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풀어준다며]③1기 신도시는 시작일뿐..곳곳서 "우리는?"
집값 상승·재정비 순서·지역 차별 등 '첩첩산중'
정부가 1기 신도시 민심 수습에 바쁘다. 1기 신도시 주민들은 마스터플랜 발표, 특별법 제정 등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 동력을 잃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 야권 인사들도 이같은 비판에 합류, 정치적 대립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앞으로도 이런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대규모 이주와 재건축 등을 동반하는 탓에 집값이 크게 들썩일 가능성이 있다. 재정비 순서를 두고 지역은 물론이고 단지 간 갈등도 예상된다. 1기 신도시 외 서울 목동, 상계동 등에서는 이미 '역차별'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정부가 키운 기대감…"배신감만 남아"
정부는 지난달 16일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8·16 대책) '을 발표한 뒤 연일 질타를 받고 있다.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2024년 중 수립하겠다는 내용 때문이다. 애초 올해 말~내년 초에 마스터플랜이 발표될 것으로 기대했던 1기 신도시 주민들은 '공약 파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5일 "8·16 대책 발표는 신도시 대책을 본격적으로 발표한 게 아니었다"고 한발 빼기도 했다.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이 "1기 신도시 재정비 계획을 2024년까지 만들겠다고 밝힌 게 공약 파기가 맞느냐"고 질문하자 이같이 대답한 것이다.
1기 신도시 마스터플랜의 '공약 파기' 논란은 정치 이슈로 확산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달 19일 8·16 대책에 대해 "사실상의 공약 파기"라며 "정부와 별개로 경기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1기 신도시 주민들은 단체 행동에도 나섰다. 분당·일산·산본·평촌·중동재건축연합회가 모인 '1기 신도시 범 재건축 연합회'는 지난 1일 대통령실과 국회, 국토교통부를 각각 방문해 1기 신도시 재건축을 촉구하는 주민 8400명의 서명을 전달했다. ▷관련 기사: 1기 신도시 불만 커지고…목동·여의도선 "그럼 우리는?"(9월2일)
분위기가 진정되지 않자 원 장관은 지난 8일 1기 신도시 지자체장과 간담회를 열고, 1기 신도시 특별법을 내년 2월 발의하겠다며 추가 대책도 내놨다. ▷관련 기사:1기 신도시 특별법 내년 2월 발의…마스터플랜은 2024년(9월8일)
아울러 마스터플랜 수립 과정에서 지자체와 협력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정비기본방침'을, 지자체는 '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이다. 마스터플랜 수립 즉시 안전진단, 정비구역 지정 등 후속 절차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전문가들은 지난 대통령선거 때 표심을 얻고자 던진 '무리수'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1기 신도시와 같은 대규모 재정비 사업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하지만, 마치 금방 이뤄질 것처럼 기대감을 불어넣었다는 지적이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현 정부가 대통령선거 때 1기 신도시 재건축을 이슈화하면서 지역주민들의 기대감을 너무 키웠다"며 "마스터플랜 수립부터 시작해서 실제 재건축까지는 10~20년이 걸릴 텐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내용을 처음에 쏙 빼놨으니 주민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1기 신도시만?…전국이 '들썩들썩'
1기 신도시 재정비는 여전히 험로가 예상된다. 마스터플랜 수립 외에도 1기 신도시 특별법 제정과 기존 도시정비법 개정 등 과제가 산적했다. 주민들은 최대 용적률 상향,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 등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법 개정까지는 국회 다수 석을 차지한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야 한다.
이들 지역 집값이 폭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한 후 재건축 기대감이 컸던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일산·분당 등에서는 집값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특히 재건축 단지들을 중심으로 매맷값이 수억원씩 오른 거래가 포착됐다. ▷관련 기사:[부동산 줍줍]재건축 가자! 수억원씩 뛰는 분당 집값(4월17일)
이후 이렇다 할 규제 완화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서 집값은 다시 떨어졌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분당·일산·산본·평촌·중동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달부터 쭉 하락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수도권의 5개 지역을 한 번에 아우르는 재건축 계획은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며 "특히 마스터플랜 수립 후엔 개발 기대감이 커져서 매매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이고, 이후 대규모 이주가 진행되면 주변 전셋값 등도 불안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1기 신도시 내에선 재건축 순서를 둔 눈치싸움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토부는 1기 신도시 일부 지역을 '선도지구'로 선정할 수 있다고 언급, 단지별로 이해가 첨예할 수 있다.
차례대로 재건축을 진행하다 보면 최초로 재건축한 단지와 마지막 단지 간에 수십 년의 시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1기 신도시보다 입주 시기가 빠른 서울 목동, 노원, 강남, 여의도 등에서는 '역차별'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1기 신도시 인근 경기도 지역과 지방에서도 재건축 요구가 빗발친다.
국회에서도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앞다춰 특별법 제정 혹은 재건축 추진 요구에 나서기 바쁘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회 임시회에서 "(목동·노원 등) 대규모 택지개발지구 재건축 역시 1기 신도시처럼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자신의 지역구인 성남 판교와 인천 연수지구를 포함하는 '노후신도시 재정비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김인만 소장은 "재건축 등이 필요한 지역들이 공통적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기존 도정법 등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며 "1기 신도시를 위주로 가다 보면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지 10년도 더 된 여의도, 압구정에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하은 (le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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