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이 하마 가족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

정지섭 기자 2022. 9. 11. 00: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연상연하 재혼커플 사이에 다섯살 딸과 갓난 아들
누나 피오나는 국보급 수퍼스타, 남동생도 F돌림으로 프리츠
귀엽고 사랑스런 이미지와 달리 야생에선 흉폭한 괴수

정지섭의 수요동물원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65

미국 오하이오주는 예로부터 3대 도시간 라이벌의식이 대단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인구·경제·교통 등으로 봤을 때 ‘빅3′ 도시가 공교롭게 모두 C로 시작해요. 북쪽의 클리블랜드, 남쪽의 신시내티,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주도 콜럼버스죠. 5대호에 면해있는 철강과 기계공업의 도시 클리블랜드와 행정과 교육의중심지 콜럼버스에 비해 미시시피 강이 흐르는 농업도시 신시내티는 ‘한물간 도시’라는 인식이 적잖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올여름 태어난 신시내티동물원의 새끼 수컷 하마 프리츠. /신시내티동물원
프리츠의 씨 다른 누이 피오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하마 중 한 마리다. /신시내티동물원 홈페이지

그랬던 요즘 이 3대 도시 라이벌전의 구도가 급격히 신시내티쪽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살고 있는 수퍼스타급 하마가족 때문이죠. 조산, 사별, 재혼, 씨다른 오누이… 인간만사에 등장할법한 이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담은 하마가족의 일상이 지금 미국에서 대단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지난 8월 4일 신시내티 동물원 하마사에서 스물 세살 먹은 암컷 하마 비비가 건강한 새끼를 출산했어요. 현지 언론을 비롯해 미국 주요 신문과 방송들이 비중있게 소식을 전했어요. 전세계에서 큰 동물원들은 대개 하마를 보유하고 있고, 이들은 종종 번식에 성공합니다. 그럼에도 이 하마 탄생 소식이 각별하게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이 새끼 하마의 바로 위 누나가 엄청난 팬덤을 몰고 다니는 톱스타이기 때문이거든요. 슈렉에서 나오는 엽기발랄 공주의 이름을 딴 피오나입니다.

엄마 비비(왼쪽)와 피오나(가운데), 그리고 터커(오른쪽). 터커는 피오나가 한살도 되기전에 신체 상태가 나빠져 안락사됐다. /신시내티동물원 홈페이지
수컷하마 터커. 헨리가 죽은 뒤 비비와 재혼해 곧바로 프리츠를 가졌다. /신시내티 동물원 홈페이지

피오나는 2017년 1월 24일 생입니다. 엄마 비비의 임신소식이 들려왔을 때부터 지역사회에서는 엄청난 관심을 가졌어요. 그도 그럴 것이 75년만에 이 동물원에서 하마 번식에 성공한 거거든요. 하지만 역사를 쓰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비비는 자신보다 스물한살이나 나이가 많은 초연상 수컷 헨리와 사이에서 임신에 성공했어요. 그런데 무려 6주나 일찍 조산을 했어요. 75년만에 역사 창조가 자칫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까 동물원과 지역사회, 시민들이 노심초사했죠.

힘들어하는 어미를 대신해 사육사들이 대신 수유를 했죠. 당시 미국의 내노라하는 주요동물원들이 나서서 수유제조를 도왔다고 합니다. 천만다행으로 새끼는 무럭무럭 자라났고, 이름에 걸맞는 이름 ‘피오나’를 가졌죠. 이 새끼 암컷 하마의 인기는 폭발적이었죠. 동물원 역사를 쓴 주인공, 시련을 이겨내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성장 스토리, 그리고 새끼 동물 특유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완벽한 시너지 효과를 이루며 동물원 최고의 VIP로 등극합니다. 하마사는 신시내티 동물원 최고의 핫플로 등극했고요. 그 인기는 전통의 명문구단 신시내티 레즈를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헨리·비비·피오나로 이뤄진 하마 식구의 일상은 동물원 최고의 볼거리였어요. 하지만 이 황금기는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이미 노년기에 접어들었던 남편이자 아빠 하마 헨리가 2017년 가을부터 급격히 건강이 악화했어요. 헨리는 2016년 신시내티 동물원 하마사에서 갓 전입온 암컷 비비와 합사 직후 불꽃튀는 사랑을 과시하며 바로 2세 임신소식을 알렸죠. 그렇게 태어난 피오나가 헨리 슬하 여섯번째 자식이었답니다. 이런 남다른 스태미너를 자랑했지만, 나이앞에 장사없다고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자, 동물원 측은 결국 헨리를 안락사시켰습니다.

