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설악산 서북능선, 가을꽃 향연 시작

김민철 논설위원 2022. 9. 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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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회>

지난 주말 설악산 서북능선에 올랐다. 이른 아침 한계령휴게소에 도착해 서북능선을 따라 대청봉에 올랐다가 오색약수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설악산은 다양한 꽃이 피어서 언제 가도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말이 기억나 설렜다.

과연 산길에 들어서자마자 개쑥부쟁이가 연보라색 꽃을 피우며 반기고 있었다. 개쑥부쟁이는 사람들이 들국화라 부르는 종류 중 하나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쑥부쟁이 종류다. 쑥부쟁이와 달리, 꽃을 감싸는 총포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어서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설악산 개쑥부쟁이.

산행하는 동안 보라색 투구를 쓴 병정들이 길 양쪽에 서서 지켜주니 든든했다. 투구꽃이 지천이었다.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왜 투구꽃이라 했는지는 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위쪽 화피가 투구 또는 고깔처럼 전체를 덮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투구꽃이 핀 것을 보면 영락없이 병사들이 질서 정연하게 보초를 서고 있는 것 같다.

설악산 투구꽃.

투구꽃이 보이면 근처에 어김없이 진범도 피어 있다. 둘은 같은 속(Aconitum)이니 형제 식물이다. 그래서 꽃 모양이 비슷하지만, 꽃들이 촘촘히 달린 모습이나 꽃송이 하나하나가 좀 더 길쭉한 것이 다르다. 그래서 투구보다는 오리떼가 뒤뚱뒤뚱 걸어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새끼 오리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군대는 것 같기도 하다. 꽃은 8~9월 흰색 또는 보라색으로 피는 것을 볼 수 있다.

설악산 진범.

보라색 초롱들도 환영하듯 서북능선 내내 양쪽에서 불을 켜고 있었다. 금강초롱꽃들이다. 가끔 색소가 부족한지 흰색 초롱을 든 녀석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주 화악산 금강초롱꽃은 무더위 영향인듯 작황이 부실했는데, 설악산 금강초롱꽃은 어디나 풍성하다. 꽃색도 진한 보라색에서 연한 보라색, 흰색에 가까운 꽃까지 다양했다.

설악산 금강초롱꽃.

처음엔 꽃을 보고도 무심코 지나친 등산객들도 하도 예쁜 꽃이 많이 나오자 차례로 스마트폰을 꺼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꽃 사진을 찍는 필자에게 무슨 꽃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오리방풀도 산행 내내 끊이지 않고 나타났다. 오리방풀은 잎 끝이 거북꼬리 모양으로 길게 나와 있어서 산박하 등과 구분할 수 있다. 또 오리방풀 꽃은 수술과 암술이 화관 밖으로 나와 있지 않다.

설악산 오리방풀.

새며느리밥풀도 제철이었다. 산 입구부터 정상 부근까지 등산로 주변에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며느리밥풀 종류는 입술 모양으로 벌어진 분홍꽃잎 사이로 딱 밥알처럼 생긴 무늬 두 개가 있어서 쉽게 식별할 수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진짜 밥알이 아닌가 만져볼 정도로 진짜 밥알처럼 생겼다. 꽃며느리밥풀 등은 진짜 밥풀 무늬도 흰색이지만 새며느리밥풀은 이 밥풀 모양까지 붉은 색이다.

설악산 새며느리밥풀.

끝청에 이를 즈음부터는 과남풀도 보이기 시작했다. 과남풀은 용담과 함께 대표적인 가을 보라색 꽃으로, 언제 보아도 세련미를 느끼게 하는 꽃이다. 용담이 꽃잎을 활짝 벌리고 있는 것과 달리, 과남풀은 대개 꽃잎을 오므리고 있다. 아직 덜 피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늘 그 상태이고 햇빛이 좋을 때나 약간 벌어지는 정도다. 저렇게 꽃잎을 오므리고 있으면 벌이 어떻게 들어가나 생각했는데, 한번은 벌이 아주 자연스럽게 몸을 틀면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었다. 설악산 산행에서 이 일곱 가지 꽃 이름만 기억해도 꽃에 대한 궁금증을 거의 풀릴 것 같았다.

설악산 과남풀.

그밖에도 막 피기 시작한 하얀 산구절초, 노란 미역취, 바위에 큰 대(大)자로 피어 있는 바위떡풀, 홍자색 산오이풀, 꽃이 바람개비 모양으로 피는 송이풀, 보라색 꽃이 예쁜 배초향 등도 한창이었다. 가을꽃 향연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는 중이라 날씨를 걱정했는데 구름이 하늘을 가렸다 흩어졌다하는 정도였고 다행히 산행 중 큰 비는 내리지 않았다.

설악산 산구절초.
설악산 미역취.
설악산 바위떡풀.

갑자기 13㎞ 험한 산길을 걷자니 정말 힘들었다. 특히 쉼없이 돌계단이 이어지는 대청봉~오색약수길을 내려오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다녀온지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 장딴지와 허벅지가 아파 충동적으로 설악산을 택한 것을 후회할 정도다. 그래도 그 결과물로 꽃에 대한 좋은 기억과 꽃사진, 영상이 남아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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