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0만명이 버린 쓰레기 재활용, 115명이면 충분..美 뉴욕의 비결[르포]
[편집자주] 대한민국에선 매일 50만톤의 쓰레기가 쏟아진다. 국민 한 명이 1년 간 버리는 페트병만 100개에 달한다. 이런 걸 새로 만들 때마다 굴뚝은 탄소를 뿜어낸다. 폐기물 재활용 없이 '탄소중립'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오염 없는 세상, 저탄소의 미래를 향한 'K-순환경제'의 길을 찾아본다.
"처리량 측면에서 북미 최대 수준입니다. 재활용 쓰레기 선별시설의 플래그십(Flagship·지휘선)이라 자부합니다."
캐라 나폴리타노 심스시립재활용(Sims Municipal Recycling·SMR) 교육·지원 코디네이터는 뉴욕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이 내다 보이는 브루클린 고와누스 운하 인근 11에이커(4만4500㎡) 면적에 자리잡은 '선셋파크 재활용시설(Material Recovery Facility·MRF)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선셋파크 MRF는 북미 현존 최대 재활용 쓰레기 선별장이자 860만 뉴요커들이 버린 모든 거주용(Residential·레지덴셜)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이다.
이 곳은 조만간 100조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전세계 폐기물 재활용 시장의 '천지 개벽' 현장이기도 하다. 친환경으로의 산업 혁신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대기업과 재활용 재료를 필요로 하는 글로벌 소비재 기업들이 앞다퉈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대규모 자본이다. 최첨단 기기들을 대거 도입, 시설을 자동·대형화했다. 선별장에 들어온 재활용 쓰레기는 '리버레이터'(Liberator)라 불리는 장비를 지나며 쓰레기가 담겼던 비닐이 해체돼 내용물을 드러낸다. 이후 '디스크 스크린'에서는 회전하는 금속 막대가 유리들을 깨트리는데 유리는 약 2.5인치 수준으로 분쇄·분리된다. 또 거대한 '드럼마그넷'(Drum magnet)은 철제류를 골라내고 16대의 광학선별기는 PET(페트), HDPE(고밀도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등 재질별로 플라스틱을 구분하는 것은 물론 HDPE는 유색과 무색으로도 구분한다.
나폴리타노 코디네이터는 "이 곳에 있는 자동화 기기들은 다른 사설 선별장에도 존재한다"면서도 "단 설치된 장비의 수가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많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한 대 25만달러에 이르는 광학선별기를 다른 선별장이 6~7대 쓴다면 이 곳은 16대를 뒀다. 플라스틱 제품을 더 세분화하고 정확히 분류하는데 도움을 준다. 선셋파크 MRF는 이밖에 선별을 위한 로봇도 4대 비치했다.
선셋파크 MRF는 1917년 호주에 설립된 고철 재활용 대기업 '심스'(Sims Limited) 계열인 '심스메탈'의 한 사업부, '심스시립재활용(SMR)'이 운영하는 시설이다. SMR이 속한 심스 그룹 전체 2022년(2021년 7월~2022년 6월) 매출액은 전년 대비 56.6% 늘어난 92억6440만달러(12조4282억원)다. 이 회사는 2022년 자본적 지출만 2억7620만달러에 달했다.
최근에는 미국 투자사 클로즈드 루프 파트너스(Closed Loop Partners·CLP)가 이끄는 투자자 컨소시엄이 심스메탈로부터 SMR 지분 약 50.5%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CLP는 순환경제에 중심을 맞춘 전문 투자회사로 지난해 말 기준 운용자산 규모가 4억달러(5400억원) 이상이며 60개 이상의 투자가 진행중이다. 이번 딜의 공식 인수가나 SMR의 매출 등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 이번 딜 규모는 4500만달러(604억원) 이상으로 추정한다. 컨소시엄에는 네슬레, 펩시코, 유니레버 등 다국적 기업들이 포함됐다.
선셋파크 MRF가 2013년 문을 열 당시 뉴욕시, SMR로부터 공장 부지 등을 합쳐 약 1억1000만달러(1471억원) 규모 투자를 받아 현재 모습을 갖췄다. 설립 10년이 채 안 돼 또 대규모 투자를 받아 새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타지아 스미스 CLP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캐피탈 파트너십 담당자는 지분 투자 배경에 대해 "네슬레, 펩시코 같은 회사들이 향후 재활용품으로 제품 포장을 한다고 했지만 사용할 수 있는 재활용 재료가 충분치 않다"며 "이번 투자를 통해 그들이 목표 달성을 할 수 있도록 우수한 품질의 재활용 재료 선별량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네슬레는 2025년까지 포장에서 새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비중을 3분의1로 줄인다고 밝혔고 펩시코는 유럽 시장에서 2030년까지 모든 과자 봉지에서 새 플라스틱 사용을 제한키로 선언했다. 새 플라스틱 원료를 대체할 재활용 재료를 구하는 것이 글로벌 대부분 소비자기업들의 지상 최대 과제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글로벌 폐기물 재활용 서비스 시장 규모는 2021년 577억달러에서 2030년 880억달러(118조6900억원)로 연평균 4.8% 성장할 전망이다. 또 다른 조사업체 마켓츠앤마켓츠에 따르면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규모는 2021년 279억달러에서 2026년 435억달러로 연평균 9.3% 커질 전망이다. 이같은 업계 분위기에 힘입어 프랑스 베올리아, 독일 레몬디스 등 다국적 대기업들도 '재활용 클러스터' 구축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스미스 COO는 "어느 선별장에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재활용 재료간 품질 차이가 크고 이에 따라 값도 제각각"이라며 "선셋파크 MRF의 재활용 재료들은 최상의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덕에 양도 많고 품질이 균일하게 좋아 향후 재활용 재료 표준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선셋파크에서 나오는 최종 재활용품 묶음의 순도는 95% 안팎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러브콜이 몰릴 수밖에 없다. 이런 시설이 북미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탄소중립을 선언한 이 지역 기반 기업들은 원료 조달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스미스 COO는 선셋파크 MRF 같은 시설에 적극적인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따라서 중소기업 등으로 참여 기업에 제한을 둬선 안된다고 확신한다. 자동화·첨단화는 근로자들 안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녀는 "재활용품이 버진 플라스틱 같은 새 제품들과 경쟁하려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출 재활용 시장이 먼저 만들어져야 하고 그러려면 고객들이 사용하고 싶을 만큼 양과 질이 담보돼야 한다"며 "재활용 사업을 보조금에 의존하게끔 만들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CLP는 SMR 지분 인수 후 향후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그녀는 "CLP가 다양한 벤처 포트폴리오를 가진 만큼 새로운 재활용 선별 기술을 발굴하고 이를 재활용 선별 사업에 접목시키는 등 기술 개선에 매진할 것"이라며 "선셋파크 MRF와 같은 시설을 미국 전역에 확장시키는 한편 해외로도 진출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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