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공사, LNG 화물창 기술 쉽게 봐".. 대책 없이 대형선부터 제작
2억 달러짜리 배에 신기술 첫 적용하면서 보험은 無
한국형 액화천연가스(LNG) 화물창을 적용한 첫 배인 SK세레니티호가 2018년 2월 완성된 후 제대로된 운항을 한 번도 못 한 것과 관련해 업계에서는 애초에 준비가 부족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쟁사는 반세기 동안 기술을 축적했는데, 가스공사는 도입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위험 요인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국가스공사는 2000년대 초반까지 육상 LNG 저장탱크 관련 기술을 속속 국산화했다. 이후 2004년부터 2014년까지는 국내 조선사들과 함께 선박용 LNG 화물창 개발에 도전했다. 시장을 장악한 프랑스 GTT사가 LNG 화물창 기술 로열티로 LNG선 한 척당 100억원 이상을 받는 상황에서 수입기술을 대체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가스공사는 2016년에 관련 사업부를 KCLT란 자회사로 독립시키고 KC-1 기술을 현물출자해 50.2%의 지분을 확보했다. 나머지 지분은 조선사들이 갖고 있다.
가스공사는 연근해용 소형선보다 원양항해용 초대형선을 먼저 만들었다. 한국형 LNG 화물창 기술 KC-1을 적용한 LNG선 최대 사이즈인 17만4000㎥급부터 제작하겠다고 공고한 때는 2014년 8월, KC-1을 적용하는 두 번째 프로젝트인 제주 노선용 7500㎥급 LNG운반선·벙커링선 계획은 그로부터 2년 6개월이 지난 2017년 2월에 나왔다.
GTT의 전신인 회사들이 1960년대 2만7000㎥, 1970년대 5만㎥ 크기의 상업용 LNG선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기술의 내실을 다져온 것과 대비된다. SK세레니티 등에 적용된 기술의 설계를 일부 업그레이드한 KC-1이 적용된 제주 노선용 선박들은 2019년 9월 인도된 뒤 현재까지 정상적으로 운항 중이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지금은 ‘작은 크기의 LNG선부터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서 “첫 KC-1 실선화 공고를 내던 2014년 당시엔 제주도~통영 노선을 다니는 7500㎥급 선박 도입 프로젝트 자체가 없을 때다. 언젠가 다른 프로젝트가 나오길 바라고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초고가의 선박에 신기술을 최초로 적용하면서 실패를 고려한 대비책도 없었다. 운영선사로 선정된 SK해운이 SK세레니티와 SK스피카 건조를 삼성중공업에 맡기며 제시한 금액은 1척당 2억80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2350억원)다.
가스공사에서 LNG 화물창 기술 개발을 주도한 한 인사는 2014년 언론 인터뷰 등에서 “만약의 경우 설계상의 문제로 하자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KC-1 기술이 적용된 선박에서 하자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제조물 책임보험 같은 대비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KC-1 실선화 과정을 잘 아는 정부 관계자들도 “실선화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부담해야할 리스크를 분산하는 구조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GTT사는 전신인 가즈트랜스포트(Gaztransport)와 테크니가즈(Technigaz)로 거슬러 올라가면 반세기 가까운 LNG 화물창 기술 개발 역사를 갖고 있다. 가장 널리 쓰이는 기술인 GTT의 마크3(MARK-III)도 1969년에 나온 마크1(MARK-I)이 50년간 진화한 결과물이다. LNG와 바로 접하는 1차 방벽의 소재가 알루미늄에서 스테인리스강으로 바뀌기(MARK-I)까지 10년이 걸렸고 나무합판에 그쳤던 2차 방벽에 알루미늄박, 유리섬유, 폴리우레탄폼을 겹겹이 끼워 넣어 최적화하는데(MARK-III) 다시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단열 성능을 강화하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소재들이 쓰였고 실패로 이어졌다.
첫 운항에서 문제가 확인된 뒤 가스공사는 자회사 KCLT에 KC-1 관련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화주(貨主)라는 입장을 강조하며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LNG 운송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운영선사인 SK해운에 2020년 4월 손배소를 제기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16년을 투자했고 향후 수십년의 투자가 더 필요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시장의 평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다른 대응이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박용 LNG화물창 기술이란
선박용 LNG화물창 기술이 육상용 LNG저장탱크 기술에 비해 더 어려운 이유는 바다의 물결을 따라 출렁이며 탱크를 때리는 수만톤(t)의 초저온 액체화물이 만들어내는 충격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액화 상태인 -162℃ 초저온에서 나오는 냉기를 단열재가 막지 못해 선체가 기준치 이하로 냉각될 경우, 선체에 쌓인 충격으로 배가 갑자기 두 동강 날 수도 있다. 금속은 일정한 온도 이하에서 충격이 쌓이면 예후 없이 갑자기 깨지는 현상인 취성파괴가 일어난다. 이 같은 정보가 부족했던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수온이 낮은 대서양 북부에서 활동하던 미국의 양산형 함선이 취성파괴로 자주 침몰하기도 했다.
보냉성능은 LNG선의 경제성과도 직결된다. 단열이 잘 될수록 기화율이 낮아지며 운송 과정에서 손실되는 LNG가 줄어든다. 따라서 화물창내 LNG의 자연 기화율(BOR, Boil-off Rate)은 화물창 기술 수준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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