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전차 군단 막아라" 폴란드가 K-2 전차 '찜'한 이유는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2. 9. 1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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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가끔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맺어준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만 해도 한국과 폴란드가 군사적으로 밀접하게 얽힌 관계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정세가 급격히 요동치자 폴란드와 한국의 관계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한국 육군 K-2 전차가 표적을 향해 주포를 발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폴란드는 지난달 현대로템·한화디펜스와 K-2 전차 180대 및 K-9 자주포 212문 도입을 위한 57억6000만 달러(약 7조6780억원) 규모의 1차 이행계약을 체결했다.

폴란드 국방부는 “현대로템이 K-2 180대를 2022∼2025년 공급하고, 한화디펜스가 K-9 자주포 212문을 2022∼2026년 공급하는 계약”이라며 “첫 번째 전차와 자주포는 연말에 인도될 것”이라고 전했다. 

◆폴란드 조건 충족할 나라는 한국 외엔 없었다

폴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일원이다. 회원국 중에는 미국(M1A2), 영국(첼린저2), 프랑스(르클레르), 독일(레오파드2), 이탈리아(아리에떼) 등 전차 생산국이 많다.

하지만 폴란드가 요구하는 성능과 신뢰성을 지닌 전차를 단기간 내 제공할 능력에 초점을 맞추면 사정은 달라진다.
덴마크 육군이 운용중인 레오파드2A5 전차가 기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프랑스 르클레르는 아랍에미리트, 영국 챌린저 2는 오만에만 팔렸다. 이탈리아 아리에떼는 수출 실적이 없고 성능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남은 선택지는 미국과 독일이다. 미국 M1A2는 1차 걸프전 이후 미국의 지상전에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냈던 M1 전차의 최종 개량형으로 성능과 신뢰성이 검증됐다. 폴란드도 지난해 M1A2 250대를 주문했고, 최근엔 중고 M1A1 계열 116대 추가 도입을 결정했다.

하지만 폴란드가 보유한 T-72 전차 200여대와 크랍 자주포 수십문이 우크라이나로 넘어간 상황에서 M1A2가 신속하게 이를 대체해야 하지만, 생산 시기를 앞당기거나 주문량을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미국도 기존 M1A2보다 성능이 우수한 차세대 M1 전차와 함께 경전차(MPF)를 조만간 일선에 배치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미 육군이 사용할 무기보다 성능이 낮은 전차를 우방국에 빠르게 제공하기 위해 추가 투자를 하기는 쉽지 않다. 

독일은 사정이 더 나빴다. 냉전 종식 이후 유럽의 국방예산이 지속적으로 감축되면서 독일 방위산업계 역량도 후퇴했다. 폴란드는 T-72를 우크라이나에 넘기고 독일에서 레오파드2A7 전차를 도입하려 했으나, 협상이 지지부진해지고 도입 가능성도 낮아지면서 포기했다.
현대로템이 공개한 중동 지역 K-2 수출형 전차. 폴란드 수출형인 K-2PL과 유사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K-2는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전차로 평가받고 있다. 120㎜주포와 자동급탄장치를 갖췄으며, 사격통제장치와 연동된 레이더를 통해 주행 간 지형 층고를 사전에 예측해 이동간 포사격 시 안정성과 정확성을 높였다. 

북한과의 전면전 위협에 맞서 대량의 전차를 신속하게 만들 준비를 갖춘 국내 방위산업의 특성까지 감안하면, K-2는 폴란드의 요구를 충족할 여건을 갖고 있던 셈이다.

폴란드가 도입할 K-2 전차 1차분 180대는 한국군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차분인 800대 이상은 K-2PL은 폴란드 요구를 반영해서 제작된다.

현대로템이 2020년 폴란드 국제 방위산업 전시회(MSPO)에서 공개했던 K-2PL은 포탑 상부 기관총에 원격사격통제체계(RCWS)를 적용한다. 

전차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능동방호체계, 차량 하부에 탈부착이 가능한 지뢰 방호 키트, 대전차 미사일 방어용 방호 네트, 전후좌우 시야를 확보하는 360도 카메라 등을 장착한다. 폴란드산 통신장비나 광학장비가 탑재될 가능성도 있다.
미 육군 M1 전차가 기동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바퀴 축도 6축에서 7축으로 늘어났다. 폴란드에서는 “K-2의 측면 장갑이 상대적으로 얇다”며 측면 방어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방어력 강화와 더불어 폴란드 측 요구에 따라 추가되는 장비 중량을 고려하면 구조 재설계가 필요하다. 재설계가 이뤄지면 중량은 현재 55t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K-2PL은 폴란드 국영 방위산업체 PGZ가 생산을 주도한다. 인프라 구축과 생산 요원 교육 등을 거쳐 2025년부터 생산라인을 가동할 예정이다. 

