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로 마지막 추석 보내는 염기훈 "하나씩 내려놓으며 뛰는 기분이요?"
(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프로축구 K리그1 수원 삼성의 베테랑 미드필더 염기훈(39)은 누구보다도 특별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2006년 데뷔한 염기훈은 이번 시즌 시작 전 "올해까지만 뛰겠다"고 은퇴를 예고했다. 그래서 이번 시즌의 모든 것들이 그에겐 '선수 생활 마지막'이다.
끝이 정해진 상태로 일 년의 시간을 아껴 쓰고 있는 그를 '뉴스1'이 만났다.
◇ "끝을 알고 뛰어도 아쉽더라"
염기훈은 "이별을 미리 알면 아쉬움이 덜 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면서 "한 경기, 한 경기가 끝날 때마다 아쉽고 하루, 하루가 지날 때마다 아쉽다. (처음엔) 그래도 일 년이 남았다 싶었는데 어느덧 9월이다. 올해는 월드컵이 있어 리그가 더 일찍 폐막하지 않나. 이젠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시원섭섭한 소감을 전했다.
이번 시즌 염기훈은 18경기에 출전했다. 전성기만큼의 기량은 아니겠으나 여전히 특유의 존재감으로 팀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병근 수원 감독은 "아직도 상대 팀에서 (염)기훈이 공을 잘 못 뺏는다. 플레잉코치로라도 좀 더 함께해줬으면 좋겠다"며 염기훈의 은퇴에 아쉬움을 표했다. 염기훈의 고향 친구들과 지인들도 "딱 일 년만 더 뛰어 달라"며 은퇴를 만류하고 있다.
그의 입에서 "아쉽다"는 소감을 들었겠다, "사람마음이라는 게 이럴 땐 흔들리기도 할 것 같다. (은퇴를 번복해도) 모두가 이해하지 않을까"라며 슬쩍 떠봤다.
하지만 그는 "은퇴 의사를 바꿀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염기훈은 "이미 모든 결심을 마쳤다. 이제는 지도자를 해야겠다는 꿈과 계획이 있다"고 설명했다.
염기훈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이미 지도자 A라이센스까지 따 놓은 상태다. 염기훈은 "계획대로, 멋지게 잘 은퇴하고 싶다"며 흔들리지 않고 끝맺음을 준비하겠다는 뜻을 재차 피력했다.
◇ "추석에 경기가 있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
대부분의 선수가 염기훈과 같은 마지막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따로 은퇴 발표를 하지 않고 조용히 축구화를 벗는 선수도 있고, 시즌 막판에서야 "여기까지 하겠다"는 선수들도 있다. 그에게 주어진 '보장된 한 시즌'은 꽤 귀하고 값진 선물이다.
염기훈은 "은퇴 발표 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마지막이라는 시선으로 담으니 더 감사하고 간절해진다. '운동을 하는 나의 하루하루와 환경들이 참 행복한 일이구나' 하는 걸 매일 느낀다. 또 훈련할 때 왜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조금 더 파고들지 못했을까 하는 반성도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염기훈은 매 경기에 투입될 때마다 1분1초, 공 하나하나를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미 마지막이 된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슈퍼매치다.
어쩌면 지난 4일 치른 FC서울과의 슈퍼매치가 선수 인생 마지막 라이벌전일 공산이 꽤 크다. 염기훈은 이 경기서 교체 투입, 팀의 3-1 완승을 이끌었다.
염기훈은 "그동안 많은 슈퍼매치를 준비하고 뛰었다. 이번에는 마지막 슈퍼매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준비 과정부터 감회가 정말 남달랐다. 승리가 더 간절했고, 투입됐을 때는 감사한 마음이 가장 컸다"고 회고했다. 승리했으니 그야말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추석 역시 그의 선수 생활 중 마지막 명절이다. 그는 "대학 때는 명절 때 종종 휴가를 받은 적도 있는데, 2006년 프로 데뷔 후에는 설날과 추석에 쉰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다보니 솔직히 명절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올해는 추석도 의미가 다르다"면서 "이제는 다 큰 내 아이들이 '아빠, 이번 추석 때 할아버지네 갈 수 있어?'하고 물어보길래 경기가 있어서 못 간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구나 싶더라"며 멋쩍게 웃었다.
◇ "'80-80'과 함께 멋지게 은퇴하고파"
지도자 준비를 마친 뒤에도 좀 더 선수로 뛰는 상황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부분도 있다.
염기훈은 "예전에는 선수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선수로 뛰면서도 지도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같이 고민하게 된다. 이 시간이 나중에 은퇴 후 분명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선수 생활의 마지막이자 은퇴 후의 처음을 함께하고 있는 염기훈이다. 염기훈의 '선수 시계'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남은 시간 어떤 목표를 갖고 있을까.
그는 "팀으로는 스플릿 A 진입이 목표다. 아울러 80-80 클럽(80골·80도움)을 달성하고 은퇴하면 좋겠다. 달성하지 못해도 좋은 마음으로 은퇴하겠지만, 대기록과 함께한다면 더 기쁠 것 같다. 멋진 은퇴를 위해 계속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염기훈은 8일 기준 441경기 77골110도움을 기록 중이다. 남은 경기서 3골을 추가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염기훈은 "마지막 순간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멋진 은퇴를 준비하겠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tr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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