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다시 시작된 '감독 커리어' 조동현이 말하는 현대모비스 재건
※본 기사는 점프볼 9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유재학 총감독으로부터 감독 자리를 물려받으라는 얘기는 언제 들었나?
5월에 유럽 출장을 다녀온 후였다. 개인 일정으로 미국에 가시기 전 부르시더니 일선에서 해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결정된 건 아니었고 회사와 어떻게 얘기가 오갔던 건지도 몰랐기 때문에 나도 이후에는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었다.
유재학 총감독이 2시즌 전부터 작전타임 때 틈틈이 직접 지시할 수 있는 역할을 맡겼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감독 복귀를 위한 준비도 됐을 것 같다.
KT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더 알게 됐다. 그러다 보니 총감독님도 믿고 보다 많은 역할을 주셨던 것 같다. 감독을 해보니 감독이 코치들에게 뭘 원하는지 알게 됐다. 경기 준비를 해서 드리면 총감독님이 이 가운데 필요한 부분만 쓰셨고, 이외의 부분에 대해선 피드백을 주셨다. 작전타임 외에 훈련할 때도 패턴을 믿고 맡겨주셨고, 그게 큰 도움이 됐다.
현대모비스는 KBL 최고의 명가로 불리고, 유재학 총감독 역시 명장이었다. 그 뒤를 물려받는 것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도 따를 텐데?
당연히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현대모비스는 6강을 목표로 하는 팀이 아니다. 항상 높은 곳을 바라보는 팀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많이 따른다. 하지만 책임감은 감독 혼자 안고 가는 것이다. 조급해하면 선수들도 안다. (감독을)한 번 해봤기 때문에 조급함은 없다. KT 시절에는 부족한 게 많았고, 혼자 고민했다. 그렇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일단 KT 팬들, 구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아직도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부족했다. 열정만으로 다 될거라 생각하고 선수들을 압박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성장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현대모비스로 돌아온 후 총감독님과 얘기하며 내가 부족했었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좋았던 현대모비스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나만의 색깔도 만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농구는 팀 스포츠다. 선수 시절부터 항상 바뀌지 않았던 생각이다. 선수들에게도 절대로 혼자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걸 강조한다. 여기에 조금 더 역동적인 농구를 덧붙이고 싶다. 나만의 색깔이라기보단 젊은 선수가 많기 때문에 그런 팀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모션오펜스도 좋지만 트랜지션에 더 신경을 쓰며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시즌의 현대모비스는 공격 횟수를 많이 가져가기 위한 농구를 했다. 올 시즌은?
공격 횟수에 대해선 총감독님과 몇 시즌 전부터 많이 얘기한 부분이었다. 올 시즌도 많은 공격 횟수와 더불어 빠른 농구가 밑받침되어야 한다. 전창진 감독님과 함께 농구를 하는 동안 모션오펜스도 재밌게 했지만, 모션오펜스는 농구를 알고 하는 선수가 많아야 가능하다. 그래서 올 시즌은 심플한 농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수비를 강하게 하면서 트랜지션의 빈도를 높여야 하는데 지난 시즌 속공 1위는 SK(374개)였다. 2위(전 오리온, 273개)와도 100개 이상의 차이가 났다. SK는 김선형이라는 속공에 특화된 가드가 있고, 최준용도 4번에서 속공을 진두지휘할 수 있다. 우리는 함지(함지훈의 별명)에게 그 역할을 하라고 하면 안 된다. 그건 3분만 뛰라는 말이다(웃음). (함)지훈이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속공을 강화해야 한다. 리바운드 상황이 감지되면 3번은 잡기 전부터 뛰어나가야 한다. 그래야 속공이 안 이뤄져도 얼리오펜스, 스페이싱, 2대2로 전환할 수 있다. 주희정(전 삼성)처럼 가드가 직접 리바운드를 잡은 후 속공을 전개하는 것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오랜만에 서머리그에 다녀왔는데 소득이 있었나?
없었다(웃음). 4안까지 계약할 선수를 정해놓고 갔는데 모두 안 이뤄졌다. 오히려 유럽 출장 갔을 때 농구를 더 재밌게 봤다. 경기에 대한 선수들의 몰입도가 달랐고, 보다 조직적인 농구를 하는 느낌이었다.
