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선배"와 "글로벌 스타"의 만남.."멜로, 충분히 자격 있죠?"

2022. 9. 1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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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오영수 연극 '러브레터'
배종옥·장현성 더블 캐스팅
10월 6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극 ‘러브레터’의 오영수 박정자 [예술의전당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제가 ‘러브레터’라는 연극을 한다고 하니, ‘선생님, 멜로도 하시네요?’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왜 멜로 못해요. 충분히 자격 있죠?” (배우 박정자)

무대 위에서 보낸 시간이 무려 반세기다. 한국 연극계의 대모 박정자가 오랜 인연을 맺은 후배 오영수와 한 무대에 선다. 두 주인공이 50년간 주고 받은 편지 333통을 “오롯이 낭독하는 독특한 형식의 연극” ‘러브레터’(10월 6일 개막,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를 통해서다.

‘러브레터’는 미국의 극작가 A.R.거니의 대표작으로, 퓰리처상 후보로 두 차례나 오른 작품이다. 연극 ‘러브레터’는 캐스팅이 화려하다. ‘연극계의 흥행 보증수표’로 떠오론 원로 배우 박정자 오영수, TV와 무대를 오가며 대중적 인기를 확보하고 있는 배종옥 장현성이 더블 캐스팅으로 이름을 올렸다. 장현성은 “20년 넘게 상연된 ‘러브레터’라는 작품에 가장 최고의 캐스팅”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각각 멜리사와 앤디 역을 맡아 관객과 만난다.

최근 진행된 간담회 자리에서 연출을 맡은 오경택은 이 작품의 캐스팅에 대해 ‘세 가지’를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액팅 없이 말로만 전달돼야 하는 만큼 섬세한 연기력”을 최우선에 뒀다. 여기에 극중 앤디와 멜리사처럼 “오랜 세월을 통한 친밀감”을 갖고 있는 남녀 배우를 물색했다. 뿐만 아니라 “특정 시대와 공간”이라는 배경을 떠나 “보편적 힘과 마법을 구사하도록 많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캐스팅”이 중요한 요건이었다.

오경택 연출가는 “대본을 받은 뒤 가장 먼저 박정자, 오영수 선생님이 본능적, 직관적으로 떠올랐다”며 “진정한 인간관계와 소통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인데, 오랫동안 우리나라 연극 무대를 지켜온 두 선생님의 연륜과 내공, 시간의 힘이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극 ‘러브레터’의 오영수 박정자 배종옥 장현성(왼쪽부터) [예술의전당 제공]

실제로 두 사람의 인연은 각별하다. 노배우들은 서로를 ‘글로벌 스타’와 ‘박 선배’라고 부르며 지난 시간의 길이를 떠올렸다. 박정자는 “1971년 극단 자유에서 만나 오랫동안 호흡을 나눈 사이인데 이렇게 나이 먹어 글로벌 스타가 된 오영수 배우와 무대에 서게 됐다”며 “배우는 정말로 축복받은 존재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영수도 “박 선배는 연배도 저보다 위고, 연극 시작도 선배시다. 박 선배와 50년이 넘도록 함께 무대에 서며 선후배 관계 이상의 우정을 느끼며 지내왔다”며 “‘러브레터’를 같이 하면서 지난 시간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나면 초반엔 불편하고 호흡도 엇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박 선배와는 그런 불편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배종옥과 장현성 역시 긴 시간을 함께 한 선후배 사이다. 두 사람은 2004년 단막극 ‘내가 살았던 집’(KBS1)을 통해 처음 만나 2010년 ‘호박꽃 순정’(SBS), 2018년 ‘라이브’(tvN)에서 호흡을 맞췄다. 배종옥은 “(장)현성 씨는 틈틈이 연극을 함께 보러 다니고, 이야기하는 시간도 많이 가졌던 후배”라며 “‘러브레터’ 대본을 받은 뒤 남자 배우로 장현성 씨가 떠올랐는데 함께 하게 됐다”고 말했다.

‘러브레터’는 신구 정동환 서인석 남명렬이 출연하는 ‘두 교황’, 이순재 백일섭 노주현의 ‘아트’와 함께 연극계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방탄노년단’ 3대 작품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원로 배우들의 두드러진 활약에 붙은 별칭이다.

지난달 막을 내린 연극 ‘햄릿’에 이어 ‘러브레터’까지 쉼 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는 박정자는 원로배우들의 활약에 “무대에 있는 배우는 운동선수와 같다”며 “운동선수가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듯 배우는 항상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무대에 서는 우리에게 정년은 없다”고 강조했다.

50년 넘게 무대에 섰지만, 오영수는 진정한 배우의 모습은 70~80대가 돼야 완성된다고 했다. 그는 “40~50대까지만 해도 관객이 주는 희열에 배우로의 자긍심을 느끼며 그런 시간을 보냈다”며 “ 60대를 지나 70대가 되니 그것만 가지고 배우의 모습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우는 인생을 이야기하는 직업이다. 인생을 이야기할 정도의 연륜을 밟아가다 보면 배우로서 내공이 생기고, 그 안에 한 인물이 보이게 된다”며 “배우로서 거기까지 가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70, 80세까지 갔을 때 배우의 참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무대에서 정진하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무대를 내려오고 싶다”고 말했다.

연극 ‘러브레터’ 장현성 배종옥 [예술의전당 제공]

이미 업계에선 중견배우이자 선배로 자리하고 있는 배종옥 장현성은 오랜만에 대선배들과 함께 하는 시간의 특별함을 새기고 있다.

배종옥은 “현장에 나가면 어느덧 선배가 될 만큼 나이를 먹어 때때로 고독하다는 생각을 한다”며 “아무도 내게 연기에 대해 말해주지 않고, 무언가 잘못됐을 때 스스초 캐치해야 했는데, 선생님들과 함께 작업을 한다는 것이 내가 무대에 서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있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연기를 하다 보면 상대와 주고 받으며 생기는 감정이 있는데, 혼자 편지를 읽는 사이사이에 나오는 감정을 가져오는게 쉽지 않다. 선생님들의 연습에 나가 컨낭하며 배우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장현성 역시 “소년 장현성일 때부터 무대 위 스타였던 두 분을 만났다”며 “선생님들은 내가 좀 더 좋은 후배가 되고 싶게 한다. 연습하러 가는 시간이 즐겁고, 더 잘 하고 싶고, 시간이 가는게 아깝다”고 했다.

두 커플은 한 무대에서 만날 일은 없다. 기존의 연극이 같은 연령대의 배우로 캐스팅한 것과 달리 ‘러브레터’는 중년의 두 배우와 황혼의 두 배우를 더블 캐스팅한 것도 독특하다. 배종옥은 “연배가 다른 페어인 만큼 하나의 작품이면서 두 개의 작품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연극은 SNS에 시대엔 ‘멸종’된 편지라는 매체가 전달하는 아날로그 감성이 깊은 울림을 줄 것으로 보인다. 오영수는 “사랑이라는 말이 숨어 들어가고, 표현하지 않는 삭막한 세상에 사랑을 되새기는 연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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