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독성 채권

안호기 논설위원 2022. 9. 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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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민사회단체 ‘톡식 본드 이니셔티브’는 화석연료 사업이 활발한 ‘더티(Dirty) 30’ 기업에 한국전력과 인도 아다니, 미국 엑손모빌, 프랑스 토탈에너지 등을 선정했다. 톡식 본드 이니셔티브는 이들 대규모 화석연료 기업이 상대적으로 발행이 쉬운 채권을 통해 은행 대출보다 2.5배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toxicbonds.org 자료사진

한국전력 회사채(한전채) 신용도는 AAA로 우량 등급이다. 금리도 연 4% 중반대여서 인기가 높다. 한전은 올 들어 이달 6일까지 채권 19조740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월평균 2조4000억여원으로 지금 추세대로라면 연말에는 30조원에 근접하게 된다. 지난해 한전채 발행액(10조4300억원)의 약 3배로 급증했다. 7일 기준 한전 시가총액 12조5825억원도 크게 웃돈다. 한전은 상반기 적자가 14조3000억원이었고, 연말까지 30조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에 필요한 자금조차 빚을 내 메우는 형편인 것이다.

그런데 한전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투자하기에 유리한 것으로 평가받는 한전채에 글로벌 시민사회단체 ‘톡식 본드 이니셔티브(Toxic Bonds Initiative)’가 ‘독성 채권(Toxic Bonds)’ 딱지를 붙였다. 석탄·석유·가스 등 기후변화의 주범인 화석연료 사업 확대에 쓰이는 자금을 조달하는 채권이라는 이유다. 톡식 본드 이니셔티브는 최근 세계 1, 2위 자산운용사 블랙록, 뱅가드 등 74곳의 글로벌 금융사에 한전채를 매입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공문을 전달했다.

담배나 술, 무기 등 이른바 ‘죄악주’에 대한 주식투자를 제한하는 사례는 있었지만, 화석연료 기업의 채권에 제동을 건 것은 이례적이다. 톡식 본드 이니셔티브는 “채권시장은 화석연료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안전한 피난처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화석연료 사업이 활발한 ‘더러운 30대 기업(Dirty 30)’을 선정하기도 했다. 한전은 인도 아다니, 미국 엑손모빌, 프랑스 토탈에너지 등과 함께 주요 기업으로 지목됐다. 한전이 석탄발전을 단계적으로 중단한다면서 여전히 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서 새 석탄화력 발전소를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한전으로서는 억울한 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채권 발행이 급증한 것은 맞지만, 화석연료 확대는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발전원료인 석탄과 가스 사용량은 그대로인데 가격이 급등했다. 전기료를 올리지 못해 적자가 커졌고 불가피하게 채권 발행을 늘렸다. 다만 올해 상반기 한전이 국내 석탄 수입량의 절반 이상인 3107만t을 사용한 화석연료 기업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한계는 없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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