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고르바초프 유족에 조전 "세계 화합에 헌신한 지도자"

김민수 기자 2022. 9. 1.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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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망한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대해 국가 간 관계를 개선하는 데 헌신한 선견지명이 있었던 정치가라며 애도했다.

31일(현지시간) 바티칸에 따르면 교황은 고르바초프의 딸인 이리나에게 조전을 보내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조국을 위한 진보뿐만 아니라 민족간의 화합과 우애에 대한 선견지명 한 헌신"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지난 30일 사망한 고르바초프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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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 생전 바티칸과 수교 맺는 등 인연 깊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9일(현지시간) 추기경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08.29/뉴스1 ⓒ 로이터=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망한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대해 국가 간 관계를 개선하는 데 헌신한 선견지명이 있었던 정치가라며 애도했다.

31일(현지시간) 바티칸에 따르면 교황은 고르바초프의 딸인 이리나에게 조전을 보내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조국을 위한 진보뿐만 아니라 민족간의 화합과 우애에 대한 선견지명 한 헌신"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지난 30일 사망한 고르바초프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1989년 12월1일 바티칸을 방문해 당시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와 회담했다.

당시 두 사람은 소련에 더 광범위한 종교의 자유 보장과 가톨릭·정교회 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을 공유했다.

고르바초프는 이후 바티칸과 외교 사절을 교환했다. 그러나 정식 외교관계는 정교회 측의 반발로 수립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2009년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바티칸과 논의하여 전면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고르바초프는 요한 바오로 2세와 만난 이듬해 1990년에는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500만 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회가 합법화되기도 했다.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하자 고르바초프는 "지구 상에서 최고의 인본주의자"라며 애도했다.

1990년 11월 바티칸에서 고르바초프가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박형기 기자

kxmxs41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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