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작품이라 빠졌나", 정부 예산에서 경항모가 사라진 이유 [박수찬의 軍]
문재인정부 역점 사업이었던 3만t급 경항공모함 건조가 존폐 위기에 몰렸다. 국방부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2023년도 국방예산안에서 경항모 사업 예산을 반영하지 않으면서다.
하지만 윤석열정부에선 기본 설계 입찰 공고마저 지연, 올해 사업비 72억 원의 집행도 불투명하다. 여기에 지난달 공개된 내년도 국방예산에 경항모 사업비가 포함되지 않으면서 경항모 사업이 현 정부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취약했던 경항모 사업 기반
대통령이 특정 사업에 높은 관심을 가지면 정부 조직은 무리해서라도 해당 사업을 추진하는 속성을 갖는다.
문재인정부 시절 경항모 사업이 그랬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2033년 무렵에 모습을 드러낼 3만t급 경항모는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조선 기술로 건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해 10월 국군의날 기념식과 12월 장군 진급신고에서도 경항모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당부했다.
정부와 군, 여당은 이같은 기조에 발맞춰 움직였다. 2020년 말에 2021년도 국방예산을 편성하면서 타당성 연구가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경항모 사업비로 101억원을 포함했다가 1억원만 반영되기도 했다.
2022년도 국방예산에서는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이 정부 원안대로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여야가 진통을 겪었던 원인으로 경항모가 지목될 정도로 ‘핫이슈’였다.
경항모를 실제로 운용할 해군도 공식 홈페이지에 경항모 관련 컨텐츠를 올리지 않고 있다. 민주당에서도 경항모 관련 논평은 나오지 않는다.
이는 경항모 사업 추진 동력이 문 전 대통령의 ‘관심’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 뜻을 반영하는 업무 추진방식은 대통령이 바뀌면 사업 추진 기반이 사라진다.
군이 내년도 예산안에서 경항모 사업비를 편성하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군은 수직 이착륙 전투기 소요 검증과 함께 함재기 국내 개발 가능성 등을 추가로 연구한 뒤 경항모 사업 추진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수천만원 수준의 사업비를 내년도 국방예산안에 포함해서 사업의 명맥을 잇게 하되 여건이 개선되면 재추진하는 방식도 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사업비를 편성하지 않았다.
정권교체에 쉽게 흔들릴 만큼 군 내부의 사업 추진 동력이 약했다는 뜻이다.
취약한 공감대는 문재인정부 시절부터 이미 지적됐다. 군 내부에서도 경항모에 대한 태도는 서로 달랐다.
활발한 홍보활동을 펼친 해군과 달리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한발 물러서서 관망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사업을 실제로 집행해야 할 방위사업청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정치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말 국회 국방위원회가 경항모 예산 삭감을 결정했을 때 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반대 의견을 냈지만 소수였다. 국방위 예산심사소위에서도경항모 사업비 원안 통과를 주장한 여야 의원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국가 대전략과 경항모의 관계에 대한 고민 대신 ‘경항모 사업 띄우기’를 먼저 하고 정권의 힘에 의존해 사업을 속전속결로 추진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예산안에 합의하지 않았던 국민의힘이 사업을 승계하지 않을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 결과 경항모 사업은 윤석열정부 출범 초기부터 존폐 위기에 직면했다.
일각에서는 사업이 백지화되지 않더라도 ‘건전 재정’을 강조하는 현 정부 기조를 감안하면, 윤 대통령 임기 내 착수는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KF-21 개발 사업이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사업타당성 조사를 반복하며 10여년 동안 논란을 빚다가 박근혜 정부에서 체계개발이 시작된 전례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항모 못지않게 ‘내실 다지기’도 중요
한때 경항모 건조에 올인했던 해군은 이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다. 전력증강사업의 본격적인 착수 시점이 1년 늦어지면, 사업 일정은 2~3년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해군이 내실을 다지면서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해야할 때라고 지적한다.
정비와 교육훈련 체계를 개선해 군함과 각종 장비 가동률을 높이면서 성능개량을 지속하고, 미사일과 탄약 적재량을 늘리면서 높은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며, 근무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해군의 ‘기본’을 재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사례는 이같은 지적을 뒷받침한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사일에 피격된 순양함 모스크바함의 전투체계와 무장 등은 1980년대 수준이었다. 대함미사일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다.
2019년 12월 수리중이었던 항모 쿠즈네초프호에서 화재가 발생, 2명이 사망했다. 인화성 물질을 치우지 않고 용접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2015년 쿠즈네초프호가 시리아 공습에 참가했을 때, 최소 2대의 함재기가 착륙 도중 추락했다. 조종사들의 이착함 경험 부족과 관련 장비의 기술적 결함 등이 겹친 결과였다. 2008년 11월에는 러시아 핵잠수함 네르파함에서 프레온가스가 유출, 20명이 숨졌다.
한국 해군은 어떨까. 지난 7월 미국 하와이 해상에서 문무대왕함이 SM-2 함대공 미사일 1발을 쐈지만 목표물 근처에서 폭발했다. 앞서 2016년 같은 훈련에서는 세종대왕함이 SM-2 2발을 발사했으며 당시 1발은 명중시켰으나 1발은 빗나갔다.
지난 7월 5일 최영함이 3시간 동안 통신이 두절된 사건은 문무대왕함의 SM-2 발사 실패보다 더 심각하다.
당시 최영함은 특정 방향으로 기동하면서 위성 통신 안테나의 전파 송수신이 차단돼 통신 장애가 발생했다. 대체 통신망으로 전환하거나 함정 기동 방향을 바꿨어야 했으나 이행하지 않았다.
최영함이 최신 위성전화번호를 공유하지 않아 3함대 상황실은 즉시 통신을 재개하지 못했다.
사건 발생 시점은 새벽이었지만, 오전 7시45분에야 해군참모총장에게 지휘 보고가 됐다. 합동참모본부에는 상황 보고와 지휘 보고를 하지 않고, 같은날 오후 2시50분쯤 실무자에게 참고 보고만 했다. 전반적인 근무 기강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군함에 전투기를 탑재한 항모는 세계 각국 해군이 모두 갖고 싶어하는 ‘핫 아이템’이다. 하지만 큰 군함을 보유했다고 해서 전투력이 자동적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내실이 튼튼해야 전투력도 강해진다. 경항모를 꼭 보유해야 한다면, 현 상태에서 전투준비태세를 갖춘 뒤 국가안보전략에 맞는 운용전략을 수립해서 정치권과 국민 공감대를 얻는 것이 먼저다. 그렇게 하면 경항모는 자연스레 한국군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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