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23조원어치 팔았는데..존폐 갈림길 '지역화폐'
[편집자주] 지역화폐가 기로에 섰다. 지역화폐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사용이 크게 늘었지만, 최근 지자체가 사용 혜택을 크게 축소하고 있다. 정부가 지원을 줄이면서 생긴 재정 부담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특히 전통시장 상인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크다. 지역 경기 활성화를 위한 수단이었던 지역화폐, 효율적인 운용방안은 없는지 짚어본다.
# 서울에 사는 A씨는 거주 중인 자치구의 지역사랑상품권 판매 일정이 나오면, 휴대폰에 알람을 맞춰둔다. 판매 시작 시간 5분 전,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수시로 화면을 새로고침한다. 계좌에는 미리 상품권을 구매할 금액을 넣어뒀다. 상품권 판매 시각이 되면 재빨리 구매 버튼을 누르지만 접속자가 몰려 구매가 쉽지 않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상품권 구매에 성공한다.
이렇게 구매한 상품권은 집 근처 시장이나 작은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외식을 할 때 주로 사용한다. 자녀의 학원비를 결제할 때도 사용한다. 상품권은 7~1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한다. 상품권을 통해 소비하면 그만큼 절약하는 셈. 코로나19 사태 초반인 2020년에는 지역사랑상품권을 15%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고, 이벤트성으로 사용한 금액의 5%를 캐시백으로 돌려주기도 했단다. 지역사랑상품권을 늦게 알게 돼 총 20%의 혜택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들지만, 뒤늦게나마 ‘현명한 소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광역시는 최근 ‘동백전’의 1인당 충전 한도를 월 5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줄였다. 충전할 때 할인율도 10%에서 5%로 절반으로 낮췄다. 경남은 ‘경남사랑상품권’ 할인율을 10%에서 5%로 줄였다. 인천광역시의 ‘인천e음’은 캐시백 혜택이 당초 ‘한 달 50만원 한도 내 10%’였는데, 지난 7월부터 ‘한 달 30만원 한도 내 5%’로 줄었다. 광주광역시는 ‘광주상생카드’ 운영을 일시 중단했다. 대전광역시는 ‘온통대전’의 캐시백을 중단한 데 이어 지역화폐 자체를 없애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8년 지자체가 발행한 지역화폐에 대해 처음으로 재정 지원에 나섰다. 군산, 거제 등에 지역화폐 발행액의 10%가량을 국비로 지원했다. 조선업 침체 등으로 경제적 피해가 큰 지역의 소상공인들을 지원한다는 취지였다. 지원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됐고, 지원액도 커졌다.
지역 소비의 역외 유출 차단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인접한 다른 지자체의 지역화폐 발행 경쟁을 유발할 뿐 지역 내 소비에 그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 원래 할 소비를 조금 더 저렴하게 했을 뿐, 다시 말해 ‘보조금의 효과’로 소상공인의 매출이 증가한 것 외의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결론이다.
지역화폐 발행에 따른 소상공인의 지원 효과가 일부 업종에 편중돼 전체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당초 지역화폐는 자금의 외부 유출을 방지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소상공인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고안됐다. 초기 지역화폐의 주요 무대는 재래시장이었다. 재래시장을 살려 소상공인에게 도움을 주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자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화폐 활성화를 명목으로 사용처가 학원, 커피숍, 슈퍼마켓, 음식점 등으로 늘어났다.
8월 23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통인시장을 방문했다. 절기상 처서(處暑)를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이자 시장도 추석을 맞이할 채비에 바빴다. 통인시장에서 40년 넘게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처음 지역화폐를 발행했을 때는 서울사랑상품권을 쓰는 사람이 많았다”며 “시간이 지나니까 이곳에서는 별로 쓰지 않는다. 마트나 다른 상점에서도 쓸 수 있다고 하니 거기서 많이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옆집 채소가게 점주도 “그건 맞는 말”이라고 거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지역화폐 쓰러 많이 왔는데 이제 쓰지 않는다”라며 “오늘 방문한 손님 중 한 명도 지역화폐를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지역화폐의 소비층이 주로 20~40대 젊은 층에 편중된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처음 지역화폐는 종이 상품권 형태로 출발했지만 카드와 모바일 형태로 진화해왔다. 종이 상품권은 소비자와 소상공인 모두 사용 방법에 익숙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은행 등 지정된 판매처에서 평일 일과시간에만 구입과 환전이 가능해 대부분 모바일로 대체됐다.
또 다른 상인은 “평소 지역화폐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추석이나 명절 때는 쓰러 많이 온다”며 “지역화폐 자체를 줄이는 게 아니라 사용처를 제한하든 다른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화폐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해외사례로 영국의 브리스톨 화폐와 일본의 아톰 사례가 있다. 영국 브리스톨시는 43만 명의 소규모 도시로 2012년 지역화폐인 브리스톨파운드(BP)를 발행했다. 지역 공동체 기업이 운영을 맡아 가맹점 유치 등 마케팅을 펼쳐 이 화폐로 브리스톨 시장과 직원은 급여 일부를 받고, 시민들은 지방세 등 세금까지 납부할 수 있다. 실물통화와 온라인, SNS를 이용한 모바일 결제 시스템까지 구축돼 전 세계적으로 지역화폐 유통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또 2004년 발행된 일본의 아톰통화는 도쿄 등 전국 5개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일본의 대표 장수 지역화폐다. 가맹점에서 진행하는 빈 병 회수나 에코백 사용 등 지역 환경문제 해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통화를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화폐 예산을 단순히 지원받아 운영하는 방식이 아닌 지역에서 스스로 자생할 수 있게 설계하는 모델이 나왔다. 경기 용인시는 지난 7월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과 ‘슬기로운 와이페이’ 사업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이 사업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지역화폐 플랫폼을 구축해 신용카드나 통신, 항공, 철도 등 여러 분야에서 적립된 마일리지 포인트를 지역화폐 ‘와이페이’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시는 지난해 1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2022년 디지털 공공서비스 혁신 프로젝트’ 공모에 선정돼 확보한 국비 18억원과 시 예산 2억원 등 20억원을 투입해 올해 말까지 시스템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번 시스템 개발 과정에서는 우리카드와 모빌리티 기업 MaaS의 고객 마일리지가 와이페이로 전환된다. 공유 차·킥보드·자전거 운용 업체인 MaaS에도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용인시민이 보유한 마일리지가 상당할 것으로 시는 예상했다. 시는 이들 두 기업 외에도 계속해서 마일리지 연계 기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최보현 지역화폐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지역화폐가 잘 안착되기 위해 많은 투자가 이뤄졌고 시민도 이제 막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지금 지원금을 줄이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화폐를 잘 운영하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며 “지역에서 잘 사용할 수 있게 주민과 같이 고민하면 더 좋은 정책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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