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은 하되, 애쓰지 않기로 했다"..'조용한 퇴직'을 아시나요
영국 런던에서 홍보 전문가로 일하는 젬마(25)는 최근 직장에서 업무 태도를 크게 바꿨다. 자신의 업무 성과를 과소 평가하는 회사 시스템에 불만이 많아 몇 달 전까지 퇴사를 고민했는데, 이젠 회사를 계속 다니기로 마음을 확실히 정했다. 대신 맡은 업무를 더 잘하기 위해 또는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거나 애쓰지 않기로 했다.
과거엔 업무 시작 한 시간 전부터 노트북을 켜고 이메일 등을 확인했지만 이젠 오전 9시 이후 온라인에 접속한다. 업무를 빨리 처리하려고 밤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남는 일도 중단했다. 오후 6시가 되면 무조건 업무를 멈추고 퇴근한다. 젬마는 "과거엔 동료보다 뒤처지면 어쩌나 늘 불안했는데 이젠 퇴근 이후 생활에 집중하고 있다"며 "직장에선 꼭 해야 할 최소한의 일만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조용한 그만두기', '조용한 퇴직' 등으로 불리는 이 신조어는 지난 7월 짧은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에 자이들 플린(zaidleppelin)이라는 사용자가 올린 영상을 시작으로 유행처럼 번졌다. 미국의 20대 엔지니어인 그는 영상에서 "직장에서 업무적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주어진 일 외에는 절대로 하지 않는 조용한 그만두기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며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직장에서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해당 게시물은 현재 조회수 350만회를 돌파하며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틱톡을 비롯한 다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조용한 퇴직' 해시태그를 포함한 게시물들이 급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CNN·BBC·가디언 등 주요 외신들도 신드롬처럼 번지는 '조용한 퇴직'과 관련한 분석 기사를 잇따라 다루고 있다.
용어를 둘러싼 해석도 다양하다. 주변에 알리지 않은 채 직장을 그만두는 퇴사부터 소극적인 근무 방식으로 삶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는 것, 정시 출·퇴근을 하는 것, 점심시간 내 온전한 휴식을 하는 것, 근무 시간 외에 업무 관련 메시지나 이메일에 답하지 않는 것 등도 '조용한 퇴직'으로 부른다.
과거 직장 업무와 자신의 삶을 동일시 했던 사람들이 삶의 우선 순위, 일과 생활에 대한 균형 등에 대한 고찰을 끝내고 실천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해 모든 시간을 일에 쏟는 '허슬 문화'에 대한 반발로도 읽힌다. 조용한 퇴직에 동참하는 대부분이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젊은 직장인들이 불안정하고 경쟁적인 노동환경 속에서 일과 일상의 균형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주요 외신들은 봤다.
팬데믹 기간 '대퇴사(Great Resignation)' 열풍과 맞닿아 있지만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등 최근 경제 상황이 반영되며 변형된 트렌드라는 진단도 있다. 노동 자체에 대한 반항보다는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실 급여가 줄어들면서 무보수 초과근무, 조직에 대한 충성 등 기존 관념에 대한 거부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는 풀이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앤서니 클로츠 경영대학원 부교수는 "모든 근로자들이 당장 퇴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은 아니다"라며 "경기 둔화로 고용시장이 악화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급여를 위해 회사를 다니되 본격적으로 선을 긋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직장에서 업무로 인정받기 위해 공을 들이기 보다 가족, 친구, 취미 등으로 삶의 우선 순위를 재조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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