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옌볜조선족자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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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접하고, 동쪽은 러시아 연해주와 접하는 지역을 우리는 북간도(北間島)라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조공을 바치던 여진족 거주지였지만, 17세기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가 중원에 진출할 때 이들을 데려가고 '봉금(封禁·이주 금지) 지역'으로 정했다.
옌볜조선족자치주다.
옌볜조선족자치주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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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들어 대흉년이 들자 조선인이 북간도에 본격적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청나라와의 북간도 영유권 분쟁에 따라 1902년 북간도 시찰사로 파견된 이범윤은 이 지역 거주자 10만여명을 우리 호적에 편입시켰다. 그는 북간도가 우리 영토임을 입증하는 자료를 수집했는데 유학자 김노규가 이를 보완해 ‘북여요선(北輿要選)’을 간행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북간도 지역이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다. 청산리·봉오동 등 항일 유적지가 많다.
중국 정부는 1952년 9월3일 이 지역에서 조선족의 자치를 인정하고 고유의 언어와 풍습을 허용했다. 처음에는 자치구였다가 1955년 자치주로 개칭됐다. 옌볜조선족자치주다. 면적은 4만2700㎢에 달하며, 옌지·투먼·둔화·허룽·룽징·훈춘의 6개 시와 왕칭·안투 2개 현으로 이뤄졌다.
옌볜조선족자치주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자치주 내 조선족 비중은 초기에는 70.5%였지만 2020년 기준 30.8%(59만7000여명)로 줄었다. 중국 내 전체 조선족도 2000년 192만명을 정점으로 점차 줄어 현재 170만명에 머물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 한국 등으로 대거 이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중국 정부가 중화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자치주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국가기관·기업·사회단체 등이 문자를 표기할 때 중국어와 한글을 병기하되 중국어를 앞세우게 하는 ‘조선 언어문자 공작 조례 실시세칙’이 시행됐다. 차세대가 정체성을 잃고 현지화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조선족 사회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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