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쉽] 중국 경제와 헤어질 결심?..중국, 어떻게 달라졌길래
IMF 외환위기와 뉴 밀레니엄 사이의 어느 해, 그러니까 1999년 쯤으로 기억한다. 필자는 당시 경제부 현장기자였다. 중국에 진출해 공장을 짓고 수출 활로를 뚫는 어느 중견기업에 취재를 갔다. 촬영을 마친 뒤, 칠순의 대표와 차를 한잔 마시게 됐다. 그가 물었다. "기자양반, 중국 가서 발마사지 받아봤소?" 아직 중국을 못 가봤다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빨리 가보시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곳이니까. 그리고, 발마사지 받을 수 있을 때 많이 받아두시오. 우리 역사에서 중국사람들을 그렇게 싼 값으로 부릴 수 있었던 적이 언제 있었소? 한 20년 지나면 우리 젊은이들이 중국사람들 발마사지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지."
그 후 이십여년. 중국은 엄청나게 변했다. 나폴레옹이 '깨우지 말아야 할 잠자는 사자'라고 했다던 중국은 세계최강 경제국가의 자리를 두고 미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지척에 있는 우리는 중국 급성장의 명(明)과 암(暗)을 두루 경험했다.
올해가 한중수교 30년이다. 미우나 고우나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 되었다. 그 내용은 점차 달라지고 있다. 한때는 우리 기업들이 저임금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생산기지였고, 비교적 만만하게 진출할 수 있는 거대 내수시장으로 비친 적도 있었지만 그건 옛날 얘기다. 외국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굴던 중국정부는 그런 태도를 버린지 오래다. 중국의 기업경쟁력과 소비자의 안목이 급속히 높아지면서 우리 기업들은 거센 경쟁에 직면했다. 대중무역은 적자로 돌아섰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말, 청와대 경제수석의 발언이 나왔다. "중국 성장이 둔화되고 있고 내수 중심의 전략으로 전환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 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라는 발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NATO)정상회의 참석에 수행한 최상목 경제수석이 '유럽시장의 중요성'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 발언은 이번 정부의 외교안보정책과 맞물려 '탈(脫)중국 선언'으로 받아들인 사람이 많았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바보 짓' 등 거친 표현을 써가며 "어떻게 지금 갑자기 탈(脫)중국을 하느냐"고 맹공을 펼친 게 전형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중국이 우리 수출의 25%, 수입의 23%를 차지하는 가장 큰 교역 상대국이고, 특히 2천 개 가까운 상품은 중국에서 80% 이상 수입해서 쓸 정도로 의존도가 큰 상황이라는 사정을 청와대 경제수석 쯤 되는 사람이 몰라서 저런 소리를 했을 리는 없다.
중국과 비즈니스를 해 온 기업들의 사정과 국제적인 동향, 국제정치적 변화 등을 살펴보면 중국시장에 예전처럼 기대할 수 없다는 건 이미 수년 전부터 지속되어 온 지각변동급의 변화다. 우리가 중국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는 다만 변화에 적응해 생존할 방법을 찾아야 할 뿐이다.
차례
▷ 점점 나빠지는 대중 무역수지
▷ 왜 나빠지고 있을까?
▷ 중국에서 돈 벌기 어려운 이유
(1) 보조금 등 비(非)관세장벽
(2) 애국주의 소비 '궈차오'
(3)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았듯, 중국도 우리를 추격
▷고도화되는 중국 산업...거기에 점점 의존하는 한국 수출
▷배터리,반도체...신성장산업에서 한국 위협하는 중국
▷정치적 리스크 점점 커지는 중국 사업환경...불안에 떠는 다국적 기업들
▷중국은 과연 중진국 함정 벗어나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까?
▷어떻게 대처해야?
점점 나빠지는 대중 무역수지
대중 무역수지, 왜 나빠지고 있을까?
중국에서 돈 벌기 어려운 이유 (1) 보조금 등 비(非)관세장벽
아예 정치적인 이유로 기업이 직격탄을 맞기도 한다. 현대차는 2016년 중국에서 114만 대를 팔며 역대 최대 판매량을 찍었다. 중국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이듬해인 2017년 우리돈 약 1조6천억 원을 투자해 연산 30만 대 규모의 충칭 공장을 지었다. 하지만 사드 보복과 한한령 사태 이후 중국인의 반한감정이 커지면서 2017년에는 판매량이 80만대 아래로 급감했다. 2021년엔 또 절반으로 줄어 38만여 대에 불과했다. 이미 2019년에 중국에 지었던 첫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고, 그나마 지난해에는 중국업체에 이 공장을 넘겼다. 올 초에는 충칭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기아도 2016년 판매량이 최대(65만대)로 올랐다가 2017년에 반토막이 났고 2021년엔 거기서 또 반토막이 났다.
