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욱일기 때문에..또다시 가열되는 관함식 신경전

김진욱 2022. 9.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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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9월 29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에서 청해부대 25진 충무공이순신함(DDH-Ⅱ, 4,400톤급) 승조원들이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출항하고 있다. 부산=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본 해상자위대가 11일 개최하는 국제관함식에 우리 해군을 초청했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강조해온 만큼 언뜻 접촉면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여론은 간단치 않다. 일본과 껄끄러운 상황 때문이다. 2018년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에 위협 비행한 것을 놓고 양국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옥신각신하고 있다. 일본은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에 따른 수출 규제도 아직 풀지 않았다.

무엇보다 '욱일기'가 걸림돌이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 잔재가 워낙 강렬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관함식에 참석하는 외국 함정은 주최국의 주빈이 탑승한 함정을 향해 ‘경례’를 해야 한다. 가령, 해군이 이순신함이나 독도함을 보낼 경우 임진왜란의 영웅 충무공과 우리 영토인 독도의 정신을 딴 함정이 일본 군함에 매달린 욱일기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다. 한일관계 정상화라는 대의를 감안하더라도, 저버릴 수 없는 '민족 자존심'의 문제로 비화할 만한 사안이다.

2018년 제주 국제관함식에서 한국 해군 함정이 내건 조선 수군 대장기 '수자기'. NHK 캡처

우리 해군은 '수'자기 내걸고 ‘장군’

한국과 일본은 관함식 참석과 깃발 게양을 두고 여러 차례 신경전을 펼친 바 있다. 한국이 선공을 날렸다. 2018년 제주 국제관함식에 참석하려던 일본 함정이 해상자위대기를 게양하려고 하자, 해군은 욱일기 문양은 역사적 이유로 용납되지 않는다며 대신 일장기를 게양하라고 요구했다.

일본은 강력 반발했다. 일본 국내법상 자위대 소속 함정은 자위대기를 달도록 규정돼 있다. 일본 방위성은 “비상식적인 요구”라며 “욱일기를 내리는 것이 조건이라면 참가하지 않는 것도 고려하겠다”고 맞섰다.

이에 우리 군은 "일본 해양자위대가 욱일기 게양을 고수하는 경우 사열에 참가하는 것을 거부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보냈다. 일본은 끝내 제주 국제관함식에 불참하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이에 아랑곳없이 우리 해군은 당시 좌승함이었던 천왕봉급 상륙함 ‘일출봉함’에 조선 수군 대장기 ‘수자기’를 내걸었다. 이에 일본 측은 외무성을 통해 항의 의사를 밝혔다.

2019년 중국 해군 창설 70주년을 맞아 열린 국제관함식에 참가차 산둥성 칭다오항에 입항한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스즈쓰키'호. 일본은 한국 해군이 이에 앞서 제주에서 주최한 국제관함식에 욱일기 게양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자 응하지 않고 아예 불참했다. 칭다오=AP 연합뉴스

중국서 리턴매치…욱일기 달고 나선 日 '멍군'

2019년 4월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인민해방군 해군 창설 70주년 기념 국제관함식에서 한일은 다시 신경전을 펼쳤다. 중국이 해상자위대 함정의 욱일기 게양을 눈감아 주면서다. 반면 한국은 당초 거론되던 독도함 대신 신형 호위함으로 급을 낮춰 보내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은 2008년, 2011년 두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다만 당시에는 욱일기를 내걸지 않았다. 하지만 칭다오 관함식에서는 욱일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한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는 사이, 일본이 중국 간 밀월 관계를 과시한 셈이다. 홍콩 명보는 일본이 △미국이 참석하지 않는 관함식에서 중국과 밀착하면서 △욱일기에 대한 중국인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고 △한국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 정부는 오히려 중국을 배려했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행보는 애써 외면하며 논점을 돌렸다. 중국이 2018년 제주 관함식에 함정을 보내지 않고 중장급 대표단만 파견했던 것을 지적했다. 이에 우리 해군도 '상호주의'에 따라 중장급 대표단만 보내면 되지만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위해 추가로 함정을 파견했다고 설명했다.

김대중(오른쪽)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총리가 1999년 3월 20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기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관계에 있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제 일본 홈에서 3차전... ‘제3의 길’은 있을까

이처럼 최근 들어 한일 양국이 관함식이 열릴 때마다 치열하게 맞붙고 있지만 예전에는 달랐다. 우리 해군도 일본 욱일기를 인정하곤 했다. 한국은 2002년과 2015년 일본이 개최한 관함식에 해군 함정을 보낸 적이 있다. 일본도 1998년과 2008년에 한국에서 열린 관함식에 자국 함정을 파견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일본 욱일기는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사용해 왔다”며 “과거에는 (일본이 관함식에서) 욱일기를 게양했더라도 우리가 참관했다”고 말했다. 또 “일본이 (한국 관함식에) 두 번 왔고 우리가 두 번 갔다”며 “욱일기 게양 상태에서 했었다”고 밝혔다.

일단 정부는 관함식 참가에 대해 “결정되지 않은 사항”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이 장관은 관함식 참가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이어 “우려하는 부분을 감안해 국제관함식 개념과 관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방위성은 지난 2일 미국의소리(VOA)의 논평 요청에 대해 “한국 측 입장에 대해서는 답변을 삼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욱일기 게양은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방위성 관계자는 VOA에 “욱일기 디자인은 태양의 형상을 본뜬 것으로, 지금도 일본 전역에서는 출산 등을 축하하기 위한 깃발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또한 자위대법과 다른 국내법에 따라 자위대기를 게양해야 하며, 이는 내부법에 따라 한 국가의 군대가 속하는 선박을 구별하는 외부 표시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제3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사람은 가고 군함은 가지 않는 방향으로 지혜롭게 피해 나가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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