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환자 증가 우울증 치료제 처방 두고 의료계 '갈등'

항우울제의 하나인 선택형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는 우울증 치료 약물 중 상대적으로 부작용은 적고 안전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현재 정신과 외 내과, 소아청소년과, 가정의학과 등 다른 진료과에서도 60일 분량의 처방이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정신과가 아닌 진료과에서도 이 약을 60일 분량 이상으로 처방할 수 있도록 하는 합의안을 마련하자 논란이 커졌다. 비 정신과 의사들은 현대인들에게 비중이 커지고 있는 우울증 치료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반면 정신과 의사들은 약물 부작용, 초기 우울증 치료에서의 약물 처방 한계 등 부정적인 영향을 강조하며 맞서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국내에서 우울증 환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우울증 치료전략을 두고 의료계 내부 갈등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심평원은 지난달 17일 SSRI의 반복 처방을 허용하는 합의안에 대해 각 계 의견을 수렴하는 회의를 열었다. 해당 합의안에는 비 정신과 의사들이 우울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 대해 이 약을 60일씩 반복적으로 처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심평원 합의안은 보건복지부 검토를 거쳐 심평원 유권해석이나 복지부 고시 형식으로 시행될 수 있다.
SSRI는 1980년대 ‘프로작’이란 약제로 처음 등장했다. 항우울작용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억제해 양을 늘리는 원리로 우울증을 완화한다. 다른 신경전달물질의 재흡수까지 억제하는 삼환계 항우울제(TCA)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안전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비 정신과 의사들은 SSRI의 안전성 등을 근거로 들며 다양한 진료과에서 반복 처방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신경과, 내과, 가정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의 홍승봉 회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SSRI보다 부작용 위험성이 높은 삼환계 항우울제는 처방 제한 규정이 없다”며 “60일 처방 제한은 한국 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규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60일 처방 제한’이 철폐되면 초기 우울증 치료 접근성이 지금보다 몇 배는 높아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 정신과 의사들 “SSRI 부작용 중에는 청소년 자살 행동 증가도 있어, 전문가 처방 필요”
SSRI 안전성에 대한 정신과 의사들의 견해는 다르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 회장은 “SSRI는 심장 전도 장애가 있는 환자를 비롯해 비교적으로 안전하게 쓸 수 있지만 부작용에 대해선 정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에 따르면 SSRI는 잘 알려진 구토, 오심 등과 같은 부작용 외에도 과도한 진정 작용, 무력감, 항이뇨호르몬 부적절 분비 증후군, 세로토닌 금단 증후군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여러 해외 연구에선 소아청소년의 자살 행동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김 회장은 “77개의 연구 결과를 분석한 결과 SSRI는 16건의 자살과 172건의 자해, 177건의 자살 미수가 보고됐다”며 “SSRI를 처방하는 경우 자살 시도 위험성 평가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울증 환자가 아닌 환자에게 SSRI가 잘못 처방될 경우 위험성이 높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회장은 “양극성 장애(조울증)는 초기 증상이 우울증인데, 항우울제 복용이 조울증 유발을 촉진할 수 있다”며 “초기 우울증 치료에서 항우울제 처방은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기 우울증 치료를 약물치료에 의존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우려감을 표했다. 약물치료는 비용이 저렴하고 효과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질환의 재발까지 고려하는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엔 역부족이란 설명이다.
김 회장은 “다수의 임상 연구에선 약물 치료를 통해 완전히 증상이 개선되는 경우가 30% 정도에 불과했으며, 60~70%의 환자는 재발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미국 정신과학회 진료지침은 약물치료 외에 역동정신치료, 인지행동 치료 접근을 병행하도록 권고한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한국은 해외에 비해 전문의 비율이 높은 국가”라며 “SSRI 처방제한은 양질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전문가의 처방을 독려하는 바람직한 제도”라고 말했다. 이어 “약물 처방 규제는 우울증 치료의 올바른 전략이 될 수 없다”며 “정신과에서 우울증 치료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인식개선과 사회적 기관과의 연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