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名士의 건강법> "재물 좇으면 건강 잃고 命 짧아져..매일 2시간 규칙적으로 운동"

박현수 기자 2022. 9. 1. 08:5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송정숙 전 보건사회부 장관이 새 보금자리인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삼성노블카운티’에서 산책을 하던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송정숙 전 보건사회부 장관이 ‘삼성노블카운티’에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자전거 타기를 하고 있다. 송전 장관은 매일 2시간씩 운동한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송정숙 전 보건사회부 장관이 ‘삼성노블카운티’에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러닝 머신을 이용해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그는 “끊으면 끝난다”며 중단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운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0세 시대 명사의 건강법 - 송정숙 전 보건사회부 장관

강남 아파트 팔고 실버타운 입주

판 집값 올랐어도 속상하지 않아

3년 동안 평안하게 잘 살았잖아요

건강에 ‘사회적 관계’ 유지 중요

기자 출신…관훈클럽 모임 꼭 참석

용인 = 글·사진 박현수 기자

“수명은 재물과 관계가 많아요. 재물을 좇으면 건강을 잃고 그만큼 명도 짧아져요.”

1993년 김영삼 정부 당시 초대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낸 송정숙(87) 전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의 건강법 제1 명제다. 그는 1983년부터 살았던 서울 서초구 서초동 아파트를 팔고, 2019년 11월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삼성노블카운티’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서초동 175㎡(53평) 아파트를 20억 원에 팔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이 많이 올라 지금 시세는 30억 원을 훌쩍 넘는다.

지난달 26일과 29일 두 차례 삼성노블카운티에서 송 전 장관을 만나 서초동 아파트를 지금쯤 팔고 왔더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속상하지 않은지 물었다. 그러자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때 이곳으로 오길 참 잘했어요. 지난 3년간 마음 편안하게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1983년에 7000만 원을 주고 사서 36년간 잘 살다 20억 원에 팔았으니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서 재물에 큰 욕심 없음이 진심으로 읽혔다.

청명산과 기흥호수공원에 둘러싸여 숲속에 자리한 호텔식 실버타운인 노블카운티는 문화·스포츠센터와 병원, 은행, 편의점 등 각종 커뮤니티 시설을 갖춰 안락한 노후생활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아 보였다. 전용면적 50㎡ 기준으로 보증금 4억 원에 2인 기준 월 생활비는 427만 원을 낸다. 1일 3식 식사는 물론이고, 청소·세탁 등 가사서비스와 정기 건강검진 등이 제공된다.

이곳에서의 일과가 궁금했다. 그는 5시쯤 기상해 피트니스센터에서 1시간 정도 자전거 타기와 러닝머신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50대부터 수영을 시작해 30년 넘게 했는데, 한창때는 자유형으로 30분 동안 쉬지 않고 했어요. 요즘은 하지 않고 있는데 다시 시작하려고 해요. 8시 아침 식사 후 주로 오전에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고 12시 30분 오찬 후 다시 1시간 정도 운동해서 매일 2시간은 빠짐없이 규칙적으로 하지요. 센터 안에서 내가 운동을 제일 열심히 한다고 해요. 한번 하기로 마음먹으면 반드시 하고, 뭐든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그런가 봐요.”

골프도 50대부터 20년 넘게 즐겼지만, 지금은 여기 시설이 너무 좋아서 이곳에서의 운동으로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 끊으면 끝난다” 즉,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게 끝난다며 중단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건강 비결은 “재물을 탐내지 않고 ‘먹고살 일 난 것처럼’ 운동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런지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 나이에 비해 PC도 잘 활용한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스도쿠와 게임도 즐겨요. 원고 청탁이 오면 거절하지 않고 씁니다. 책 읽기와 글쓰기는 손을 놓지 않으려고 해요.” 치매 예방은 물론 정신건강을 위한 비결인 셈이다.

