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쟁 끝냈지만".. 세계는 더 무서운 테러 위협에 빠졌다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2. 9. 11.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1년전인 2001년의 9·11 테러는 인류의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였다. 이념 대결로 점철됐던 20세기가 끝나고, 테러와 극단주의가 전면에 나서는 21세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고였다.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를 비롯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9·11테러를 일으켜 21세기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도전했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에서 시민들이 서로 부축해 걸어나오는 모습. AP연합뉴스
전대미문의 테러에 충격받은 미국과 서방 세계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극단주의 소탕에 총력을 기울였다. 

11일은 9·11 테러 발생 21주년이다. 하지만 세계는 여전히 테러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테러와 극단주의가 등장하면서 세계의 불안은 한층 심화하고 있다.

◆빈 라덴 사살…아프간에선 탈레반 재집권

9·11 테러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지목한 미국은 서방 세계 동맹국들과 함께 2001년 10월 아프간을 침공, 두 달 만에 빈 라덴을 감싸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다.

전쟁을 단숨에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서방의 판단은 이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빈 라덴의 소재를 놓치면서 전쟁을 예상보다 길어졌다. 
미군 장병들이 아프간 철수 이전 시점이었던 2002년 칸다하르 공항 외곽을 순찰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 미군 병사가 아프간 남부 헬만드주 기지 인근에서 작전도중 전사한 동료를 추모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대량살상무기(WMD) 의혹을 앞세워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직후 미군의 관심이 이라크에 집중되면서 탈레반은 아프간에서 세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탈레반이 아프간 곳곳에서 세력을 키우는 동안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아프간 전쟁 전략은 비틀거렸다. 빈 라덴과 알카에다 제거에 더해 아프간에 민주주의를 세우는 일이 추가됐다. 전쟁 목적이 무엇이냐를 두고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국면에서 아프간 전쟁 10년 만인 2011년 빈 라덴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미군 특수부대에 사살됐다. 9·11 주범의 사망에 세계는 열광했고, 전쟁은 곧 끝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빈 라덴 사망 이후에도 아프간 전쟁은 계속됐다. 아프간 내부 갈등과 부패, 탈레반 위협 등으로 미국과 서방은 ‘아프간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미국은 ‘손절’을 택했다. 지난해 4월 조 바이든 대통령은 9·11 20주년이 되는 같은해 9월 11일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을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철군 방침에 따라 나토도 철수했다.
탈레반 대원들이 지난해 8월 19일 카불을 점령하고 나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탈레반은 이 틈을 노려 점령지를 빠르게 넓혔고, 8월 15일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아프간 전쟁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라크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1년 미군이 철수한 직후인 2014년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자신을 무함마드의 적통인 칼리프(이슬람 최고지도자)라 칭하며 만든 이슬람국가(IS)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일부를 점령한 IS는 인질 납치 및 참수, 인신매매, 자살테러 등으로 악명을 떨쳤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대적인 공세로 2017년 이후 근거지를 잃었다. 지도자 알바그다디는 2019년 10월, 후계자인 아부 이브라힘 알하심 알쿠라이시는 올해 2월 미군에게 사살됐다. 

IS는 몰락했지만 IS의 테러 기술은 세계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외로운 늑대’의 행동에 의해서다.
지난 2017년 10월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외로운 늑대에 의한 테러에 쓰인 벤이 전복된 채 방치되어 있다. 게티이미지
◆전통적 방식 대신 ‘외로운 늑대’ 테러 위협

“손에 휴대전화와 칼만 있으면 누구나 테러를 할 수 있다.”

사상 최악의 테러조직으로 악명을 떨친 이슬람국가(IS)가 지지자 포섭을 위해 사용했던 문구다. 

