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영원한 숙제 ‘가족’…오답은 선명한데 정답은 있을까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에 관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아직 하루 남았다곤 하지만, 그래도 '내 연휴 어디 갔어'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일요일입니다. 코로나 19 발생 후 첫 거리 두기 없는 추석, 가족들은 잘 보고 오셨는지요.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어떻던가요. 우애와 화목함이 흘러 넘치는 시간, 하하 호호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시간을 보내셨다면…축하드립니다. 이 글을 더는 안 읽으셔도 좋습니다.
사실, 10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명절 뒤엔 이혼 신청이 늘어났다는 통계가 증명하듯 명절은 화목보다 분쟁의 시간에 더 가깝습니다. 가족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고들 하죠. 안 보면 애틋한데, 막상 보면 또 부딪힙니다. 가족은 역설적인 존재입니다. 내가 선택한 관계가 아닌데도 가장 내밀한 사생활을 공유해야 하죠. 외면하고 싶어도 유교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선 쉽지 않습니다. 결국, 지지고 볶으면서도 계속 봐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게 바로 가족입니다.
분명히 사이가 나쁜 것까진 아닌데, 대놓고 싸우지도 않았는데, 가족들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면 괜히 찜찜하고 머리가 아픈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습니다. 오늘(11일) 낮 KBS 1TV가 방영하는 추석 특선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입니다. 대단한 해법이나 위로가 담긴 작품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나 '웨이브', 네이버 등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제목만 들으면 전형적인 '감성 힐링 영화' 같지만, 영화는 따뜻하기보단 차가운 편에 속합니다. 주인공 85살 정말임 씨는 말과 행동이 오락가락하는 괴팍한 할머니이고, 그런 정 씨를 살뜰하게 챙기는 이웃은 사실 100만 원짜리 옥 장판을 파는 '떴다방' 직원입니다. 병구완 비용이 부담스러운 아들은 어떻게든 요양보험 심사를 통과하려고 어머니에게 치매 노인 연기를 시키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건보공단 직원은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초고령화 사회를 눈앞에 둔 한국에서, 노인을 둘러싼 면면을 이렇게 현실적으로 담아낸 영화가 또 있었나 싶을 만큼 사실적입니다.
영화는 서울에 사는 외아들 종욱과 대구에 사는 말임, 그리고 아들이 고용한 요양보호사 미선 등 세 사람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옥상 계단에서 넘어져 팔이 부러진 말임 씨는 갑자기 나타난 미선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하는 일도 없이 돈만 받아가는 것 같고, 몰래 뭘 훔쳐가는 건 아닌지 영 불안합니다. 반면 아들은 보호사도 싫고, 서울로 올라와 같이 사는 것도 싫고, 요양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싫다는 엄마 때문에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자꾸 뭐가 없어진다는 엄마 말을 다 믿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보호사 미선도 수상하고요.
남 일 같지 않은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질수록, 인물들의 '오답'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말임 씨가 자꾸 아들에게 성을 내는 근본적인 이유는 늙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고생하는 아들이 안쓰럽고 잘해 주고 싶긴 한데, 돌봄을 받는 입장이 된 게 무안하고 불만스러운 것이지요. 한편 아들은 엄마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작 자기가 꾸린 가족이 무너져가는 건 보지 못합니다. 이 오답을 어떻게든 고쳐 보려고 하는 건, 셋 중 가장 '나쁜 인물'에 가까운 미선입니다. 하지만 그 전엔 등장인물 전부가 치고받고 싸우며 폭발하는 클라이막스가 기다리고 있지요.
강푸른 기자 (strong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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