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미 잇단 '중국 규제'..미국 기업은 '용가리 통뼈'?

남승모 기자 2022. 9. 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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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 간 경제 현안 중 가장 뜨거운 쟁점은 전기차 보조금입니다.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도록 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것으로 이 법에는 전기차 보조금뿐 아니라 태양광과 배터리 등 다른 산업 분야도 포괄돼 있어 우리 정부가 주목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법 중 하나가 반도체법입니다. 이 법은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 지원에 390억 달러, 연구 ∙ 노동력 개발에 110억 달러 등 반도체 산업에 520억 달러를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대해 25%의 세액공제를 해주는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두 법 모두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게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줘 미국 제조업 성장을 꾀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건 투자 유치와 더불어 중국을 견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점입니다. 미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중국산 광물이나 부품 사용을 제한하거나(인플레이션 감축법), 중국 내 시설 투자를 제한하는(반도체법) 방식입니다.

정리하자면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무기로 미국 투자를 유치하는 동시에 중국도 견제하겠다는 뜻입니다. 미국 내 혜택은 우리에게도 좋은 기회이지만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과의 교류가 제한되는 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이제 우리의 선택만 남은 셈입니다. 다만,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보조금을 앞세운 미국의 산업 정책은 정당한가? 중국 견제로 미국은 피해가 없을까?
 

"보조금, 다른 나라들이 먼저 시작…세금 들어가니 제약조건은 당연"

기자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미 국무부 브리핑에서는 이런 답을 듣기 어렵습니다. 늘 정제된 가이드 라인에 맞춘 정도의 답 밖에 얘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답변이 답답한 건 미국 언론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늘 먼저 질문을 하는 AP기자가 대변인과 입씨름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점입니다.) 이런 의문을 다소나마 풀어준 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KOTRA가 마련한 한 인터뷰 자리였습니다.


존 뉴퍼(John Neuffer)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 ) 회장은 오늘(5일) 저녁 한국 방문에 앞서 KORTA-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참고로 미국 반도체산업협회는 미국에 본부가 있는 반도체 기업의 99%를 대표하는 건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을 포함해 전세계 반도체 업체의 3분의 2를 회원사로 갖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중국 업체는 없다는 현장 답변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질문 답변이 오갔지만 앞서 든 의문점을 위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미국의 보조금 정책 문제입니다. 미국의 보조금 지급과 그에 따른 중국 관련 제한 규정은 문제가 없는가? 뉴퍼 회장은 먼저 미국의 반도체 산업 후퇴 원인 중 하나로 한국, 일본 등 다른 나라와 달리 그간 미국이 산업 유치를 위해 인센티브 제공을 하지 않은 점을 들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 등 각종 인센티브로 반도체 산업 유치에 힘쓸 때 미국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고 점점 미국 내 생산 기반을 잃어갔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이번 보조금 정책은 다른 나라들이 먼저 시작한 것이고 미국은 뒤에 뛰어든 것인 만큼 이를 불공정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보조금과 세제 혜택은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적절히 집행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제약조건이 붙는 건 당연한 것이고 이 제약조건에는 의회의 정치적 현실인식, 즉 중국에 대한 우려가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 제약 조건이 미 상무부 등 정부 기관에 의해 정립되는 과정에서 해당 기업들에게 충분한 유연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이들이 미국 내 산업 생산을 늘려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시장 막히면 기술 우위 잃을 수 있다"…미국의 딜레마

다음으로 미국이 보조금을 무기로 중국 견제에 나설 경우 우리 나라 등 외국 기업이야 그렇다 친다고 해도 미국 기업들은 피해가 없을까 하는 점입니다. '중국은 미국에게도 중요한 시장 아닌가?' '그런 시장에 접근이 제한된다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라는 기자 질문에 뉴퍼 회장은 'Million dollar Question'(백만 불짜리 질문)이라며 입을 열었습니다.


뉴퍼 회장은 먼저 미국 반도체 기업 생산량의 35~36%는 중국으로 팔려 나간다며 미국에게도 중국이 중요한 시장임을 강조했습니다. 특히나 중국 같은 주요 시장에 대한 수출이 심각하게 줄어들게 되면 반도체 연구 개발에 투자할 돈을 댈 수 없게 되고, 해당 분야에서 기술 우위를 지키기 위한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 기업들의 경우, 매출의 5분의 1을 연구 개발 재투자하는데 매출이 줄면 그 만큼 기술 개발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뉴퍼 회장은 이는 아주 섬세한 균형이 필요한 문제라면서 미국과 한국, 일본, 유럽 등의 모든 정책 입안자들이 중국에 대한 정책을 생각할 때 이런 점을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뉴퍼 회장은 반도체 협의체 칩4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비보도를 전제로 답변했는데, 유독 이 질문에는 그런 조건을 걸지 않았습니다. 미국 기업 입장에서도 이 문제는 공론화하길 원하고 있다는 반증인 셈입니다.

까다로운 보조금 지급 조항이 많은 전기차 보조금 문제는 물론 반도체법이 담고 있는 중국 투자 제한 역시 우리 정부 혼자 낑낑 앓기보다는 미국 내 기업들의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해 보입니다. (전기차 보조금 문제만 해도 중국산 광물 제약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미국 기업들도 맞추기 어려울 거란 전망이 많습니다.) 동맹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미국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큰 지렛대는 역시 자국 기업, 자국 내 여론이라는 건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어 보입니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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