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일회성 상봉으로는 부족"..북한 호응보다 정치적 효과 기대
남한 이산가족 생존자 4만여명
평균 82.4세로 시간 여유 없어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8일 남북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당국 간 회담을 전격 제의한 것은 이산가족의 고령화로 상봉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는 현실에 따른 것이다.
권 장관이 “이산가족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기 전에”라는 표현을 쓴 것처럼 해마다 이산가족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현재 남한의 이산가족 생존자는 4만3746명이며 평균 연령은 82.4세다. 올해 들어서만 2504명이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해놓고 기다리다 사망했다. 통일부는 지난해 발표한 3차 남북 이산가족 실태조사 결과에서 “남북 기대수명의 차이를 생각하면 사실상 대면상봉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지금부터 5년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이대로라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공약한 윤석열 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이산가족 1세대의 상봉은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권 장관은 “소수 인원의 일회성 상봉으로는 부족하다”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회에 100명 정도 만났던 지금까지의 상봉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또한 이산가족들이 가장 원하는 생사확인과 서신교환을 적극 추진하고 화상을 통한 수시 상봉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권 장관이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논의하는 채널이었던 남북 적십자사 대신 당국 간 회담을 제안한 것은 남북이 이 문제를 책임 있는 자세로 다뤄야 한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번 제안에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2018년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는 경색을 넘어 적대관계로 변했다.
북한, 전화통지문 수령 안 해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대남 공세는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월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남북 실무접촉을 제안했으나 북한은 이에 답하지 않았다. 8·15 경축사를 통해 윤 대통령이 제안한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도 북한은 조롱과 비난으로 답했다. 정부는 이날 권 장관의 이산가족 관련 제안을 담은 전화통지문을 발송하려 했으나 북한이 수령하지 않았다고 통일부는 밝혔다.
이 같은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공개적인 담화를 통해 당국 간 회담을 불쑥 제안한 것은 ‘성사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은 제안을 위한 제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북한이 이에 응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제안해 나갈 것”이라는 권 장관의 발언은 북한의 호응을 기대하기보다 ‘정부의 의지’를 밝힘으로써 국내 정치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소식통은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우리의 시각으로는 인도주의적 사안이지만 북한에는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담은 이벤트”라며 “일관성과 정교한 전략 없이 인도주의만 강조해서 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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