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銀도 퇴짜, 결국 사채로..빚내서 빚 갚는 벼랑 끝 서민들
[편집자주] 한때 돈이 넘쳤다. 싼 돈을 빌리는게 어렵지 않았다. 금리가 올랐다. 돈이 비싸졌다. 물가마저 올랐다. 서민층은 급하지만 돈을 점점 구하기 어려워졌다. 수천% 불법사채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사회 문제까지 우려된다. 돈을 찾는 '대출 난민'을 들여다봤다.
금리 상승으로 대출 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저신용·저소득 취약계층이 고금리 대출로 밀려나고 있다. 물가 상승으로 필요한 돈은 늘었는데, 금리 상승과 법정최고금리 인하가 겹치면서 저신용자에 대한 금융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져서다.
제2금융권과 대부업에서도 밀린 취약계층은 불법사금융(사채)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곳곳에서 불법사채가 늘어난 신호가 감지된다. 윤석열 대통령도 직접 나서 "불법사금융 문제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금융이 아닌 사회시스템을 흔들 수 있는 문제로 본다.
◆가계신용 은행은 줄고, 저축은행은 늘고
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오르면서 저신용·저소득층 등이 더 굽었다. 은행권에서 제2금융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가속화돼서다. 올해 상반기 기준 상호저축은행의 가계신용 대출 잔액은 39조6436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4.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은행권의 잔액이 0.5% 줄어든 것과 다른 양상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말과 비교하면 저축은행의 가계신용 잔액은 52.2% 증가했다. 금융권에서는 은행권 대출에 한계가 온 사람들이 2금융으로 밀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4월 기준 다중채무자(451만명)과 다중채무액(598조9000억원)은 2019년 말보다 각각 4.1%, 13.8% 늘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가계 재무상황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물가 상승까지 겹친 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돈이 들어올 일보다 나갈 일이 더 많아지자 대출로 돌려막기를 한다는 분석이다. 금융당국은 코로나 피해가 큰 자영업자에서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진 것으로 본다.
◆제도권 금융, 저신용자 대출 여력 바닥...지난해 불법사금융 상담·신고 26% 증가
문제는 제2금융권도 이들을 받아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금리 상승으로 자금 조달비용은 커졌는데,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인하되면서 고위험의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내주기가 어려워졌다. 대부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결국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불법사채의 유혹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2018년 최고금리 인하(27.9%→24%) 당시 4만~5만명이 불법사금융으로 유입됐을 것으로 추산한다. 지난해는 금리 상승까지 겹쳐 더 많은 사람들이 제도권 금융에서 이탈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하반기에만 대부업 이용자(112만명)가 11만명 줄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불법사금융으로 넘어갔을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지난해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불법사금융(보이스피싱 제외) 상담·신고 건수는 9238건으로 전년보다 25.7% 증가했다. 특히 고금리 사채와 관련된 접수는 85% 급증했다.
오태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권에서 조달금리가 오르다 보니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내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그러다 보니 저신용자 중심으로 은행에서 2금융권으로, 또 불법사금융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 인하와 금융권의 조달비용 상승, 경기침체 등이 맞물린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시스템 문제, 윤석열 "불법사금융 뿌리뽑아야"
불법사금융 이용자의 증가는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권 제도 밖에 있는 형태여서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만 사회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커지면서 이들을 보호하는 비용이 추가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법사금융 이용증가는 사회적 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한 불법행위와 범죄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고, 이를 막기 위한 행정 비용도 추가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금리 상승세에 편승한 불법사금융 피해 확산 우려가 크다"며 "감당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고금리와 채권 추심으로부터 서민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책무"라고 말하며 대책 강구를 요구한 이유다.
정부는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불법사금융척결 범정부 TF(태스크포스)'를 꾸려 대응에 나섰다. 불법사금융 단속과 함께 처벌을 강화할 예정이다. 또 금융지원 방안을 강화하고 피해 구제를 위한 법률지원을 병행할 계획이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지원과 보호를 두텁게 해줄 필요가 있다"며 "선별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복지로 접근해 아예 주는 방안 등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직장인 2년차 심모씨(29)는 최근 '빚'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홀어머니 암 수술비와 치료비로 은행과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끌어다 썼는데, 갈수록 높아지는 대출 문턱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돼 추가 대출을 받으려 저축은행과 캐피탈사를 찾았지만 "신용점수가 낮아 대출이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심씨는 신용카드 리볼빙으로 빚을 돌려 막았고, 최근에는 사채까지 알아보고 있다.
올해 들어 가계대출 증가세가 주춤한 가운데 저축은행과 카드, 보험사,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 가계대출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강화 시행 등 더 깐깐해진 대출 규제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워진 차주들이 2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은행들의 가계대출 잔액은 1분기 말 대비 1000억원 감소했다. 반면 저축은행과 상호금융권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은 같은 기간 가계대출이 9000억원 증가했다. 보험사와 카드사 등 기타금융기관 가계대출도 9000억원 늘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격차가 더 두드러진다. 은행은 올해 들어 가계대출이 4조6000억원 줄어든 반면, 비은행예금취급기관·기타금융기관 가계대출은 총 5조5000억원 늘었다.
그러나 늘어난 2금융권 대출이 저신용자가 받은 게 아니다. 저축은행중앙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신용점수 500점 이하 저신용자에 신용대출을 내준 저축은행은 10곳 뿐이다. 1년 전(16곳)보다 약 38%(6곳) 줄었다. 카드사들의 카드론(장기카드대출)도 마찬가지다. 카드사들은 지난 7월 신용점수 500점 이하 저신용자 대상 신규 카드론을 단 한 건도 취급하지 않았다.
저신용자들의 보루였던 2금융권이 이들에 대출을 내주지 않고 있는 건 가계대출 규제가 빡빡해진 영향이란 분석이다. 강화된 개인별 DSR 시행으로 은행 대출 여력이 줄어든 고신용 차주들이 은행보다 DSR이 10%P(포인트) 여유로운 2금융권에서 추가 대출을 받는 경우가 늘면서다.
설상가상 최근 금리 상황도 제2금융권의 저신용자 대출 취급을 어렵게 한다. 지난해 8월부터 7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상으로 79개 저축은행의 1년 만기 평균 정기예금 금리는 연 3.58%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8월 말(2.12%)보다 1.46%P 뛴 것이다. 저축은행은 자금조달 대부분을 예·적금에 의존하고 있는 터라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리스크를 줄이려면 저신용자에 내주는 대출부터 끊을 수밖에 없다.
특히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법정 최고금리 인하(연 24%→연 20%)로 대출금리 상단이 더 낮아지면서 저신용자들에 대출을 내줄 여력이 더 줄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기준금리가 크게 오르면서 은행과 수신 경쟁을 펼쳐야 하는 저축은행 업권의 자금 조달이 예전보다 어려워졌다"며 "동시에 최고금리 등 규제로 대출 여력이 떨어지다 보니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신용점수가 높은 고객들 위주로 대출을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자들은 소액이라도 돈을 빌려주는 곳을 찾아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다. 금융기관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의 굴레에 빠진 사람들도 덩달아 늘고 있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다중채무자는 492만8262명이다. 코로나19(COVID-19) 발생 직전인 2019년 말 대비 약 46만명(12.1%)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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