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거리 두기 없는 추석

차준철 논설위원 2022. 9. 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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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8일 오전 서울역이 귀성객으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야야 벌초 오지 마라, 이번에는 맡겨뿌자.” “야들아 우리는 괜찮다. 니들 건강이나 챙겨라.”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안 와도 된당께~.”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2020년 추석 무렵, 지방 각지에 내걸린 현수막 문구들이다. 충남 청양군은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강렬한 문구로 귀향 자제를 촉구했고, 경북 의성군은 홀로 사는 노인들의 안부 영상편지를 촬영해 외지의 자녀들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코로나19 유행이 가시지 않은 지난해 추석도 ‘비대면’이 대세였다. 지나간 두 해의 추석은 ‘망운지정’(望雲之情·객지에 나온 자식이 고향의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이었다.

올해 추석은 세 해 만에 맞이하는, 거리 두기 없는 추석이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쌓여 있는데 모임 인원 제한 없고, 고속도로 통행료 안 받고, 반만 탔던 기차 자리도 모두 열렸으니 귀성 행렬이 붐비는 게 당연하다. 이젠 휴게소나 기차·버스 안에서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교통 당국은 이번 연휴 기간 동안 총 3017만명, 하루 평균 603만명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민족 대이동’의 활기가 3년 만에 되살아난 것이다.

이번 추석이 모처럼 명절 분위기를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되지만, 걱정거리 역시 많은 게 현실이다. 지금도 요양병원에서는 비대면 상봉을 할 수밖에 없고, 귀성객들은 이동량 증가로 인한 코로나19 유행 재발에 유의해야 한다. 태풍과 물난리로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은 명절에도 복구 작업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추석 물가에도 시름이 깊다.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는데 민생을 보살펴야 할 정치권이 보이는 행태는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도 추석은 추석이다. 온가족이 모여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며 넉넉함을 가지는 추석의 마음이 작아지지 않으면 좋겠다. “반갑소야! 이기 울매만이나?” 강원 강릉에서 3년 만에 다시 걸린 귀성 환영 사투리 현수막이다. 올해 추석을 맞는 사람들의 기분을 한마디로 표출한 것 같다. 2022년 추석은 반갑고 유쾌하게, 가족 간에 다툼 없이 따뜻한 정을 나누고 이웃의 어려움도 살펴보는 위로와 화합의 한가위가 되기 바란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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