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에 권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반값' 지역주택조합의 몰락

차학봉 부동산전문기자 2022. 9. 12. 05: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차학봉기자의 부동산 봉다방>
저렴하다는 지역주택조합, 토지 확보 실패땐 사업무산
추가부담금, 조합 대행사 시공사 갈등으로 사업지연도
정부 "모든 책임은 조합 가입자 본인에게 있다"는 안내만
유럽선 조합주택, 꿈의 내집마련 수단, 한국선 정책 소외지대

저렴하게 내집을 마련하는 수단으로 각광받았던 지역주택조합이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오히려 서민들의 꿈을 짓밟고 있다. 지역주택조합은 지역 주민들이 모여 조합을 결성, 저렴하게 집을 지어 ‘반값 아파트’로 불리기도 한다. 청약 통장이 필요 없는 일종의 아파트 공동구매이다.

하지만, 토지주들이 사업주체가 되는 재건축, 재개발 조합 사업과 달리,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의 자금을 모아 토지를 사들이고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조합원 모집에 실패하거나 토지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사업이 중간에 무산될 수 있다. 토지확보 비용이 늘어나 추가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다반사이다. 일반 아파트는 분양가, 착공,완공 등이 사전에 확정되지만, 조합주택은 사업일정과 분양가를 확정할 수 없는 구조이다.

각 구청 홈페이지에는 지역주택조합의 정보를 게시한다. 지역주택조합 정보를 제공하면서 “사업계획승인 이전 단계에 해당하는 지역주택조합 사업계획은 미확정된 사항으로 조합 가입 시, 모든 책임은 조합 가입자 본인에게 있음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 7월까지 5년간 서울에서 조합을 설립한 지역주택조합 사업지는 19곳이지만, 착공한 사업지는 2곳에 불과했다. 물론 무사히 토지를 확보 완공돼 입주한 사업장도 많지만, 문제는 성공할 사업장과 실패할 사업장을 일반인들이 사전에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알박기 등 리스크 곳곳에

정부는 조합주택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2020년 7월 법을 강화했다. 조합주택은 조합원 모집, 조합 설립,사업계획승인 단계를 밟는다. 법 개정으로 조건이 없었던 조합원 모집은 사업지 면적 50% 이상의 토지사용권원(토지를 사용ㆍ점유할 수 있는 권리)을 확보한후 해당 지자체에 조합원 모집신고를 하고 조합원 모집 신고필증을 받아야 가능하다. 조합 설립은 사업지 면적의 80%에 달하는 토지사용권원을 확보하면 가능했지만 법 개정으로 80%의 토지사용권원뿐만 아니라 15%의 토지 소유권도 확보해야 한다.

조합원 모집이 순조롭게 이뤄져도 지자체가 사업을 승인하는 기준인 토지소유권 95% 확보이다. 문제는 토지소유권 95%를 확보하지 못하면 사업이 계속 지연될 수 있다. 90% 토지를 확보해도 터무니 없이 땅값을 요구하는 이른바 알박기’로 땅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추가부담금이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

◇조합원의 무한 책임, 사업지연과 추가 공사비도 본인 책임?

일반 소비자들이 일반아파트 분양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 아파트는 분양사와 계약을 하면 분양가가 확정되고 사업이 지연되면 건설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시행사나 건설사가 부도를 내면 주택분양보증을 통해 완공된다. 반면 조합주택은 조합원이 조합운영의 책임과 권한을 함께 갖는다. 조합원이 사업주체이기 때문에 토지확보 지연 등 사업진행이 늦어지는데 따른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없다. 중도 탈퇴도 쉽지 않다. 납부한 돈의 상당부분이 용역비 등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의결권 확보를 위해 유령 조합원을 만들고, 토지사용허가 문서를 위조하는 불법행위가 벌어져도 일반인들이 이를 알수 가 없다. 몸통 없이 머리만 있는 걸 빗댄 속칭 ‘돼지머리’조합원이라는 것도 있다. 일부 세력이 위장 조합원을 만들어 조합 운영을 좌우하는 것이다. 지역주택 조합은 보통 일정 자격요건을 갖춘 업무대행사를 통해 추진한다. 조합원, 조합 집행부, 대행사, 시공사간의 갈등이 벌어지면서 소송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

◇유럽선 정부지원과 신뢰성 확보, 꿈의 주택

스웨덴에서는 협동조합주택이 저렴한 내집 마련의 상징이다. 스웨덴 주택의 20%가 협동조합이 지은 집이다. 스웨덴의 대표적 주택조합인 호에스베(HSB)는 1924년 만들어졌는데, 크고 작은 주택조합 4000여 개가 가입돼 있다. 호에스베는 사실상 우리나라의 대형 건설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스웨덴의 주택단지. 스웨덴에서는 주택의 20%가 조합주택방식으로 공급되고 있다.

다만 비영리 법인으로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저렴하게 주택건설이 가능하다. 조합의 정회원 수만 55만명이다. HSB의 조합원이 되려면 매달 우리돈 5만원을 회비로 내고 적립 기간에 따라 입주 우선순위가 주어진다. 유럽의 상당수 국가는 협동조합주택에 시유지 등을 우선적으로 공급, 저렴하게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한국의 경우, 공공택지를 대량 개발하고 있지만 대부분 민간 건설사에 매각하고 있다.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역주택조합 피해자가 속출하는데도 정부가 민간 계약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방관해왔다”면서 “지역주택조합의 피해자가 서민들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정부가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