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美투자 부담 10조원 늘어났다, 기업들 환율 비상

신은진 기자 2022. 9. 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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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그룹 700억달러, 연초보다 환율 올라 금액 눈덩이

원·달러 환율이 1350원을 넘나들면서 대대적인 대미 투자를 발표했던 국내 주요 그룹들이 비상이 걸렸다. 한화로 환산한 투자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말 최태원 회장이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나 220억달러(약 29조5000억원) 신규 투자를 발표한 SK그룹의 경우 불과 한 달 사이에 우리 돈으로 1조원 가까이 부담이 늘어났다. 착공을 앞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도 비용 부담이 8개월 새 3조원 가까이 늘었다. 삼성전자는 이 공장 건립에 170억달러를 투자한다.

삼성과 SK를 포함한 국내 4대 그룹이 최근 밝힌 대미(對美) 투자 금액은 700억달러(약 94조원). 연초 기준으로는 84조원 수준이었는데, 몇 개월 사이에 10조원이 늘어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당장 급하지 않은 미국 투자는 집행 시기를 환율이 떨어질 때까지 최대한 늦추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투자 비용 상승을 이유로 미국 애리조나에 1조7000억원을 들여 배터리 단독 공장을 짓기로 한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적정 환율 1200원인데” 달러 고공 행진에 기업들 비상… 4대 그룹 미국 투자도 10조원 늘어

지난 연말, 국내 A항공사가 올해 경영 계획을 세울 때 예상했던 환율은 달러당 1150원. 그러나 지금은 환율이 이보다 200원 이상 올라, 앉은 자리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 항공 산업은 거액의 항공기 임차 비용과 항공유를 달러로 결제해야 하기 때문에 고환율에 가장 피해를 보는 업종이다. 대한항공은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350억원의 손실이, 아시아나항공은 284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이들 회사는 지난 2분기 각각 2051억원, 2747억원의 환손실을 입었다고 밝혔다.

철광석·석탄 등 원재료를 수입하는 철강 업계도 환율 급등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철강 제품 수출 비중이 높은 포스코·현대제철은 제품 수출로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을 상쇄하고 있지만, 내수 비중이 높은 다른 철강 업체들은 수익성 악화를 걱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고환율 수혜 업종으로 꼽혔던 화학 기업들도 올 들어 경기 위축으로 제품 수요가 급감하며 가격이 내려가자 환율 효과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한 업체 관계자는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원재료는 오르는데 정작 제품 수요는 줄어들면서 글로벌 업체들마다 가동률이 뚝 떨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같은 업종에서도 수출 비중에 따라 희비 엇갈려… 반도체·자동차·조선업 등은 수혜

반면 수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반도체·자동차·조선업 등은 환율 상승이 호재다. 지난 2분기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삼성전자는 1조3000억원, SK하이닉스는 3000억~4000억원의 영업이익이 늘어난 것으로 추산됐다. 현대차도 환율 효과로 영업이익이 6410억원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업종에서도 수출 비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농심은 매출의 37%가 해외에서 나오지만 중국·미국에 현지 생산·판매 시스템을 구축한 탓에 환율 효과를 얻지 못하며 2분기 영업이익이 75% 급감했다. 반면 삼양식품은 수출이 급증하며 2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의 2배로 뛰었다. 업계 관계자는 “농심은 수출이 10% 수준에 그쳐 곡물 가격 등 원재료 가격 상승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지만, 수출이 70%에 달하는 삼양식품은 고스란히 환율 상승에 따른 수혜를 얻었다”고 했다.

선박 거래가 달러로 이뤄지는 조선 업계도 달러가 오르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업종으로 꼽힌다. 철강 후판 등 주요 원·부자재도 국내 조달이 대부분이라 한번 들어온 달러가 해외로 빠져나갈 일도 많지 않다. 다만 업계에서는 “업체별로 70~100% 정도 헤지(위험 회피)를 하고 있어 달러화 상승이 고스란히 이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며 “또 환율 상승세가 계속되면 원자재 수입 가격이 오르면서 각종 자재 가격도 오를 수 있다는 점은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수출 제조 기업 150사를 설문조사한 결과, 올 하반기 우리 기업들이 수출 채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적정 원·달러 환율은 1206.1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고환율이 지속될 경우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수출 채산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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