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없는' 차례상 표준안..상차림 노동 덜어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차례상에 전 안올려도 된다.”
◆전 없이 간단히…음식 배치도 “편하게”
이날 의례정립위원회가 제시한 차례상 표준안에 올라가는 음식은 송편, 삼색나물, 구이, 김치, 네 가지 과실이 전부입니다. 종전에 성균관 석전대제보존회가 표준안으로 제시했던 전통 차례상과 비교하면 3분의 1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세 가지나 올라갔던 탕과 네 가지 과자류가 모두 사라졌고, 특히 번거롭고 손이 많이가는 전·부침류가 없습니다.
차례상에서 전이 빠진 근거는 조선 숙종시기 편찬된 사계전서(사계 김장생)에 나옵니다. 성균과에 따르면 사계전서 제 41권 의례문해는 “밀과나 유병 등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법에 어긋난다”고 했습니다. 적류에 대한 직접 언급은 없지만 ‘기름진 음식을 쓰지 말라’고 했으니 튀기고 부치는 것 역시 포함된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게다가 상차림의 절대 원칙처럼 여겨졌던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밤·배·감)도 옛 문헌에 없는 표현이랍니다. 성균관은 정해진 음식 배치는 없으니 “편하게 놓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오랜세월 ‘가정불화’ 원인…뒤늦은 차례상 표준안
그런데 이제 와서 ‘사실은 이게 진짜 전통 유교 차례상’이라고 발표를 하게 된 것일까요.
너무 갑작스러우니 “물가 상승으로 차례상 비용이 오르니 물가 잡기에 나선 정부의 압박에 간소화 차례상 표준을 발표한 것 아니냐”는 어느 네티즌의 의심이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성균관도 이런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날 최영갑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은 “유교가 현대화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옛 영화만을 생각하며 선구자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서 “특히 명절마다 언급되는 ‘명절증후군’, ‘남녀차별’, ‘이혼율 증가’ 등 사회 현상이 잘못된 의례 문화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관행처럼 내려오던 예법을 바꾸지 못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전통 차례상 표준안은 그에 대한 반성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배신감은 배신감이고, 어쨌든 반가운 것은 사실입니다. 명절 스트레스와 가정불화의 주범인 ‘전 부치기’는 ‘안 해도될 일’이라는 것이 공식화됐으니 말입니다.
성균관의 차례상 표준안 발표로 하루 아침에 전 부치는 명절 풍경이 사라지지는 않겠지요.
한 60대 여성은 “명절은 평소 잘 못만나는 가족들이 한 데 모여 함께 음식을 해 먹으며 정을 나누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인데, 차례상은 간단히 차리더라도 다 같이 먹을 음식은 해야하는 거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40년 넘게 모든 시댁 제사 음식을 손수 준비했던 한 70대 여성은 남편에게 “나이가 드니 허리, 무릎 관절이 아파서 전 부치기 힘들다. 필요하면 사 먹자”고 했다가 “내가 죽거든 그렇게 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명절 음식을 하루 이틀 전부터 모여 함께 준비하지 않고 각자 집에서 만들어 가져오거나, 전문점에서 주문하는 것은 일반화 됐습니다. 차례상에 필요한 제사 음식만 간단히 차리고 돌아가신 어른들이 생전에 좋아하셨던 음식을 놓는 방식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물론 음식을 함께 만들고 먹으며 소통하는 시간을 모든 구성원들이 기쁘게 여기는 가족이라면 상다리 휘어지게 차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어쨌든 이번 추석은 상차림 노동 부담이 덜어지고 남녀갈등, 세대갈등, 가족간 갈등 없이 모두의 행복지수가 보름달처럼 차오르는 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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