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전통? “한복은 힙하다”… ‘블랙핑크’ 한복 디자이너를 만나다 [줌인(人)]
블랙핑크 뮤직비디오에 소개되며 주목… 해외에서도 큰관심
한복 디자이너가 되기 전부터 직접 만든 한복입고 해외 여행
매듭장인이던 할아버지 영향…어릴 때부터 전통문화에 관심
지속가능한 가치를 추구하고, 철학이 담긴 브랜드 위해 공부
“한복 산업은 여전히 성장 중… 일상서 패션으로 정착할 것”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전통 유물이라든지 유산을 이용한 패턴 디자인을 사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이게 블랙핑크 뮤직비디오에 소개되면서 조명받기 시작했는데, 이전까지는 저처럼 궁중 보자기, 궁중 도배지 등 전통 요소를 이용해 원단을 만든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궁중 보자기 패턴을 보고 저런 걸 원단에 사용하면 멋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걸 리터치해서 패턴화시켰죠.”
김단하 디자이너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가 자신들의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 자신이 만든 한복을 입고 나온 일이다.
“블랙핑크 측에서 협찬을 제안했을 때 잘못 들었나 싶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를 아는 사람이 많이 없었고 협찬도 잘 안 들어올 때니까요. 회사 (전화)번호도 따로 없었어요. 연락받고 YG 측에 저희 컬렉션의 모든 옷을 갖다 드렸어요. 협찬받은 수백개의 옷들 가운데 설마 우리 옷이 선택될까 싶었지만, 두근두근했죠. 촬영하고 뮤직비디오를 공개할 때까지도 저희 쪽에 채택 여부를 알려주지 않았기에, 블랙핑크 컴백을 기다리며 보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뮤직비디오가 끝나갈 때까지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럼 그렇지 했는데 마지막 부분에 저희 한복을 입은 블랙핑크가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블랙핑크는 왜 단하주단을 선택했을까.

“한 달에 한 건정도였던 해외 주문이 하루에도 몇백건씩 들어왔어요. 판매량이 늘어난 것도 좋았지만, 한복이라는 걸 해외에서 알아봐 준다는 게 너무 뿌듯했죠. 해외팬들이나 유튜브에서 제니(블랙핑크 멤버)가 입은 옷이 한복이고, 이건 조선시대 선비들이 입었던 옷이라는 등 기원과 우리 역사를 공유하는 걸 보니 짜릿하더군요. 동양의 전통 복식이라고 하면 치파오나 기모노가 주로 언급되던 분위기에 한복이 해외에서 그들보다 힙한 문화가 된 것 같았어요.”
‘맛집’은 입소문을 타고 알아서 잘되는 법이다. 그 이후 단하주단은 따로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각종 매체에서 찾아왔다. 원래도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홍보에 주력했기에 한 달에 5만∼10만원 수준의 적은 마케팅 비용만 들여왔고 지금도 따로 광고에 돈을 쓰진 않는다. 마케팅에 돈을 들이기 보다 제품 자체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다만 온라인에서 뜨거운 해외 팬들의 열기를 아직은 실제로 느껴보진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오프라인 행사 등이 중단되고, 해외 출국 등도 막히면서 아직 해외 시장에서 인기를 체감하진 못했어요. 회사를 차린 후에 절반 이상이 코로나 기간이었거든요. 그래서 아쉬운 부분이 있죠. 이제 거리두기 등이 해제되고 하면서 해외 활동도 늘어날 것 같아요. 오는 21일에 영국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 전시를 시작하고, 27일에는 파리 패션 위크에 처음으로 참석해 한복을 선보일 거에요.”