IS의 이 문구는 9·11 이후 10여년이 지나 새롭게 나타난 테러 양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알카에다가 기존에 감행했던 테러는 일정 수준의 기획력과 실행력을 갖춘 조직 주도하에 대규모로 이뤄졌다. 9·11처럼 파괴력과 정치적 영향이 큰 장소를 점찍은 뒤 대규모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 테러를 감행했다.
지난 2014년 6월 프랑스 니스에서 발생한 자살 테러 직후 감식요원들이 테러에 쓰인 트럭을 검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IS가 등장한 이후 국가적 차원의 상징성에 초점을 둔 테러는 줄어들었다. 대신 테러 양상은 한층 다양해졌고, 대상도 불특정 다수로 확대됐다.

이슬람 극단주의에 동화된 단독 테러리스트를 뜻하는 ‘외로운 늑대’는 최근 수년간 서방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테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테러를 선동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컨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 지속적으로 접하면 극단주의를 신봉하게 되면서 자생적 테러에 나설 위험이 높아진다.

외로운 늑대가 사용하는 테러 방식은 알카에다와는 다르다. 알카에다는 지도부와 교신하면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표적을 노리고 대규모 테러계획을 세운 뒤 장비를 반입한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정보기관은 사전에 테러 조짐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다.

반면 외로운 늑대는 본인 스스로 결단해서 행동한다. 테러 표적도 공공건물 대신 나이트클럽 등 일반인이 많이 찾는 곳을 노린다. 
2013년 4월 15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 결승선 근처에서 2차례 폭발이 발생해 최소 3명이 사망하고 140명 이상이 부상, 미국이 또다시 테러 공포에 휩싸였다. AP연합뉴스
외로운 늑대가 사용하는 장비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폭탄 테러에 쓰인 압력솥 폭탄은 압력솥과 못, 금속조각 등 상점에서 파는 도구로 만들어졌다. 비용도 100달러(약 14만원)에 불과하다.

총기 소유가 비교적 자유로운 미국과 유럽에서는 보안이 취약한 곳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해 총기를 난사하거나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도 발생한다.

실제로 2016년 6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한 클럽에서 IS를 따르는 외로운 늑대로 추정되는 오마르 마틴이 총기를 난사해 50명을 숨지게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데이비드 에이메스 영국 하원 의원이 지역구 행사 도중 용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범인인 소말리아 출신 영국인 알리 하비 알리에 대해 영국 검찰은 “극단적 광신도 이슬람 테러리스트”라고 밝혔다.
지난 2017년 10월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자전거 도로로 돌진해 8명을 숨지게 하고 12명을 다치게 한 뒤 스쿨버스와 충돌 멈춰 서 있는 트럭.
알리는 모범생이었지만 2014년부터 극단적으로 변해서 대학을 중퇴하고 외로운 늑대가 됐다. 시리아로 가려고 했으나 2017년 영국에 남기로 하고 수년 전부터 의원들을 상대로 범행을 꾀했다.

외로운 늑대에 의한 테러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알카에다는 무슬림에 대한 테러를 꺼려했고, 냉전 시절 활동한 테러리스트들도 정치적 목적 달성에 치중했다.

반면 외로운 늑대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는 불특정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테러를 한다. 이를 통해 공포심을 극대화한다. 

경찰과 정보기관으로서는 사전 대처가 쉽지 않다. 국가안보 시설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다수 모이는 모든 장소마다 보안 조치를 강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회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외로운 늑대를 찾아내고, 테러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지 판단하면서 실제 테러를 저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 8월 29일 부산 동래구 아시아드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한미합동방위훈련에서 도심 테러를 가정한 훈련이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에이메스 의원을 살해한 알리는 극단주의 조짐을 보이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국의 대테러 프로그램 ‘프리벤트’(Prevent·예방)에 보고됐지만, 범행을 저지하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외로운 늑대의 성장을 부추겼다는 평가도 있다. 펜데믹 초기에 이뤄진 봉쇄 기간 집에서 혼자 머물며 온라인을 접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를 통해 이슬람 극단주의를 접한 사람들도 증가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아프간 전쟁은 끝났지만, 지구촌이 여전히 테러 공포에 시달리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사회적으로 비주류 소수집단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박탈감을 해소하고, 특정 집단에 대한 비하나 비난을 저지하면서 온라인 상에서 극단주의 컨텐츠를 삭제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