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살' 보이저 1호, 영원한 안녕 준비하나

이정호 기자 2022. 9. 4.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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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발사돼 45년째 우주를 비행 중인 ‘보이저 1호’의 상상도. 현재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도 21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를 날고 있다. 최근 보이저 1호의 내부 컴퓨터에서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해 미 항공우주국(NASA)이 긴급 복구에 나섰다. NASA 제공
태양계 밖 성간 우주 첫 진입 등
45년 우주탐사 ‘인류 최초’ 기록
최근 자세조절 제어시스템 이상
NASA “치명적 문제 아니다”
판단에도 수명 우려 목소리 높아

꼭 45년 전인 1977년 9월5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 이날 이곳에선 특별한 우주 탐사선이 발사됐다. 이름은 ‘보이저 1호’, 여행자 또는 항해자라는 뜻인 이 우주선의 임무는 원거리 탐사였다.

1979년 3월에 태양과 7억7000만㎞ 떨어진 목성을, 1980년 11월에는 14억2600만㎞ 떨어진 토성 곁을 통과했다. 태양과 지구는 ‘고작’ 1억5000만㎞ 떨어져 있다. 보이저 1호는 당시까지는 갈 수 있으리라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던 먼 행성까지 직접 비행해 관측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렇게 태양계 밖으로 날던 보이저 1호는 1990년 2월14일, 명왕성 근처에서 특별한 사진을 찍는다. 제목은 ‘창백한 푸른 점’, 이 원거리 촬영 사진의 피사체는 뜻밖에도 지구였다.

보이저 1호와 무려 60억㎞ 떨어진 거리에서 찍힌 지구는 볼품없는 먼지처럼 보였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이 사진의 촬영을 주도한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우주라는 규모에서 지구, 그리고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말하고 싶어 했다. 보이저 1호는 과학 탐사선 이상의 의미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보이저 1호에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 지난 5월부터 알 수 없는 신호를 지구로 쏘기 시작했다. 원인은 보이저 1호에 탑재된 컴퓨터의 이상 작동이었다. 사람으로 따지면 뇌에 문제가 생긴 셈이다. 지금까지는 한번도 없던 일이었다. NASA 연구진은 긴급 처방을 했지만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지는 못했다. 만 45세 ‘노병’인 보이저 1호의 정상 작동이 얼마 남지 않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안테나 위치 알리는 ‘계기판’ 이상

현재 보이저 1호는 지구에서 233억㎞ 떨어진 먼 우주를 날고 있다. 빛의 속도로 달려도 무려 21시간이 걸려야 닿는 거리다. 인간이 만든 우주물체 가운데 지구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2012년 8월에는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기 입자 바람인 ‘태양풍’이 미치는 영역을 인간이 만든 탐사선으로는 처음으로 넘어섰다. 태양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인터스텔라’, 즉 성간 우주로 진입했다. 보이저 1호가 비행하는 어느 곳이든 ‘인류 최초’라는 발자국이 찍히고 있다.

이런 보이저 1호에 지난 5월, 이상한 일이 생겼다. 보이저 1호의 안테나를 지구 방향으로 돌리도록 조절하는 탐사선의 핵심 부품인 ‘자세조절 제어시스템(AACS)’에서 엉뚱한 정보가 지구로 전송되기 시작했다.

AACS가 실제 움직인 위치와 이를 읽어낸 측정 수치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나타났다. 자동차로 따지면 주행 능력은 멀쩡한데, 속도계가 망가져 몇 ㎞로 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 생긴 셈이다.

■죽은 컴퓨터가 엉뚱한 신호 쏴

그런데 원인이 희한했다. 지난달 30일 NASA는 공식 발표를 통해 “수년 전 작동을 멈췄던 컴퓨터가 갑자기 AACS의 수치를 전송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정보가 손상됐다”고 설명했다. 죽었던 컴퓨터가 되살아나 엉뚱한 일을 벌인 것이다. 수잰 도드 NASA 보이저 프로젝트 매니저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제대로 작동 중인 보이저 1호의 다른 컴퓨터를 통해 AACS가 측정 수치를 보내도록 새로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조치로 문제는 일단 해결됐다.

NASA에선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해 나갈 것”이라면서도 “이번 일이 보이저 1호의 장기적인 ‘건강 상태’에 위협이 될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밝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NASA는 내부 시스템에서 명령어 오류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노병’의 추가 고장 가능성도

1970년대 기술로 만들어진 ‘올드보이’인 보이저 1호는 그동안 큰 고장 없이 작동했다. 2017년 엔진을 분사해 자세를 지구 방향으로 트는 데 성공했고, 2019년 전력을 아끼기 위해 보온장비를 끈 과학기기 5개도 잘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보이저 1호 내부의 ‘방사성 동위원소 발열 발전기(RTG)’가 2025~2030년 사이에 멈출 가능성이 크다. 수명이 다한 것이다.

발사 때와 비교하면 전력 생산 능력이 이미 40% 줄었다. 전력이 끊기면 탐사도 끝난다. 기계적인 피로도가 쌓이기 시작한 보이저 1호에서 엉뚱한 컴퓨터가 작동한 이번 일처럼 예기치 않은 문제가 또 생길 가능성도 있다.

우주개발 역사에서 매일 새로운 페이지를 쓰고 있는 보이저 1호가 언제까지 인류를 대표하는 ‘여행자’로 남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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