서울교육대 수학교육과 교수로 정년 퇴임한 부군 오병승(90) 명예교수가 거동이 불편해 건사하는 것이 힘들 때도 있지만, 함께 살아서 좋다고 했다. “부부는 한쪽이 몸져누워 있더라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가장 완벽한 이웃’”이라고 했다. “남편 간병인으로 내가 건강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건강 유지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모든 생활이 카운티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외부에 나갈 일이 없으나 언론인들의 연구·친목 단체인 관훈클럽 모임이나 각종 행사 참석, 지인들과 식사 약속을 위해 주 1~2회 정도 서울 나들이를 한다. 자가운전을 해 다녀올 만큼 건강하다. 건강한 삶을 위해 사회적 관계를 중요시한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외부 행사와 모임이 10분의 1로 줄어들어 많이 아쉽다고 했다. 특히 “관훈클럽은 각박하지 않고 넉넉하게 운영하고 있어 언론인 선후배들을 만나 정을 나누기에 더없이 좋아요. 그래서 관훈클럽에서 가는 여행은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고 말했다.

그는 37년 경력의 신문기자 출신이다. 1962년 한국일보에 입사, 문화부 차장으로 재직 중 1970년 서울신문으로 스카우트됐다. 여성 부장이 드물 무렵 1972년 문화부장을 맡아 10년 가까이 최장수 부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신문사 간 연재소설 인기가 치열할 당시 담배 검역사로 일하던 무명 소설가 김주영을 발탁, 그 유명한 ‘객주(客主)’를 연재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문학계에 김주영이란 스타 작가를 탄생시킨 순간이었다. 이후 논설위원 재직 중 보사부 장관에 발탁됐고, 퇴임 후 서울신문으로 돌아와 논설 고문을 지냈다.

송 전 장관은 환경운동에도 앞장섰다. 서울 우면산이 지금처럼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은 그의 각별한 환경운동 덕분이다. 2003년 강남 개발 붐을 타고 우면산이 마구잡이로 훼손되자 산을 지키기 위해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이끌었다. 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과 문화자산의 훼손을 막기 위해 활동한 시민 환경운동이다. 그 후 발족한 재단법인 ‘우면산 내셔널트러스트’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또 비영리 특수법인 ‘자연환경 국민신탁’ 설립위원으로 참여해 충남 연기군에 있는 시댁의 선산 7933㎡를 부군과 상의 끝에 국민신탁에 소유권을 넘긴 것도 잘한 결정이라고 했다.

■송정숙 전 보건사회부 장관이 걸어온 길

송 전 장관은 1936년 대전에서 출생했다.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2년 수료하고, 건국대 국문학과와 성균관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1년 서울일일신문 문화부 기자로 언론계에 첫 발을 디뎠다. 1962년 한국일보로 옮겨 ‘소년 한국일보’와 창간지인 ‘주간한국’ 기자로 활약했다. 당시 주간한국은 언론사 주간지 시대를 처음 열었다. 너무 많이 발행해 당시 장기영 회장이 “윤전기 고장 난다”며 “그만 찍어라”고 할 정도로 인기였다. 이에 힘입어 서울신문에서 ‘선데이서울’, 중앙일보에서 ‘주간중앙’을 창간했다. 이어 한국일보가 ‘주간여성’을 창간하면서 주간여성 기자와 문화부 차장으로 재직 중 1970년 서울신문으로 옮겨 문화부장과 논설위원, 논설 고문을 지냈다.

1981년 논설위원으로 있으면서도 방송심의위원, 공연윤리심의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사정자문위원회 사정자문위원, 공연윤리위원회 위원,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또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제4 심의위원장, 건국대 관선이사,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고문 등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지난 1993년 김영삼 정부 초대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이후 재단법인 ‘우면산 내셔널트러스트’ 초대 이사장과 ‘자연환경 국민신탁’ 설립위원으로 봉사했다.

소설가로도 활동했다. 1963년 현대문학을 통해 단편 ‘사생아’로 등단한 이후 1969년 ‘개고둥’을 출간했다. 이밖에 ‘천재는 엄마가 만든다’(전예원, 1979년), ‘시대의 초상’(동아출판사, 1993년), ‘큰 나무 작은 나무’(동아출판사, 1993년)를 펴냈다. 1972년 한국신문상, 1994년 청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하나뿐인 아들은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동양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