저스틴 녹스에 앞서 계약을 추진한 선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녹스는 리스트에 있던 선수였지만 당초 구상한 1옵션은 아니었다. 더 좋은 선수를 뽑고 싶었고, 그게 모든 팀과 코칭스태프가 갖고 있는 욕심일 것이다. 염두에 뒀던 외국선수는 출국 하루 전까지 한 번만 더 생각해보겠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결국 일본으로 갔다. 계약 조건을 두고 일본과 재고 있었던 것 같다. 대학을 갓 졸업한 외국선수 2명 조합도 구상했지만, 그것도 엎어졌다. 녹스에 대해 우려하는 것도 알고 있지만, 지금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DB 시절에는 팀에 부상선수가 많았고, (김)종규도 많이 결장했다. 그러다 보니 함께 뛴 파트너가 배강률이었다. 지훈이가 함께 뛰면 장점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농담 삼아 “우리는 5월에 1옵션(함지훈)과 계약했다”라는 말도 하고 다녔다. 지훈이는 에릭 버크너도 살려줬고, 녹스는 합리적인 금액의 선수이기도 했다. 스스로도 한국에 돌아가면 더 열심히 해보고 싶다며 의욕을 보여줬다. 긍정적인 부분을높게 보고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게이지 프림과는 일찌감치 계약했다. 4월 PIT에서 활약했지만, 평범한 운동능력에 대한 우려도 따르고 있다.
박구영 코치와 성준모 전력분석이 봤는데 나쁘지 않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금액도 비싸지 않았다. 발은 느리지만 일단 팀이 공을 잡으면 열심히 속공에 참여하려고 하는 스타일이다. 같이 뛰면 1명은 지치게 만들어 줄 선수다. 골밑장악력도 2옵션인 걸 감안하면 괜찮을 거라 판단했다.
지난 얘기지만 라숀 토마스 때문에 속이 탔을 것 같다.
건강했는데 조금만 아프면 안 뛴다고 했다. 시즌 시작하기 전에도, 마무리할 때도 그랬다. 시즌 막판에 검진받은 무릎수술은 간단한 수술이었는데도 못하겠다고 했다. 그에 반해 올 시즌에 뛰는 2명은 모두 한국에서 뛰고 싶다는 열정이 강하다. 총감독님도 그 열정이 팀에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인성적인 면도 고려했다. 이상범 감독님께도 물어봤고, 녹스에 대한 DB 선수들의 평가도 괜찮았다. 당시 숀롱을 상대로도 포스트업을 잘 시도했다. DB의 성적이 안 좋았던 시즌이다 보니 녹스에 대한 평가 자체도 나빠졌던 것일 수 있다.
코치가 아이라 클라크에서 버논 맥클린으로 바뀐 이유는?
변화를 주고 싶었다. 코치들, 통역과도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맥클린은 수비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코치다. NBA에서 뛴 경력이 있어 숀롱도 클라크보다 맥클린에게 더 의지했을 정도다. 사생활이라는 측면에서도 괜찮았다. 공식적으로 코치 계약하기 전에도 미국에서 외국선수와 관련된 파일을 잘 정리해서 보내줬다.
젊은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이)현민이는 아쉽지만 언제까지나 선수로 함께 할 순 없는 것이다. 5~10분 정도 뛸 바엔 젊은 선수들에게 그 기회를 주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젊은 선수들은 무엇보다도 뛰어야 성장할 수 있다.
신민석의 성장 가능성은 어떻게 보고 있나?
노력은 많이 하고 있다. 한 번도 안 쉬고 훈련을 해서 어떻게든 기회를 주고 싶다. 다만, 슛의 기복이 너무 크다. 자신 있게 던지는 건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아직까진 수비력도 약하다. 팀 수비뿐만 아니라 1대1도 해당하는 얘기다. 그동안 맡지 않았던 역할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올 시즌부터는 이 역할도 잘해야 한다. 정효근, 강상재를 수비해야 한다. 열심히 시즌을 준비했기 때문에 그만큼 기회를 줄 생각은 갖고 있다.
론 제이 아바리엔토스와 계약을 맺은 배경은?
한국과의 평가전 이전부터 봤던 선수다. 현민이와의 계약을 포기할 때부터 백업 가드 보강을 알아봤는데 여의치 않았다.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결국 보강이 안 돼 있는 자원만으로 치러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영상을 접했다. 영상만으로 계약하는 건 위험부담이 따를 수 있는데도 계약하고 싶었다. 그러다 평가전을 통해 직접 뛰는 걸 봤는데 더 마음에 들었다. 우리 선수들에게선 볼 수 없었던 농구 센스가 있었고,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좋았다. 상대의 압박에 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벤치에서도, 코트에서도, 작전타임 때도 항상 선수들을 격려해주더라. 수비가 조금 아쉽지만 이 부분은 조직력으로 메워야 한다. 그리고 박구영 코치가 먼저 발견한 건데 벤치에 있다가도 자신이 나가야 할 타이밍이거나 경기의 흐름이 바뀔 때면 스스로 가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만큼 경기에 몰입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아바리엔토스 합류 후 서명진의 역할은?
(서)명진에게 굳이 1번을 맡기지 않을 생각이다. 명진이는 슛, 패스, 2대2가 장점이다. 2번으로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데 1번 역할, 상대의 압박에 따른 스트레스를 안 줘도 된다. 대신 수비에 조금 더 신경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이)우석이와 2가드로 뛸 때는 1번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함지훈이 아닌 장재석이다. (장)재석이가 잘해줘야 지훈이도 체력 안배가 된다. 농담이다(웃음). 지훈이가 많이 뛰면 좋은데 체력 안배가 중요하다. 재석이의 경기력이 지난 시즌과 같다면 어려움이 많이 따를 것 같다. 그래서 (김)현민를 영입한 것이다. 현민이가 1쿼터에 5분이라도 열심히 뛰어주면 지훈이의 체력 안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지훈이는 4쿼터에 꼭 나와야 한다.
