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새런' 부터 이준석 내쫓기까지..공천권이 뭐길래 [맹진규의 국회는 지금]

맹진규 2022. 9. 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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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원흉된 당대표제와 공천권
국민 1% 이하 대표하는
당대표가 의원들 쥐락펴락
원내정당화와 시스템공천이 대안
'상향식 공천' 도입 필요
본연 임무인 입법 활동 집중해야
사진=뉴스1


지난달 30일 국민의힘에서는 보수정당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당을 새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는 안건을 의결한 의원총회 직후 초재선 의원들이 비대위 전환을 반대한 중진 의원들을 공개 비판한 것이다. 이 초재선 의원들은 '신(新)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며 비대위 전환에 앞장섰다.

보통 국회의원은 민심에 민감하다. 최근 당의 비대위 구성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반대 의견은 줄곧 과반이 넘었다. 그런데도 민심이 아닌 당내 주류 윤핵관들을 따라 '윤심'을 택한 것이다.

초재선 의원들이 중진의원들에 각을 세우는 등 국민의힘 내홍이 길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에서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와 윤핵관 다툼부터 비대위 전환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문제의 중심에는 당대표 제도와 공천권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총재 시대의 산물 공천권 

대한민국 정치에서 공천권은 과거 총재 시대의 산물이다. 1963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김종필 당시 총리는 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면서 ‘공천권은 당 총재에게 있다’는 내용을 당헌에 명시했다.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대'에도 경상도와 호남 등 특정 지역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당선될 수 있었기 때문에 공천권을 가진 총재는 제왕적 총재로서 군림했다.

2000년대 초반 정치개혁 바람이 불면서 당원과 국민이 참여하는 상향식 공천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당대표가 자기 계파에 총선 자리를 꽂아주는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도 경선으로 후보를 뽑은 비율은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과 더불어민주당 각각 35%, 42%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머지는 전략공천과 단수공천이었다. 

 갈등의 원흉이 된 당대표제와 공천권

공천권은 반대 계파를 찍어 누르거나 자기편을 줄 세우는 데 사용되면서 당내 갈등의 원흉이 됐다. 특히 여당에서는 당대표가 가진 공천권을 대통령이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구조가 자리잡았다. 여당 당대표가 단독으로 공천권을 행사하는 것은 곧 반란으로 여겨진다. 

대표적인 예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의 '옥새런' 사건이다. 김 전 대표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의 의중과는 반대로 여론조사 반영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향식 공천 방식으로 공천 개혁을 감행했다. 하지만 친박(친박근혜)의 반발에 부딪히자 김 전 대표는 공천장 직인을 거부하며 잠적했고 결국 새누리당은 내홍을 겪으며 총선에서 패배했다.

최근 '이준석 사태' 역시 공천권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 전 대표와 윤핵관 간의 다툼은 대선 당시의 갈등도 있지만 2024년 총선 공천권에서 문제가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당 당대표가 대통령의 의중을 거스른 데다가 공천룰을 바꾸는 공천 개혁까지 시도했기 때문에 일련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초재선 의원들이 중진 의원들을 비판하며 신윤핵관 그룹으로 부상한 것도 공천권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다. 특히 대구·경북(TK) 등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은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받으려면 윤심을 살필 수밖에 없고 윤핵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반면 비대위 구성에 반대하는 중진들은 지역적 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윤핵관과 의견을 같이 하는 게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겠다고 판단하면 과감히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다.

사진=뉴스1


최근 전당대회를 치른 민주당에서는 당대표 제도가 가진 과대 대표성과 팬덤정치의 위험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전당대회에서 투표권을 가진 권리당원은 117만명이었다. 당대표로 선출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득표율 77.77%라는 압도적 지지로 선출됐으나 권리당원 투표율은 37%에 불과했다. 국민의 1%도 안 되는 약 33만 명의 표를 받은 결과로 나머지 민주당 의원 168명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 체제에 반대하는 여전히 의원들이 많다. 하지만 공천권이 이 대표에 넘어간 데다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이 대표를 지지하는) 강성 당원들의 등쌀에 당 내에서 다른 의견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인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민의 1%도 참여하지 않는 전당대회로 뽑은 당대표가 국민이 직접 뽑은 여야 국회의원들을 좌지우지하는 이상한 시스템"이라며 "대중정당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대중보다 강성 당원 중심으로 당이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안: 원내정당화와 시스템 공천

사진=뉴스1


대안으로는 '원내정당화'가 거론된다. 이제까지 당대표와 최고위원 등 중앙당 지도부가 권력과 공천권을 갖고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해왔다면, 국회의원 중심의 의원총회가 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되고 원내대표가 당의 대표를 맡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중앙에서 내리 꽂는 형태의 공천 대신 상향식 공천이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현재 당대표와 중앙당이 지역 당원협의회 위원장을 선임해 사실상 지역의 총선 후보 선출을 관리하고 있는데, 당대표가 사라지면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당원 투표와 시민 여론조사로 후보를 선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실제로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당대표가 없고 상향식 공천이 확립돼 있어 공천에 대한 갈등이 적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은 여당 의원이 대통령을 비판할 정도로 입법부와 행정부가 수평적인 관계라는 평가다. 당대표가 쥔 공천권을 사실상 대통령이 좌지우지하는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의중을 살펴야 해서다. 

그런데 원내정당 체제가 되면 의원들은 소모적인 공천 갈등에서 벗어나면서 본연의 임무인 입법 활동에 충실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 종종 들리는 "아무리 입법 활동을 열심히 해도 줄 잘못 서서 공천을 못 받으면 소용없다"는 말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툭하면 구성되는 비대위와 여야의 집안 싸움의 빈도가 줄어들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의원들이 당내 권력자의 눈치를 보는 대신 민심을 더 살피게 된다. 자신의 공천권을 당대표가 아닌 지역민들이 쥐고 있기 때문에 본인의 가치관과 민심을 잣대로 소신껏 당내에서 의견을 펼칠 수 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현재 국민의힘에 당대표가 없고 비대위 체제이지만 당정 협의나 상임위 활동 등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옥상옥 정당지배구조인 당대표 제도가 없어도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전당대회나 비대위 논란에 빠져 원내정당으로서 민생과 국내외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책임과 역할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대표 제도를 그대로 두는 대신 당대표가 공천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공천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결국 누군가는 당을 대표해야 하고 당대표가최종 의사결정을 내려주는 형태가 효율적인 측면도 있다"며 "전략공천을 최소화하고 컷오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만드는 등 공천권을 당원과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간다면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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