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장애인도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답니다

한겨레 2022. 8. 3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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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시간이 흘러 이 일도 계약이 종료됐다. 또다시 장애인 재택근무 회사를 찾아 이력서를 넣어야 했다. 일자리가 많지 않기에 대학 졸업 뒤 면접 봤다 떨어졌던 회사에 다시 이력서를 내기도 했다. '나 같은 장애인은 5년 전 이력서를 냈던 회사에 다시 이력서를 낼 수밖에 없는 사실을 이들은 알까'란 생각을 하며.
게티이미지뱅크

최아라(가명) | 장애인 재택근무 사원

나는 서른두살, 뇌성마비 장애 여성이다. 지금은 한 대기업 계열사에서 재택근무로 일하고 있다. 내 출근길은 남들과 다르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침대 옆에 세워놓은 의자에 앉아야 한다.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가로로 엎드려 의자 발판을 지탱해 주는 행어브래킷에 다리를 걸친 뒤 몸을 옮긴다. 다른 사람이 손을 잡아서 몸을 일으켜주면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그다음 발판에 발을 올려주면 다리로 버티며 반대쪽 팔걸이를 잡아 엉덩이를 조금씩 움직여 <a>의자에 앉으면 뒷바퀴 쪽에 있는 브레이크를 풀고 노트북이 있는 책상으로 가야 한다.

엄마는 임신 7개월에 나를 낳았다. 갑작스러운 진통으로 병원에 도착했을 때 배 속 태아가 거꾸로 있는 상태였다고 했다. 산모와 태아 모두 위험한 상황이었고, 나는 1.25㎏ 미숙아로 태어났다. 첫돌이 지난 뒤에도 목을 가누거나 혼자 힘으로 서지 못했고, 두살이 됐을 무렵 병원에서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다. 걷지 못하고, 근육이 긴장되는 강직 증상 때문에 생활이 자유롭지 못할 뿐 아니라 지적 발달도 여섯살 아이 지능에서 멈출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내 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병원에서 말한 것과 달리 비장애인과 비슷한 지적 능력을 갖췄고 공부도 할 수 있었다.

스물두살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마음속에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학교 구석구석을 다니고 싶었지만 <a>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없는 건물에서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강의실과 학생식당을 이용하기도 힘들었다. 장애인화장실은 온갖 청소도구들 때문에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 ‘나는 청소도구들보다 못한 건가 ?’ 대학 4년 동안 깊은 회의에 빠져 꿈을 잊고 방황했다 .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 2학기부터 경제적 자립을 위해 장애인을 채용한다는 여러 회사에 면접을 봤지만, 뇌성마비 장애 여성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중증장애인을 우대하고 재택근무를 한다’는 모집공고 문구를 보고 면접장을 찾았다가, 휠체어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며 손도 자유롭게 쓰는 ‘경쟁자’들을 보며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최소한의 자신감마저 사라져갔다.

“안녕……하세……요, ○○회사에 지원한 최아라…입니다. 제가 이 회사에 지원한 이유는 저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수 있는 회사라는 점입니다.”

“많이 긴장하셨나 봐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면접관들은 친절하게 대했지만, 질문 대부분은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장애 정도와 출근 거리에 관한 것뿐이었다. 면접에서 떨어질수록 자존감은 곤두박질쳤고, 힘겹게 대학을 졸업하기는 했지만 무슨 일을 하며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어렵사리 들어간 첫 직장에서는 에스엔에스(SNS) 게시물을 공유해 회사를 홍보하는 업무를 했다.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한시까지, 하루 네시간씩 주 20시간 일하고 받는 월급은 그때나 지금이나 늘 최저 시급 언저리다. 불편하고 자유롭지 못한 손으로 일하며 돈을 벌고 있다는 게 위안이 되면서도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팀원들과 만나고 부대끼며 일하는 게 아니라 관리자와 화상통화로만 소통하기에 답답했고, 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와 효과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회사에서 공지하거나 통보할 내용은 꼭 채용컨설팅 회사를 경유했고, 필요한 서류를 요청해도 빠르면 하루, 길게는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장애인고용부담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만 필요한 <a>존재가 아닌지 자괴감이 밀려왔다.

2019년 3월 계약이 종료됐고, 채용컨설팅 회사에서는 최저 시급이 올라 장애인 근로자 채용을 부담스러워한다며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다음 구한 일자리는 서비스 전문기업에서 직접 쓴 글을 에스엔에스에 올리며 회사를 홍보하는 일이었다. 여전히 2년 계약직이었지만, 단순히 글을 공유하던 전 직장보다는 보람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이 일도 계약이 종료됐다. 또다시 장애인 재택근무 회사를 찾아 이력서를 넣어야 했다. 일자리가 많지 않기에 대학 졸업 뒤 면접 봤다 떨어졌던 회사에 다시 이력서를 내기도 했다. ‘나 같은 장애인은 5년 전 이력서를 냈던 회사에 다시 이력서를 낼 수밖에 없는 사실을 이들은 알까’란 생각을 하며.

<a>지금 직장에서는 엑셀 파일에 검색한 기사 제목과 인터넷 주소와 출처를 기록하는 단순 업무를 하고 있다. 1년 계약해 일했고, 얼마 전 1년 재계약이 됐다. 그렇지만 주어진 1년이 지나면 또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막막한 생각이 든다. 정부나 기업들이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힌 기사를 접할 때마다 묻고 싶어진다. ‘그래서 장애인의 안정적 일자리는요?'라고. 언제쯤이면 이 지독한 고용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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