중국에서 돈 벌기 어려운 이유(2) 애국주의 소비 '궈차오'
궈차오 열풍은 각종 공산품을 넘어 문화, 일상생활 콘텐츠 등 다양한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에 따라 뜨는 상품은 '매우 중국적인' 것도 있고, 그냥 봐서는 그리 중국풍이 강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중국 커피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싼둔반(三頓半)'은 궈차오 바람을 타고 성장한 대표적인 중국 토종 브랜드다.
싼둔반이란 '3.5끼니'란 뜻으로 하루 세끼 외 0.5끼니인 커피가 곁들여진 중국 젊은 층의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세련된 디자인을 추구하며 '믹스 커피의 프리미엄화'를 내건 이 회사는 다양한 색상의 작고 귀여운 플라스틱 통에 담긴 인스턴트 커피를 소비자가 물, 우유 등 원하는 음료에 타 마시도록 했다. 로스팅 정도와 맛,향에 따라 번호와 색깔이 다르다. 2019년 광군제 쇼핑축제 커피 업종에서 네슬레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전통미 살린 디자인으로 중국소비자들의 눈길을 끈 화시즈(华西子)도 궈차오 소비의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붉은색과 한자 로고를 활용하는 스포츠브랜드 리닝(Li-Ning), 또다른 스포츠브랜드 안타(ANTA, 安踏)등도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위협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에서 돈 벌기 어려운 이유(3)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았듯, 중국도…?
한국도 처음엔 싸고 품질낮은 제품을 만들다가 점차 고급화된 제품을 만들어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해외출장자나 교민의 귀국선물 1순위는 일제 '코끼리밥솥'과 미제 '맥스웰 커피'였다. 김포공항 국제선 입국장에선 이런 '외제' 생필품을 산더미처럼 싸들고 들어오는 귀국자들을 온가족이 나와서 맞이하는 풍경이 일상이었다.
거의 모든 생활용품에 있어서 일제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2000년대 이후에도 일제 노트북컴퓨터나 휴대폰에 대한 수요가 상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품목에서 국산제품이 '일제'의 시장점유율을 압도하고 있다.
고도화되는 중국 산업...거기에 점점 의존하는 한국 수출
2000년에는 합판 등 목재, 가죽, 신발 등의 품목에서 전체 수출 중 대중수출 비중이 높았다. 반면 2021년의 목록에서는 이들 업종이 사라졌고, 정밀기기, 정밀화학, 반도체가 들어왔다. 2021년 반도체 수출 물량의 39.7%가 중국으로 갔다.
2000년 반도체산업의 대중 수출 비중은 3.2%였지만, 2021년에는 39.7%로 13배 가량 증가했다. 중국으로 수출된 정밀기기와 정밀화학제품, 반도체는 중국기업들이 다른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 데에도 많이 쓰인다. 대한상의는 지난 20년사이 그만큼 중국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된 것으로 봤다. "소비재의 대중 수출의존도는 상대적으로 줄어든 반면, 기술집약 산업의 대중 수출이 크게 늘어난 양상"이라며 "한·중 양국의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분석했다.
신성장산업에서 한국 위협하는 중국
정치적 리스크 점점 커지는 중국 사업환경…불안해하는 다국적 기업들
영국에 본부를 둔 다국적 보험 자문 및 중개회사인 윌리스 타워스 왓슨은 매년 기업들이 직면한 정치적 리스크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다. 올해 조사에서 다국적 기업의 95%는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데 따르는 리스크를 염려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여기서 말하는 인도태평양지역이란 결국 중국인데, '95%'는 2년전의 답변(62%)보다도 훨씬 높아진 것이다. 응답자의 압도적 다수는 서구와 중국의 전략적 경쟁과 경제적 디커플링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며, 이 과정에서 개별 기업이 보복의 목표물이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고 답했다.
19만여개의 영국 기업들을 대변하는 조직인 영국산업연맹의 토니 댄커 사무총장은 지난 7월말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내가 얘기해 본 모든 기업들은 중국에 집중된 자신들의 공급망을 다시 검토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서방의 공급망 분리가 가속화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국은 우리보다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낮아서 저런 소리를 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중국은 영국의 최대 수입대상국이며, 중국도 영국의 수출상품을 6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국가다.