비비가 두번째 새끼인 프리츠를 순산한 직후의 모습. /신시내티 동물원
예정보다 6주나 일찍 태어난 피오나는 사육사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신시내티동물원 홈페이지

하마사에는 비비와 피오나 모녀만 남았어요. 다소 허전해졌지만, 피오나는 엄마를 닮아 용감하고 야무진 하마소녀로 자라났습니다. 시련을 이겨낸 희망의 아이콘이 된 거죠. 하지만 모녀에게 신시내티 동물원 하마사 공간은 너무 넓었고, 엄마 비비 또한 젊었습니다. 이렇게 건강미를 유지한 하마에겐 자손만대 번성의 직무가 주어집니다. 야생에서 격리된 동물들의 권리이자 의무죠. 남편을 떠나보낸 비비는 4년만에 새 짝을 맞습니다.

2021년 9월 비비는 새 짝을 맞습니다. 무려 네 살 연하의 팔팔한 젊은 수컷 ‘터커’였어요. 5년전 방년 열 여덟살의 꽃다운 나이로 수줍게 시집왔던 상황과 정반대로 이번엔 나름 산전수전 겪은 신시내티 하마사의 터줏대감으로 동생 같은 새신랑을 받아들인 것이죠. 나이가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정적이 감돌던 하마사가 모처럼 핑크빛 사랑의 기운으로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좋은 소식이 찾아왔어요. 비비가 임신 소식을 전하자, 지역 언론들은 이렇게 제목을 뽑았습니다. “피오나가 드디어 동생을 갖게 됐다!”

터커는 누나 뻘 파트너 비비와 불꽃 같은 사랑을 이어가면서도 의붓딸 격인 피오나에겐 다정다감한 아빠 모습이었습니다. ‘지킬 건 지키는’ 하마였던 거죠. 이미 피오나 때 임신과 출산, 그리고 조산이라는 다급한 경험까지 했었기에 동물원은 한결 능숙하고 여유롭게 산모를 돌볼 수 있었습니다. 출산 과정도 훨씬 수월하고 순조로웠어요. 그렇게 8월 4일 피오나의 씨다른 동생이 태어났어요. 며칠 뒤 동물원은 “사내아이입니다(It’s a boy)”라고 수컷하마의 탄생을 공식 발표했죠.

비비가 아들 프리츠와 물속에서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시내티 동물원

신시내티동물원은 새끼하마가 피오나(Fiona)와 같은 ‘F’로 시작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프리츠’와 ‘퍼거슨’을 후보로 걸어 투표를 했고,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얻은 ‘프리츠’로 명명했습니다. 내실에서 한동안 어미 비비와 지내던 프리츠는 관람객들에게 선보였고, 이후 누나 피오나와 친아버지 터커 등 가족들과도 조심스럽게 합사하고 있습니다. 이 새끼 하마가 왕방울만한 눈을 동글동글하게 굴리고 귀를 파르르르 움직일때마다 관광객들은 말 그대로 귀여워 미치려고 합니다. 종을 보전하는 동시에 팍팍한 도시인들에게 여유와 안정을 주는, 대도시 동물원들의 순기능이죠.

이렇게 순둥순둥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하마이지만, 사실은 괴수 중의 괴수입니다. 사자보다 난폭하고, 악어보다 사나우며, 광적인 파괴력은 코끼리를 능가합니다. 방어나 우발적이 아닌 적극적으로 살육하는 것으로 악명 높아요. 먹을 것도 아니면서 말이죠. 수컷은 대변을 보면서 꼬리를 흔들어 똥덩이를 물속으로 퍼뜨려 자신의 세력을 과시합니다. 물고기들은 죽을 맛일 거예요. 신시내티 동물원의 귀여운 하마들도 아무리 사육사 손에 순치되었다고 해도 종족의 야성적 본능은 언제 발현될지 모릅니다. 사육사들이 늘 조심해야 하는 까닭이죠. 세월이 흘러 이 아기하마 프리츠도 꼬리로 똥폭탄을 분사하는 당당한 수컷이 될겁니다. 또한 짝을 만날 거구요. 그렇게 하마족은 대를 이어갈 것입니다.

정지섭의 수요동물원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65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