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창고에서 일해도 난 좋아"..정신승리라고? 그게 뭐 어때서 [씨네프레소]

박창영 2022. 9. 1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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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46] 영화 '인 디 아일'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개개인 삶을 실시간으로 비교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세대는 좋은 차와 시계, 집 등으로 구성된 '인스타그래머블'한 인생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나은 것이라고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다. 자본이 넉넉하지 않은 삶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정신승리라고 때때로 비웃음을 산다. 우리가 여러 채널을 통해 접하는 남의 인생은 점점 더 화려하고, 풍족한 것 위주가 된다.

`인 디 아일`은 마트 직원들의 일상을 비추며 삶을 긍정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사진 제공=M&M 인터내셔널>
그러나 우리가 정신승리라는 비아냥이 두려워 자기 삶을 긍정하길 경계할 필요가 있을까. 단순히 생각해보면 정신승리의 반대말은 정신패배인데 말이다. 타인 앞에서 굳이 광고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매일 정신패배하는 대신 정신승리하는 삶을 사는 편이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인 디 아일'(2018)은 낙후된 구 동독 지역에서 그닥 풍족하지 못한 삶을 영위하는 마트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각자 인간으로서 외로움을 가지고 마트에 출근하지만, 궁극적으론 자기 인생을 부정하는 대신 삶의 사소한 부분에서 기쁨을 발견하며 살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말수 없는 크리스티안(왼쪽)은 마트에 취직해 업무를 익혀간다. 사수 격인 브루노(오르쪽)는 근무를 위해 필요한 지식을 친절하게 전수해준다.<사진 제공=M&M 인터내셔널>
지게차를 잘 모는 것, 현재의 가장 큰 목표

영화는 대형마트에 취직한 크리스티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과묵한 데다가 표정도 밝지 않은 그는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이지만, 마트 직원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특히 그의 사수 격인 브루노는 "말수가 별로 없는 편인가? 난 상관없어"라는 말을 먼저 건네며 크리스티안이 편하게 일할 만한 환경을 조성해준다.
지게차를 잘 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칫하면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할 수 있다.<사진 제공=M&M 인터내셔널>
이야기 초반부에 크리스티안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로 설정된다. 하나는 매력적인 여성 동료 마리온과 좀 더 가까워지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지게차를 완벽하게 모는 것이다. 이 중 두 번째 목표가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그려진다. 지게차로 마트 진열대 가장 위에서 아래로 맥주 병이 담긴 박스를 내리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카메라는 크리스티안이 겪는 시행착오와 동료들의 격려, 그가 노력 끝에 자격증을 따는 과정을 진득하게 바라본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편리엔 대부분 다른 사람의 시간이 깃들어 있다.<사진 제공=M&M 인터내셔널>
'응시'를 통해 드러나는 마트 노동자의 '시간'

영화에서 무엇을 찍을 것인가의 문제는 이미 가치판단의 영역이다. 등장인물 대사를 통해 사물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카메라가 무엇을 오랫동안 찍는지를 통해 해당 작품이 중요시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영화 '잔느 딜망'(1975)에서는 주인공 여성이 감자를 깎는 장면을 장시간 비춘다. 삶에서 부수적인 요소로 여겨지던 가사노동을 응시함으로써 여성의 일상 속 시간이 엄연히 존재한단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잔느 딜망`에서는 주인공이 감자를 깎는 모습을 오랜 시간 비춘다.<사진 제공=크라이테리온 콜렉션>
'인 디 아일'에서 자주 카메라를 들이대며 크리스티안이 지게차 운전을 숙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서비스 대부분엔 누군가의 시간이 깃들어 있단 것이다. 마트에 간 우리가 집기 좋은 곳에 상품이 놓여 있는 데엔, 물건이 하나씩 빠질 때마다 뒤에 있는 상품을 앞으로 배치하는 직원의 노동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접하는 삶은 월스트리트의 금융인, 우주비행사, 글로벌 로펌 소속 변호사, 대형 레스토랑 셰프 등 화려한 것에 치중돼 있지만, 마트에서 고객을 만나기 전 용모를 단정히 하고, 바닥에 깨진 물건을 조용히 쓸어담는 이들의 시간 또한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 디 아일'은 응시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는 마트 노동자의 일상을 비춘다. <사진 제공=M&M 인터내셔널>
"이비사가 안 부럽군" "가본 적도 없잖아"