알레르기 민감도가 ‘일반 사람의 200배’라는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미세먼지 등을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저절로 건강한 삶과 환경 문제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고, 사업을 새활용플라자에서 시작하게 된 계기도 됐다.
“지난달 31일 퇴거할 때까지 새활용플라자에서 4년을 보냈죠. 2018년 8월 단하주단을 시작하고 그 다음달에 새활용플라자에 입주했어요. 서울시 산하 기업이다보니 월세도 저렴했고, 제가 추구하는 가치와 잘 맞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거 폐현수막이나 웨딩드레스 등을 해체하고 그걸로 한복을 만들어 전시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곳에 상주하며 일했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도 우리의 전통문화가 아름답다는 생각은 집안환경에서부터 비롯했다. 전통 매듭장인이시던 할아버지 댁에는 벽에 늘 전통 장식들이 걸려있었고, 집안의 첫 손주였던 김단하 디자이너에게 매듭 줄로 열쇠고리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곤 했다. 그의 조부는 부산공예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김단하 디자이너가 부산 가야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시절에는 교복이 한복이라, 자연스럽게 일상 생활복으로써 한복도 경험할 수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 친구와 함께 한복을 입고 몽마르트르 언덕의 사랑의 벽을 구경하고 있는데 자신이 사진작가라고 하는 프랑스인이 다가와 우리 자신을 찍고 싶다고 하더군요. 이후에 그 작가는 한국에 놀러 와서 저희 회사를 방문하기도 했어요. 또 한 번은 어떤 여성이 달려와 자신이 바이어인데 제 한복 스커트가 어디 브랜드냐고 묻기도 했죠. 이처럼 한복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얻게 된 경우가 많아요. 미국 요세미티에 있는 아와니 호텔 레스토랑이라고 있는데,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라더군요. 그런데 한복을 입고 방문했더니 ‘당신 옷이 너무 멋지니 가장 좋은 자리를 안내해주겠다’고 해서 놀라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면 약간 ‘관종’으로 보는 것과 차이가 있죠.”
중어중문학과 전공에 카지노 회사에 다니던 그는 투잡 형태로 한복 온라인 대여사업을 하는 등 한복 관련한 사업에 관심이 컸지만, 비전공자라는 한계에 부딪혔다. 이걸 평생하려면 얕은 지식으로는 안되겠다 싶어 궁중복식연구원에서 3년간 명인으로부터 바느질 같은 실기를 배웠다. 부산에서 서울을 당일치기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다니며 손기술을 늘었으나, 디자인을 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했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려면 복식사 등 뿌리부터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통합과정도 마쳤다. 그저 사업가가 아니라 가치와 스토리, 철학을 담은 브랜드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전통 한복은 양장과 다르게 평면 재단을 사용해요. 평면 재단이라는 건 그야말로 네모랑 네모를 합쳐서 바느질한거에요. 저도 이부분을 강조하고 싶고, 디자인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인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입는 수트를 떠올리면 몸에 꼭 맞게 딱 떨어지잖아요. 그런데 한복은 뜨는 부분이 아주 많아요. 이게 양장처럼 곡선으로 원단을 재단하지 않고 네모인 상태를 덧붙여서 옷을 만들었기 때문인데, 이렇게 되면 체형이나 생활에 맞게 주름이 생겨요. 옷이 체화된다고 할까. 저는 그래서 한복이 융통성 있는 옷이라고 표현해요.”
그는 또 평면재단으로 만드는 한복이 일반적인 옷보다 친환경적이라고 설명했다.

“한복이 예전과는 다르게 매우 다양해졌고,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졌다고 느껴요. 한복이면서 스트릿 분위기를 내기도 하고, 우리처럼 페미닌한 느낌을 강조하는 곳도 있고. 가격도 몇만 원대부터 몇십만 원대까지 다양하죠. 한복이 낯선 이들에게 한 번쯤 경험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비싼 제품은 물론 바느질부터 공정까지 더 정성이 들어가지만, 꼭 모두에게 이런 한복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일단 수요가 늘어야 한복의 공급가도 더 저렴해질 수 있죠.”
단하주단에서 한복을 ‘풀착장’으로 구매하면 얼마가 필요하냐고 묻자 그는 “30만원정도”라고 답했다. 블라우스가 10만원, 허리치마가 20만원 선이다. 그는 퀄리티를 지키면서 어느정도 가격대를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속에서 균형을 찾은 값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처음 단하주단을 시작했을 때는 허리치마가 45만원정도였어요. 그런데 주문이 많아지고 판매량이 늘어나니, 원단 구입량 등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공급가가 떨어졌죠. 그에 맞춰 가격을 내리다 보니 저렴한 허리치마의 경우 20만원대로 가격이 처음보다 50% 싸게 팔수 있게 됐어요. 한복은 손바느질이 기본이고 소재 등에 여러가지 디테일이 있는데, 하나하나 신경쓰다보면 자연스럽게 공임비는 올라갈 수밖에 없어요. 이런 전통방식과 퀄리티를 지키면서도 가능한 저렴하게 팔고 싶다고 생각해요.”

한복은 우리의 전통 의복이지만,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있다. 한복 디자이너로서 그는 한복이 앞으로 ‘콘텐츠’의 하나로 진화할 것으로 봤다.
“한복은 정체돼있지 않아요. 저희도 스냅챗에서 증강현실(AR) 등 기술로 가상으로 한복을 시착하고, 제페토에서 메타버스 한복을 제공하고, NFT(대체 불가능 토큰)를 발행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죠. 한복을 꼭 입어서 즐기는 게 아니라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지고 있어요. 최근에 매장을 찾은 손님들한테도 ‘언제 입으실 거에요’라고 물어보곤 하는데, 출퇴근할 때 입는다거나, 여행·모임 갈 때 필요해서 산다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한복을 예전처럼 예복이 아니라 일상에서 개성을 표현하고 특별한 옷을 입고 싶을 때 찾는 거죠.”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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