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사상 최대 무역적자, 유류세 인하도 한몫했다
지난달 무역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인 94억7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수출 증가율이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둔화하고, 에너지 수입액이 약 2배 증가한 탓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8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원유와 가스, 석탄 등 3대 에너지원의 수입액은 185억2000만달러로 지난해 8월 수입액(96억6000만달러)보다 88억6000만달러(91.8%) 증가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생겨 에너지원의 가격이 오른 가운데, 여름철 폭염으로 에너지 수요가 늘어 수입액이 급증했다는 게 정부 분석이다.
에너지원 중 원유만 뽑아 비교하면, 지난달 원유 수입액은 105억4700만달러로 작년 8월(60억7900만달러)대비 73.5% 증가했다. 전년 대비 국제유가가 40% 오른 상태에서 수입 물량이 20% 이상 늘면서 수입액이 크게 늘었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한다. 기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3년 이라크전쟁으로 국제유가가 뛰자,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감소 전환했다. 2002년 6408만배럴을 기록한 휘발유 소비량은 2003년 6048만배럴, 2004년 5815만배럴로 줄었다.
이후 연간 5%가량 늘던 휘발유 소비량은 2008년 원유 가격이 배럴당 150달러를 상회하면서 증가세가 주춤했다. 당시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는데, 정부가 유류세 10% 인하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면 휘발유 소비량은 전년보다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도 휘발유 소비량은 유가 변화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점으로 배럴당 92달러대를 돌파한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3월 배럴당 110달러를 상회했다. 이후 7월까지 100~110달러대를 유지했다.
국내에선 3월 이후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이 1900원대를 넘었다. 휘발유 가격이 폭등한 지난 3월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588만8000배럴로, 작년 3월(651만2000배럴) 대비 62만4000배럴 감소했다. 4월에는 휘발유 소비량이 563만9000배럴로 작년 4월(714만1000배럴)보다 150만배럴 이상 줄었다.
하지만 5월 들어 정부가 유류세 인하 폭을 확대하자 휘발유 소비량은 빠르게 회복했다. 유류세 할인율이 30%로 오른 지난 5~6월 두 달 동안의 휘발유 소비량은 1506만2000배럴로 전년 동기간 소비량(1456만6000배럴) 대비 50만배럴 증가했다. 유류세 인하율이 37%까지 상승한 7월에는 휘발유 소비량이 842만3000배럴로 작년 7월 소비량(729만2000배럴)보다 113만 배럴 증가했다.
정부가 고물가로 인한 민생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시행한 유류세 인하 조치가 소비 진작으로 이어진 것이다. 유류세 인하 조치 이후 석 달 동안 증가한 휘발유 소비량은 160만배럴 이상, 이를 수입액으로 환산하면 2억달러 수준이다. 5~7월 휘발유 소비량이 전년 수준을 유지했다면 에너지원 수입 증가로 인한 무역적자 폭을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전 세계적인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현재 주요국들은 통화 긴축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제로금리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올해 3월부터 단계적으로 인상, 현재 연 2.25~2.5%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잭슨홀 미팅에서 “물가상승률을 2%로 되돌리기 위해, 충분히 제약적인 수준까지 의도적으로 (통화)정책 스탠스를 가져갈 것”이라며 금리 인상 기조 유지 입장을 밝혔다.
물가를 잡기 위한 긴축 정책은 고통을 수반한다. 이와 관련, 파월 의장은 “높은 금리와 느려진 경제 성장, 약해진 노동시장 여건이 물가상승률을 낮추는 사이 가계와 기업에도 일정 부분 고통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고통과 경기 침체 우려에도 긴축 정책을 펴는 것은 물가 안정이 실패할 경우 떠안게 될 더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다.
고물가 시기, 절약은 미덕이다. 개인의 소비 절제와 함께, 정부도 수요를 자극하는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 공공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국고 수입을 포기하는 게 최선의 방법인지도 따져볼 일이다. 국민들의 전기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전기요금을 동결시킨 문재인 정부의 공공요금 정책은 한전의 재무 건전성 위기로 돌아왔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시장의 역할과 기능을 제한할 뿐이다.
국제유가는 지난달부터 조금씩 내려가고 있다. 겨울철 에너지 수요 증가로 유가가 재반등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현 상황에선 긍정적인 신호다. 정부로선 유류세 인하 조치의 출구 전략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연말까지 유류세 37% 인하’라는 발표 문구에 매이기보다는 유연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윤희훈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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