현대모비스는 항상 어시스트가 많은 팀이었다. 양동근 은퇴 이후 2시즌도 1위였는데 원동력이라면 역시 조직력일까?
현대모비스하면 조직력이 떠오르는 건 맞지만, 선수들에게도 미팅할 때 이해시키기 위해 물어보는 게 있다. “조직력이 뭐니?”다. 조직력이라는 건 힘들어도 내가 해야 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스크린을 해야 하면 대충 움직이지 말고 확실히 걸어줘서 동료를 도와야 한다. 사소하다고 볼 수 있지만 디테일한 부분들에 집중해야 조직력도 살아나는 것이다. 혼자 힘들다고 서 있으면 팀의 밸런스가 깨진다. 패턴은 어느 팀이든 다 있지만, 결국 그 패턴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디테일을 신경 써야 한다.
아직 이르지만 올 시즌 판도는 어떻게 예상하나?
정말 모르겠다. 이제 막 대학팀들과의 연습경기를 시작했고, 선수들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다만, 확실한 목표치는 두고 연습경기를 치르고 있다. 대학팀과의 연습경기에서는 65실점 이하, 프로팀과의 연습경기에서는 80실점 이하를 해야 한다. 가드는 4리바운드 이상, 팀의 공격 리바운드는 15개 이상 등 이외에도 구체적인 수치를 많이 준다. 젊은 선수가 주를 이루다 보니 이런 식으로 목표를 주는 게 나을 것 같다. KT 시절에는 연습경기 60실점 이하를 목표로 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거지근성을 버리는 것이다. 승부근성을 가져야 하고, 승리는 상대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선수들에게도 강조한 부분이다.
다시 감독의 기회가 주어져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시즌이 될 것 같다.
체계를 잘 만들어가야 할 것 같다. 이미 체계가 잘 잡힌 팀이기 때문에 큰 변화를 주는 건 아니지만 시대에 맞춰가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훈련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은데 새롭게 합류한 박재한, 김영훈이 1시간 먼저 나와서 훈련을 한다. 그러다 보면 이외의 선수들도 조금씩 일찍 나와서 훈련하게 된다. 현민이도 KT 있을 때는 안 했던 야간 웨이트 트레이닝을 ‘99즈’ 데리고 하더라. “너도 바뀌었으니 나도 바뀌어야겠다”라고 했다(웃음). 냉정히 말해 우리 팀은 지훈이 빼곤 모두 경쟁해야 하는 선수들이다. 지난 시즌에 뛰었다고 올 시즌도 그만큼 뛸 거란 생각을 버려야 한다. 선수들 스스로 왜 경기를 뛰어야 하는지를 나에게 보여줘야 한다. 나는 기회를 주려고 하는 지도자다. 다만, 연습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 훈련량을 보고 기회를 준다. 뒤에서 못 뛴다고 징징대며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선수들 스스로 선의의 경쟁자보다 자신이 낫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BONUS ONE SHOT_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승부 근성
익히 알려졌듯, 조동현 감독과 조상현 LG 감독은 일란성 쌍둥이다. 비슷한 외모로 인해 여전히 형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조상현 감독은 “딱 봐서 잘생겼으면 형, 그렇지 않으면 동생”이라는 유쾌한 답변을 남기기도 했다. 조동현 감독은 “내가 조금 더 날카롭게 생긴 것 같다. 그에 반해 (조)상현이는 부드러운 편이다. 환경 때문에 인상도 조금 달라진 게 아닐까 싶다”라고 전했다. 외모는 비슷하지만, 농구선수로서 형제가 걸어왔던 길은 달랐다. 조상현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슈팅능력을 지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999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됐고, 2002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이기도 하다. 반면, 조동현 감독은 악착같은 근성을 지녀 수비5걸에 2차례 선정된 바 있다. “상현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잘했지만 나는 빈약했다. 빈혈에 걸려 쉬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성격도 내성적이었다. 학창시절에는 어두운 편이었다.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안 보내려고 하셨을 정도였다.” 조동현 감독의 말이다. 하지만 조동현 감독 역시 타고난 승부 근성을 바탕으로 프로무대에서 롱런했고, 대한민국에서 단 10명만 맡을 수 있는 프로팀 감독도 다시 맡게 됐다. 조동현 감독은 “배구선수 출신인 어머니의 승부 근성을 닮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이가 들수록 인상이 선해지는 것 같지 않나. 요새는 드라마만 봐도 운다. 최근에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울었다.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사진_문복주 기자,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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