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도 파업만으로 감옥에 보내진 않는다[파업 그 후, 손배폭탄이 남았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이혜리 기자 2022. 9. 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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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이런 나라 없다-왜 노란봉투법인가

어느 나라이건 노동자의 쟁의를 좋아할 사용자는 없다. 그러나 파업과 시위로 유명한 프랑스도, 대처리즘의 나라였던 영국도, 영업권 침해 이론의 원조 국가인 독일도 한국처럼 쟁의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들을 감옥에 보내고 손해배상 폭탄을 안기지 않는다.

2018년 프랑스 파리에서 파업 중인 프랑스의 철도노동자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국영철도 개혁안에 반발하고 있다. AP·로이터 연합뉴스

■프랑스 ‘파업은 개인의 권리’

프랑스는 파업권이 폭넓게 인정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사업장의 근로조건만 뿐만 아니라 공기업 민영화 등 국가정책이나 정리해고 등 경영상의 결정도 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목적이 ‘직업적 요구’라면 정당한 쟁의로 본다. 하청업체 노동자가 원청업체를 상대로 벌이는 쟁의도 정당한 쟁의에 포함된다.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원청에 대한 하청노동자의 쟁의, 정리해고 등 경영상 결정에 대한 쟁의는 인정하지 않는 한국과 대비된다.

노조가 주도한 쟁의만 인정하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노조가 주도하지 않아도, 노조 없이 해도 ‘직업적 요구’에 관한 것이면 정당한 쟁의로 본다. 파업권을 ‘개인의 권리’로 보기 때문이다. 파업권은 단체협약으로 제한할 수 없다. 오직 법률로만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파업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거의 없다.

다만 파업 참가를 강요하거나 타인의 조업을 방해하거나 타인의 업장을 점거하는 행위 등은 민·형사 책임을 진다. 불법감금, 폭력, 파괴, 훼손 및 손상, 타인을 위험에 처하는 행위도 형사처벌 대상이다. 이런 경우 사용자는 노동자를 징계·해고할 수 있고 민사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법원은 그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지우는 편이다. 파업을 ‘노조의 권리’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로 보기 때문이다.

1984년 영국 광부 파업 당시 경찰에 끌려가는 노조원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국 ‘손배소의 대상과 한계 제한’

영국은 노조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것도 노조 규모에 따라 상한액이 정해져 있다. 조합원 수가 5000명 미만이면 1000파운드(1500여만원)이다. 10만명 이상이라고 해도 25만파운드(4억여원)가 최대치다(2014년 기준). 최근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조를 상대로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과 대비된다.

‘생명과 신체에 해악을 끼치거나, 물적·인적 재산의 파괴와 심각한 손상을 유발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 벌인 쟁의인 경우에만 파업 참가자들을 형사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형사처벌된 경우는 거의 없다. 대처 총리 때 탄광노동자들이 형사처벌되기는 했지만 ‘경찰들을 방해하고, 공공도로를 막는 등의 공공질서 침해’가 주된 이유였다.

영국도 한국처럼 정당한 쟁의의 요건이 까다롭다. 민영화나 정리해고 등은 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특히 쟁의에 돌입하는 절차가 무척 까다롭다. 파업 찬반 투표 실시 전과 후, 쟁의 시작 전 사측과 조합원들에게 보고해야 한다. 각 단계마다 보고할 수많은 세부 내용과 절차가 법에 규정돼 있다. 사측이 이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를 문제삼아 쟁의 금지명령을 청구하면 법원은 대부분 인용한다. 영국의 노조는 대체로 법원의 금지명령을 따른다. 따르지 않으면 법정 모독죄로 민·형사상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2020년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에서 독일 연방노동사회부 주최로 열린 후베르투스 하일 연방노동부 장관과의 대화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독일 ‘이중적 노동구조’와 ‘동반자적 관계’

독일도 한국처럼 노조가 주도하지 않는 파업은 불법이다. 또 노사합의로 단체협약에 담은 사안에 대해서는 쟁의를 허용하지 않는다. 어기면 노조는 물론 노동자 개인도 배상 책임을 진다. 쟁의 과정의 폭행이나 협박 등에 대해선 강요죄나 공갈죄로 형사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

그러나 법적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노동자에 대한 형사고발이 사측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독일 브레멘대학의 볼프강 도이블러 교수는 2014년 9월26일 한국노동법학회와 서울시립대 법학연구소가 ‘쟁의행위와 책임’이란 주제로 연 국제학술대회에서 “근로자대표위원 또는 일반 근로자가 ‘폭력배의 두목’과 같이 교도소에 보내진다면 그들 사이에는 커다란 연대감이 형성되고 사용자 및 법원에 대한 비난이 신문과 텔레비전에 등장할 것”이라며 “이는 독일 노사관계의 사회적 동반자관계를 교란시킬 것“이라고 했다.

사측은 다른 수단으로 쟁의를 견제한다. 독일은 사용자에게 대체근로자를 쓸 권리를 준다. 사측은 대체근로자를 투입해 조업 거부 효과를 무력화하거나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노동자에게 급여를 더주는 방법을 쓴다.

노조도 과격한 쟁의를 하지 않는 편이다. 쟁의는 정기총회나 플래시몹 행사의 형태를 띠곤 한다. 파업 지속 시간은 대개 몇 시간에 불과하다. 독일노조연합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3년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3%에 불과했다.

이는 독일 특유의 이중적 노동구조와 관계가 있다. 독일의 사업장에는 노동조합 말고도 근로자대표위원회가 있다. 이들이 근로조건이나 노동자들의 민원을 사측에 전달하고 협의한다. 노조는 단체협약을 맺는 게 주 임무다. 이런 구조가 쟁의행위 없이 많은 분쟁을 해결하는 셈이다.

■견제는 해도 와해시키진 않는다

다른 나라의 사용자들도 노조를 견제하고 쟁의를 제압하려 한다. 노동자들이 손해를 배상하거나 과격한 행위로 처벌받기도 한다. 때로는 직장도 잃는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손배폭탄’을 맞아 평생을 저당잡히지는 않는다. 노무제공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가지도 않는다. 노조법이 정한 절차와 요건을 다 따랐더라도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했고(전격성) 사측 손실이 클 경우(중대한 손해)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는 한국과 대비된다.

조경배 순천향대학교 법대 교수는 지난달 18일 ‘대우조선해양하청투쟁과 손해배상 가압류’ 문제에 관한 국회토론회에서 “오늘날 군인, 경찰 등 직무의 성격상 쟁의행위가 금지되는 특수 직역을 제외하고는 평화적인 쟁의수단인 파업 자체에 대해 형벌을 직접 적용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며 “파업이 노동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필요불가결하다는 점을 이미 보편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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