력을 현실화하고 아시아 지역, 특히 한국 기업들의 관심을 더 끌어내기 위해서는 중장기적 예측이 가능한 사업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파키스탄은 인구가 2억3천만 명이나 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500달러대에 불과해 매력 있는 소비시장으로 관심을 끌기에는 구매력 있는 중산층이 부족하다. 따라서 인근 이슬람 문화권과 공동시장을 구성하는 데 정책적인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파키스탄 서쪽으로는 같은 종교를 공유하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이 가깝고, 북쪽은 중앙아시아로 들어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이들 지역과의 경제적 통합을 한층 더 높게 이뤄낸다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 기업들의 더 높은 관심을 받게 될 것이다.
김성재 KOTRA 카라치 무역관 관장 sungjaekim@kotra.or.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중국 가는 태풍 ‘무이파’ 영향…한국 14일까지 비
- 윤 대통령, 영 여왕 장례 참석 뒤 유엔총회 연설…김건희 여사 동행
- 고구려 때부터 군림한 K꿀벌과 유럽 출신 양봉벌 ‘놀라운 공존’
- 실화 바탕 넷플릭스 ‘수리남’…현실은 드라마와 어떻게 다를까
- 엘리자베스 문상객 밤새 줄 설 듯…“따뜻한 옷, 간식 챙겨야”
- LA ‘오징어 게임의 날’ 만들었다…매년 9월17일
- ‘원산지 해수욕장’ 조개, 비빔장에 무쳐 먹고 국 끓여 먹고
- 90살 이상 살 확률 10%나 높은 성격, 따로 있다
- 태양의 ‘벌집’ 하나 크기만 1600㎞…인류가 본 가장 생생한 채층
- 법치보다 정치가 앞서야 하는 이유 [성한용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