중국주재 유럽연합(EU)상공회의소의 지난 6월 조사결과, 23%의 기업들은 사업조직을 중국 밖으로 옮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기업의 50%는 2021년 이후 중국내 사업환경이 그 전에 비해 더욱 정치적 영향에 휘둘린다고 했다. 이는 2019년의 같은 조사 때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당시 응답 기업들은 "중국시장의 활기와 성숙도에 대해 점점 굳건한 확신을 하게 된다"는 등의 답을 많이 했다. 주중 EU상의 부회장인 베티나 숀-베한진은 설문 조사결과와 함께 내놓은 성명에서 "오늘날 중국에서 유일하게 예측가능한 것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 뿐이며, 이는 기업환경엔 독이다."라고 일갈했다.
제로코로나 한다고 걸핏하면 기업활동을 중단시키고, 중국인의 애국심을 건드렸다고 불매운동하고, 그런 이유라도 분명하면 모르겠는데 무엇에 대한 보복인지 어떤 법규에 근거한건지 알 수도 없는 이유로 기업활동에 제약이 가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러시아와 한편이어서 언제 신냉전의 불똥이 튈 지 알 수 없으니, 기업하기가 점점 나빠진다는 것이다. 국제문제 전문지인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이런 사정을 전하면서 "일본과 한국의 기업들은 이미 전부터 당하던 일"이라며 롯데가 당한 사드 보복을 소개하기도 했다.
중국은 과연 중진국함정 벗어나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까?
2021년 중국에서 65세 이상 인구는 2억560만명으로 전체의 14.2%를 차지했다. 국제적 기준으로 볼 때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것이다. 이는 중국경제의 잠재성장률과 사회적 활력이 그만큼 빨리 둔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속적인 해외이민 유입과 신생아 출산으로 젊은 인구를 불려나가는 미국과 대조된다. 성장이 정체되고 소득이 늘지 않는 이른바 '중진국 함정'에 빠질 우려도 그만큼 커진다.
[어떻게 대처해야?] 중국에게 우리의 목줄을 쥐어주진 말자
대한민국이 중국 경제와 맺어나가야 할 관계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지금 시대의 세계사적 변화를 제대로 읽어야 방향설정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중-러간에 벌어지는 신냉전과 공급망 분리는 냉전종식 후 30년간 진행된 '자본에 의한 세계화'가 일단락되고 탈(脫)세계화(de-globalization)로 전환되는 거대한 흐름에 따른 것이다. 좀 이러다 말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안이한 판단이다.
▲참고기사: 세계화와 탈세계화, 어떻게 비롯됐나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540457 ]
시야를 동북아시아로 좁혀보면, 지금을 병자호란이 터지던 17세기에 비유하며 미국(망해가는 명나라)을 버리고 중국(떠오르는 청나라)에 붙는 게 조선, 아니 대한민국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필자는 기사 후반부의 상당부분을 그렇지 않다는 설명에 할애했는데,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많은 토론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대중접근이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중국몽은 전 인류가 함께 꾸는 꿈"이라는 식의 구애 일변도라면 한국은 중국이라는 블랙홀에 빨려들어가고 말 것이다. 우리가 머리 조아린다고 우리 물건 사 주지 않는다. 중국기업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격차를 유지하고, 서구 사람들조차 선망하는 브랜드 가치를 만들면 오히려 그들은 우리 물건을 살 것이다.
혐중정서에 올라타 '중국 손절'을 떠드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중국은 여전히 우리 바로 옆에 있는 인구14억의 거대시장이며, 우리 산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있다. 중국의 인건비가 많이 올라 인도의 5~6배 수준이라고 하지만 다종다양한 부품 소재기업들이 한데 모인 클러스터, 높은 제조역량, 도로와 전기 항만 등의 인프라는 여전히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남아있게 하는 경쟁력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몰아넣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겪었던 요소수 사태, 독일이 겪고 있는 러시아 천연가스 공급중단 사태 등에서 볼 수 있듯, 당장 편하다고 해서 한 나라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그나라에 우리의 목줄을 넘겨주는 것과 같은 위험한 일이다. 수출도 수입도 '다변화'가 살 길이라는 말이다.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 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는 말은, 당장 탈(脫)중국을 하자는 '헤어질 결심'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진단, 그리고 생존전략 필요성에 대한 주의환기로 읽는 게 맞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데 시간이 흐르고보니 풍경이 변하기라도 한 것처럼, 면밀하고 꾸준하게 무게중심을 조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스마트폰 공장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옮긴 삼성전자처럼, 경쟁력을 유지하는 기업들은 이미 조용히 오랫동안 해 온 일이다.
(구성·편집: 이현식 D콘텐츠제작위원 / 콘텐츠디자인: 박수민)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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