이 영화엔 인물들이 주간엔 마트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운동선수, 가수로의 데뷔를 꿈꾸고 있다든지 하는 반전이 없다. 인물들은 어느 라인에서 지게차를 한 번 더 쓸 것인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그들은 지금의 삶에 집중한다. 아들이 대학 가겠다고 말한 것이 고민인 아버지 이야기도 나온다. 아들이 헛바람 들었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일단 기능공 자격증부터 따라고 조언한다.
크리스티안은 고된 노동 끝에 집으로 돌아와도 반겨줄 사람이 없다. 잠자리에 누운 그는 어쩌면 다음날 출근해서 직장의 온기를 느끼기만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사진 제공=M&M 인터내셔널>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직원들끼리 파티를 하던 도중 상의를 벗어젖힌 한 남성이 말한다. "이비사가 안 부럽군." 동료가 "가본 적도 없잖아"라고 놀리는 말에 그는 "가고 싶지도 않아"라고 말하고 그저 현재 누릴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남이 정신승리라고 놀려도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안은 과거 절도죄로 수감된 적이 있다. 그는 과거와 완전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살길 원한다. <사진 제공=M&M 인터내셔널>
가족조차 서로의 슬픔을 100% 아는 건 불가능하다

영화는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 근심이 없었다는 식의 무책임한 낙관론은 아니다. 주요 인물인 크리스티안, 마리온, 브루노의 슬픔을 각각 비춘다. 성실한 크리스티안은 사실 어린 시절 도둑질로 2년간 수감된 적이 있었다. 직장에서 늘 쾌활한 얼굴로 사랑받는 마리온은 그를 함부로 대하는 남편 때문에 가정생활이 평온하지 않다.
크리스티안이 마리온과 저온 창고에서 에스키모식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 제공=M&M 인터내셔널>
무엇보다 브루노는 난데없는 자살로 직장 동료 모두를 슬픔에 빠뜨린다. 직장에서 그는 동료를 품을 줄 아는 어른이었다. 크리스티안에게 사실상 가정 파탄 상황인 마리온의 옆에 있어줄 것을 권하며, 자신이 아끼는 두 사람이 행복해지길 바랐다. 그러나 부인과 함께 산다던 그는 사실 혼자 산 지 오래였고, 내면엔 고독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쩌면 흡수통일 이후 정체성에 혼란을 겪은 동독인으로서 아픔을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자기 인생을 마트의 좁은 수족관에서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팔려나가고야 마는 물고기와 동일시했을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을 품던 브루노(오른쪽)는 난데없이 목숨을 끊어 동료를 슬프게 한다.<사진 제공=M&M 인터내셔널>
크리스티안의 생각은 복잡해진다. 입사 초기 브루노가 자신에게 노끈은 활용도가 많으니 챙겨두라고 했던 것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크리스티안의 심경을 알아챈 마리온이 다가와 지게차 포크를 가장 위까지 올릴 것을 권한다. 그리고 천천히 이를 내리며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얘기한다. 기계 소리 속에서 두 사람은 파도 소리를 듣는다. 과거 브루노가 마리온에게 알려준 내면을 진정시키는 법이다. 조금만 집중하면 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도 파도 소리를 찾을 수 있다.
두 사람은 꼭대기까지 올렸던 지게차 포크를 천천히 내리며 소리에 귀 기울인다. 조금만 집중하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진 제공=M&M 인터내셔널>
정신승리하며 꿋꿋이 자기 길을 걸어가기

사랑하는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 이유를 추측하느라 너무 골몰해버려 자기 삶까지 절망으로 물들여버리는 건 가급적 피해야 한다. 마리온이 크리스티안에게, 또 브루노가 마리온에게 일상 속에서 평온함을 찾는 법을 알려준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타인의 인스타그래머블한 삶에서도, 또 남의 슬픔에도 내 인생이 잠식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현실 복귀 장치'를 삶의 곳곳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알 수 있는 건 본인의 내면뿐이고,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꿋꿋이 자기 길을 걷는 것뿐이다. 약간의 자기 위로와 정신승리가 현실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이다.
크리스티안과 마리온이 직원 휴게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 제공=M&M 인터내셔널>
정신승리법을 하나 소개하며 마무리짓는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단위의 돈을 생각해봐라. 여기선 편의상 1조원이라고 하자. 그리고 당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이를테면 배우자, 딸과 아들, 부모와 형제, 강아지를 떠올려봐라. 당신은 누가 1조원을 준다고 하면 그것과 바꾸겠는가. 아니라는 답이 나왔다면 당신은 조단위 부자를 별로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미 1조원을 줘도 바꿀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인 디 아일` 포스터<사진 제공=M&M 인터내셔널>
장르: 드라마
감독: 토마스 스터버
출연: 프란츠 로고스키, 산드라 휠러, 페터 쿠르트
평점: 왓챠피디아(3.8/5.0)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90%) 팝콘지수(63%)
※2022년 9월 9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웨이브, U+모바일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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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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