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

김태훈 논설위원 2022. 9. 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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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중섭과 일본인 아내 이남덕(일본명 야마모토 마사코)의 첫 만남은 여느 청춘 남녀처럼 풋풋했다. 원산에서 일본에 유학 간 부잣집 아들 이중섭은 학교 후배 마사코에게 첫눈에 반했다. 웃음 많고 활달한 이중섭이었지만 그녀 앞에선 말문이 막혔다. 보다 못한 친구가 자기 생일이라 속여 두 사람을 초대한 뒤 둘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중섭은 연애 시절에도 소를 그렸다. 1940년 작 ‘소와 여인-정령1′에 여인과 그녀 몸에 머리를 기댄 소를 그려 넣었다. 누가 봐도 사랑 고백이었다.

▶둘의 사랑은 이중섭이 일제의 징병을 피해 원산으로 돌아갔을 때 끝날 뻔했다. 그러나 이중섭이 보낸 ‘결혼이 급하다’는 편지를 받은 이남덕은 1945년 4월, 소를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살려고 관부 연락선을 오작교 삼아 바다를 건넜다. 전쟁 중 목숨 건 뱃길이었지만 “죽는 게 두렵지 않은 여행이었다”고 했다.

▶6·25 중이던 1952년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뒤 이중섭의 목적은 단 하나, 가족과의 재회였다. 그로부터 행려병자로 죽기까지 4년간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 읽는 이를 목메게 한다. ‘이 세상에 나만큼 아내를 사랑하고 미친 듯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글을 쓸 줄 알게 된 아들로부터 첫 편지를 받아 든 감격도 담았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도무지 잘 안 되는구먼요. 어떻게 쓰면 아이들이 기뻐하겠는지.’

▶희망과 절망은 손등과 손바닥이다. 뒤집히면 극단을 오간다. 하루를 국수 한 그릇으로 버티면서도 ‘작업에 몰두하면서 어떻게 하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 온통 그 생각뿐’이라던 이중섭은 1955년 서울과 대구 전시회가 잇달아 실패하자 허물어졌다. 일본에 갈 수 없게 됐다는 절망에 음식마저 끊었다. 아내가 보내온 편지도 열어보지 않았다.

▶2016년 6월 서울서 열린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이남덕 여사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 편지에서 ‘다시 태어나도 함께할 거예요, 우린 운명이니까’라 적었던 이 여사가 지난달 101세로 별세한 사실이 그제 알려졌다. 임종은 병원에서 맞았지만 살던 집은 이중섭이 편지 200여 통을 보낸 도쿄 세타가야 주소지 그대로였다. 이 여사는 이중섭과 7년을 함께했고 70년을 홀로 살았다. 그 세월을 버틴 사랑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이 여사는 ‘잘생겨서 좋아했다’던 이중섭을 만나러 마지막 오작교를 건넜을 것이다. 다리 끝에서 남편이 두 팔 벌려 아내를 맞이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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