폴란드는 과거 T-72 전차를 여러 차례 개량했고 이를 수출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서방 규격의 3세대 전차 생산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따라서 한국 측과 협력해 생산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K-2, 러시아 T-72 압도할 수 있어

폴란드가 계획대로 K-2 1000대를 실전배치하면, 나토와 러시아의 지상 전력 대치 구도를 뒤흔들 수 있다. 
러시아가 중국 등과 극동에서 실시한 보스토크 2022훈련에 참가한 러시아군 전차들이 훈련을 앞두고 대기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볼 수 있듯, 현재 시점에서 러시아 육군의 실질적인 주력 전차는 T-72B3, T-72B3M이다. 1985년에 도입된 T-72B를 성능개량한 것으로 전차 장갑을 강화하고 측풍 센서를 설치했으며 주포와 엔진을 개선해 3세대 전차와의 격차를 줄였다.

하지만 냉전 시절에 개발된 전차는 현대전에서 한계가 있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공화국수비대 T-72는 이란군을 제압했지만, 2022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수백 대의 T-72B3, T-72B3M이 파괴된 채 전장에 버려진 신세가 됐다.

K-2 전차는 700~800㎜ 두께의 장갑을 뚫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표적을 탐지한 뒤 미래 위치를 계산해 자동으로 조준하는 목표 조준 프로그램, 고속으로 움직이는 물체를 사격점이 일치하는 순간 자동 사격하는 기능을 갖춘 사격통제 시스템을 갖췄다. 울퉁불퉁한 지형에서도 목표를 정확히 조준해 사격할 수 있다. 

T-72가 성능개량을 거쳐도 완전히 갖추지 못한 요소를 개발 단계에서부터 확보하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 폴란드가 요구하는 사항이 반영된 K-2PL이 갖춰지면 T-72B3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능동방호체계 장착과 장갑 강화로 생존성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한국 육군 K-2 전차들이 기동훈련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K-2와 K-2PL이 폴란드 육군에 본격적으로 실전배치되면, 러시아로서는 1991년 이후 접경지역에 가장 위협적인 지상 전력이 집결하는 결과가 된다. 폴란드는 강력한 전쟁 억제력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러시아가 아무런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T-14 아르마타 전차가 있기 때문이다.

T-14는 처음 등장했을 때 서방측을 충격에 빠뜨렸을 정도로 진보한 기술이 적용됐다. 장갑이 강화되고 터치스크린식 전투통제체계를 사용하며 다른 T-14와 연결하는 내장형 데이터링크, 다수 표적을 동시 추적하고 야간전투능력을 높인 소프트웨어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하고 무인포탑을 채택해 승무원 숫자를 줄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서방의 제재로 수입부품 반입이 끊어져 양산은 차질이 불가피한 상태다. 

러시아 방산업계 생산라인은 옛 소련 시절보다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때문에 반도체 등 정밀 부품은 외국에서 수입해 쓰고 있는데, 금수조치로 부품 입수가 어려워졌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전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지난 8월 15일 열린 국제군사포럼에서 관람객들이 러시아군 전차를 비롯한 장비들을 보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실제로 러시아 최대 전차 생산업체인 우랄바곤자보드는 지난 3월 일부 근로자를 일시 해고했다. 전차 무한궤도(캐터필러)에 들어가는 스웨덴제 베어링 수입 중단 때문이다. 

러시아 방산업계의 서구 의존도는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발견된 러시아 무기와 군용품 27개를 RUSI가 뜯어본 결과 무전기, 미사일, 드론 등 모든 종류의 무기에서 서방국가의 반도체 부품이 발견됐다. 미국 등이 제작한 칩이 없으면 러시아 무기는 작동도 어렵다는 의미다.

대체 부품을 구하면 생산 재개는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대체 부품을 찾아내서 교체하고, 설계과 생산 방식을 변경하고, 전체적인 성능에 문제가 없는지를 살피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하면 막대한 전력 손실이 불가피하다.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부정적 이미지가 굳어진 T-72B3 전차, 생산 계획이 어긋나고 고가의 비용이 소요되는 T-14 정도만 남는 셈이다. 
한 우크라이나 인이 수도 키이우 외곽에서 부서진 채 버려진 러시아군 전차들을 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고 지상 전력 정비에 나서도, 그때는 폴란드가 K-2PL과 M1A2 운용을 본격화한 시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의 정세를 한순간에 바꿔버렸다. 중립국이었던 스웨덴과 핀란드는 나토 가입을 선언했고, 폴란드는 자신들이 잘 알지 못했던 극동의 먼 나라에서 대량의 무기를 도입하기로 했다.

‘러시아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폴란드의 K-2PL 도입은 향후 동유럽 지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후속 조치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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