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아파트 관리소장 "방송 땐 괜찮았는데"..주민들도 "하천 범람 안내한 것이 무슨 죄?"

김수연 2022. 9. 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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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포항시 하천 정비로 냉천 범람" 주장
"정비 사업 후 하천 유속 빨라져. 예고된 인재"
소장 "내가 바보인가? 물 들어오는데 방송하게" 항변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지난 6일 오후 소방당국이 경북 포항시 오천읍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남성 생존자 1명을 구조해 나오고 있다. 포항=뉴스1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경북 포항 남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물이 차 주민 7명이 숨지자 주민들은 “미리 막을 수 있었다”며 예고된 인재(人災)였다고 주장했다.

7일 태풍으로 주민 7명이 숨진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아파트 주민 등에 따르면 포항시가 2012년부터 시행한 하천 정비 사업이 이번 침수 사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시가 하천 둔치에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조성해 경관은 좋았으나 물길과 자연배수로를 지나치게 좁게 지어 하천 범람에 취약했다는 지적이다.

주민들은 이 사업으로 인한 하천 범람을 우려해 상류에 댐 건설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전했다.

해당 아파트의 주민 A씨는 뉴스1에 “포항시가 ‘고향의 강’ 사업을 하면서 냉천에 수변공원을 만들었는데, 비가 갑자기 많이 내린 탓도 있지만 그 영향으로 냉천이 범람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포항시는 2012년부터 국비 178억원 등 317억원을 들여 오천읍 문충리에서 청림동 항만교 구간 14.3㎞에 산책로를 만들고, 징검다리와 주차장, 친수공간을 조성한 ‘냉천 고향의 강’ 사업을 실시해 지난해 10월 준공했다.

하지만 냉천의 한계수량은 1시간당 강수량이 77㎜로 설계돼 이번처럼 100㎜가 넘는 폭우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A씨는 “고향의 강 사업으로 구불구불했던 냉천이 직선화돼 폭우가 쏟아지면 강의 유속이 더 빨라져 피해를 더 키운 것”이라며 “이틀 동안 400㎜ 가까운 장대비가 쏟아졌고 하필 바다가 만조 때여서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지 못하고 갇히게 되면서 순식간에 냉천 하류지역이 범람해 아파트로 밀려들어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향의 강 사업 때 냉천 하류 저지대 주민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했어야 하는데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며 “재정비 때는 옹벽을 쌓거나 범람을 막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아파트의 차재환 주민자치위원장도 뉴스1과 인터뷰에서 “지하주차장 침수 사고 원인은 관리사무소의 안내방송 때문이 아니라 바로 옆 하천 범람으로 생긴 일”이라며 “일부 언론에서 ‘아파트 관리소장이 지하주차장의 차를 빼라’고 방송한 바람에 주민들이 변을 당했다고 보도해 관리소장에 대한 원성이 높은데, 주민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리소장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일 오전 5시30분쯤 관리소장과 함께 지하주차장에 가 봤는데 당시에는 물이 고여 있지 않았고 비도 장대비 수준이 아니었다”며 “오전 6시까지는 발목에 물이 찰 정도였는데 불과 10분 사이 허리춤 위에까지 물이 차 올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1995년 이 아파트에 입주한 뒤 27년 동안 냉천이 한번도 넘친 적이 없었다”며 “2002년 태풍 ’루사’ 때나 2003년 태풍 ‘매미’가 왔을 때도 범람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하천 범람이 예고돼 안내 방송을 한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고 되물었다.
‘침수 피해가 예상되니 차를 이동시켜 달라’는 방송을 듣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던 포항 남구 인덕동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사망한 것과 관련해 안내 방송을 했던 관리사무소 A 소장이 지난 6일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YTN 방송화면 갈무리
 
침수 사고 당시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이동하라’고 안내 방송을 했던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자 해당 소장은 직접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A 소장은 전날 언론과 인터뷰 도중 “내가 바보냐”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A 소장은 “그때(방송할 때)는 괜찮았다”며 “지하주차장이 침수될 위험이 없기 때문에 제가 방송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 언론에는 물이 범람해서 넘어 들어오는 천재지변인데 내가 방송을 해서 사람들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며 “내가 바보인가? 물 들어오는데 차 빼라고 방송하게. 그때는 정상적으로 배수펌프하고 다 작동을 하고 물이 안 들어왔다”고 했다. 이어 “그럴 생각은 못 했다. 물이 차서 넘어올 줄은. 주민들이 내가 방송하면 바로 내려오나?”라며 “아니잖나. 한 10분에서 20분 걸리잖나. 그 사이에 물이 찼다”고 했다.

한편 전날 오전 7시41분쯤 119에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를 빼기 위해 나갔던 주민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 이들은 전날 오전 6시30분쯤 태풍 힌남노가 몰고 온 비로 차량 피해가 예상되니 밖으로 옮겨 달라는 관리사무소 안내 방송 뒤 차를 이동시키기 위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신고 접수를 한 119는 가용한 모든 장비와 인력은 물론 해병1사단 수색대의 도움까지 받아 구조에 나선 끝에 전날 오후 8시15분쯤 지하주차장에서 전모씨(39·남)를 구조했다. 이어 오후 9시41분쯤 김모씨(52·여)도 의식이 있는 상태로 구조했다.

하지만 7명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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