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이젠 돌아오지 않는 알래스카 왕연어

유영규 기자 2022. 9. 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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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업이 주요 산업인 미국 알래스카주는 주가 정한 '공식 물고기'(the official state fish of Alaska)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왕연어(king salmon)입니다.

치누크 연어로도 불리는 왕연어는 몸길이 90㎝, 무게 13㎏ 이상으로 태평양에서 가장 큰 연어종입니다.

1963년 공식 물고기로 지정돼 알래스카를 상징하는 동물이 됐습니다.

왕연어를 잡는 관광상품도 꽤 인기입니다.

앵커리지에서 동남쪽으로 한 시간 거리의 윌리워크릭은 8, 9월에 돌아오는 각종 연어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이곳에선 상류를 향해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를 상당히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흰연어, 홍연어, 은연어 등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왕연어가 안돌아와 걱정입니다." 윌리워크릭을 안내한 미 농무부 산림청 소속의 짐 서머 씨의 말입니다.

알래스카 공식 물고기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왕연어 개체 수 감소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키나이강에서 매년 집계하는 왕연어 개체 수가 2017∼2020년 48% 이상 감소했다는 통계도 나옵니다.

수온 상승, 해류 변화, 인간의 포획량 증가 등 여러 가지 가설이 나오지만 아직 원인은 정확히 모릅니다.

서머 씨는 "왜 그런지 몰라서 과학자들이 지금 연구하고 있다"며 "아마도 기후 변화로 바닷물이 따뜻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면서 "기후변화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 실제 벌어지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알래스카 주정부도 홈페이지를 통해 왕연어가 직면한 위협 요소로 과도한 낚시, 댐, 서식지 축소, 기후변화를 꼽았습니다.

왕연어와 반대로 알래스카에서 세력을 불리는 야생동물도 있습니다.

알래스카에서 비버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와 관련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비버는 이제 알래스카주 전역에서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비버가 많이 산다는 앵커리지 북동쪽 이글리버 계곡에 있는 이글리버 방문자 센터의 자원봉사자 한스 씨는 "비버들이 댐을 많이 만드는 바람에 물길이 막혀서 연어가 회귀하지 못해 수가 줄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버와 왕연어 개체 수 증감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비버의 증가가 왕연어의 회귀를 막는 데 그치지 않고 알래스카의 온난화를 재촉한다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켄 테이프 페어뱅크스 알래스카주립대 교수 등이 5월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949∼2019년 70년에 걸친 항공·위성사진들을 분석한 결과 알래스카에서 비버가 최근 북극권 툰드라(동토 지대)까지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북극권 일대에서 비버가 만드는 댐으로 물길을 막아서 생긴 웅덩이 같은 연못이 1만 개가 넘고, 이 숫자는 날씨가 더워진 2003∼2017년 대부분 지역에서 배로 급증했습니다.

이렇게 생긴 '비버 연못'은 땅 온도를 높이고 이로 인해 지표면 아래 영구동토층이 더 빠르게 녹고, 이 영구동토층에 얼어있는 유기물이 부패하면서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 온실가스가 대기로 방출될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추정입니다.

'온난화→비버 증가→추가 온도 상승→동토 융해→온실가스 방출'이라는 악순환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래스카의 바다 생태계도 온난화의 여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북극권 해빙(海氷)이 빠르게 녹으면서 해양 동식물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입니다.

여름마다 알래스카를 비롯해 추운 바다까지 올라오는 범고래는 북극권의 해빙이 녹아 사라지면서 점차 더 많은 수가, 더 북쪽까지 마음껏 진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다른 바다 동물에겐 재앙을 알리는 경고음과 같습니다.

일명 '킬러 고래'로 불리는 최상위 포식자인 범고래의 증가로 다른 고래들과 바다사자, 물개가 많이 희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극고래(수염고래)는 과거엔 범고래가 다가오면 두꺼운 해빙 아래로 몸을 숨겨 피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숨을 곳이 줄어들면서 범고래의 먹잇감이 되고 있습니다.

바다사자와 물개, 북극곰은 이제 범고래의 증가와 더워지는 바닷물과 해빙 감소라는 온난화가 불러온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들과도 매일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미국 국립해양대기관리국(NOAA) 홈페이지,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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