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야생화의 BTS, 보라색 금강초롱꽃

김민철 논설위원 2022. 8. 3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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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회>

지난 주말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에 있는 화악산에 간 것은 거의 전적으로 보라색 금강초롱꽃을 보기위해서였다. 금강초롱꽃은 꽃의 아름다움으로 보나 꽃에 얽힌 스토리를 보나, 아름다운 우리꽃 10개를 뽑는다면 꼭 들어가야할 꽃이다. 아마도 최상위권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금강초롱꽃을 ‘야생화의 방탄소년단(BTS)’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아닐 것이다. 보라색(퍼플)은 BTS를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금강초롱꽃은 경기도와 강원도 북부의 높은 산(해발 800m 이상)에서 볼 수 있는 우리나라 특산 식물이다. 초롱꽃과 비슷한 형태이고 금강산에서 처음으로 발견해 금강초롱꽃이란 이름이 붙었다. 높은 산 중에서도 정상 부근에서만 자라서 ‘알현’하려면 땀 좀 흘려야하는 꽃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수긍하겠지만, 색이면 색, 모양이면 모양 모두 환상적일만큼 예뻐서 땀 흘린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초롱꽃, 섬초롱꽃과 꽃 모양은 비슷하지만 신비로운 보라색은 어떤 꽃도 따라올 수 없을만큼 아름답다.

화악산 금강초롱꽃.

다른 야생화들은 대개 수목원에 가면 볼 수 있다. 그러나 금강초롱꽃은 웬만한 수목원에 가도 볼 수 없다. 이 꽃은 고산지대에서 살아 더위에 약하다. 그래서 해발이 낮은 지역에 심으면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잎이 말라 없어지고 줄기만 살아서 겨우 꽃을 피운다고 했다(이택주 한택식물원장). 그런 꽃이 제 색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화악산 금강초롱꽃 무리.

이맘때 꽃쟁이들이 화악산에 몰리는 것은 이 산 금강초롱꽃을 국내 제일로 치기 때문이다. 화악산 금강초롱 색이 가장 선명하고 곱다는 것이다. 화악산 금강초롱꽃이 ‘미스 금강초롱꽃’인 셈이다. 그래서 야생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금강초롱꽃을 보러 화악산에 오르는 것이다. 요즘엔 화천 광덕산 금강초롱꽃 사진도 많이 올라오고 있다. 드물게 흰금강초롱꽃도 있는데, 이 꽃을 보기위해 초가을 오대산 상원사에서 북대 코스를 땀 흘리며 오른 기억이 있다.

올해 화악산 금강초롱꽃은 작황이 좋지 않았다. 전에는 임도만 따라 가도 금강초롱꽃이 밭을 이룬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엔 ‘이러다 못보는 것 아닐까’ 초조할 정도로 드물었다. 금강초롱꽃이 올 초여름 역대급 무더위에 견디지 못하고 말라버린 것일까. 아래 영상은 가까스로 만난 금강초롱꽃을 담은 것이다.

금강초롱꽃이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금강초롱꽃의 학명은 ‘Hanabusaya asiatica Nakai’인데, 속명 ‘Hanabusaya’는 일제의 초대 조선 공사 이름에서 온 것이다. 이 꽃의 학명을 등록한 학자 나카이가 한반도 식물을 조사할 때 연구비와 인력을 지원한 사람이다. 예쁜 우리 특산식물에 일제 식민지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금강초롱꽃을 하나부사의 한자 이름대로 화방초(花房草)라고 부르기도 했다.

화악산에 금강초롱꽃을 보러 가면 꼭 봐야할 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닻꽃이다. 이맘때 화악산에 가면 가는 줄기에 주렁주렁 날카로운 갈고리를 4개씩 매단 꽃을 볼 수 있다. 꽃은 아래쪽이 4갈래로 길게 갈라지는데, 영낙없이 배가 항구에 정박할 때 고정시키는 닻 모양이다. 그래서 꽃 이름이 닻꽃이다. 네 갈고리 같은 형태를 ‘거(距·꽃뿔)’라고 부르는데 속이 비어 있거나 꿀샘이 들어 있다.

화악산 닻꽃.

꽃이 처음에는 연한 녹색이 도는 노란색으로 피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붉은 빛이 띤다. 닻꽃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귀한 꽃이다. 현재 알려진 국내의 자생지는 1400m 이상의 고산지대인 화악산 등 10곳 미만이다. 닻을 닮은 꽃이 왜 바닷가 대신 고산으로 올라갔을까.

몇 년전 유전자 분석 결과, 국내 자생 닻꽃은 중국·일본 등에서 자라는 닻꽃과 좀 다른 것으로 밝혀져 이름이 ‘참닻꽃(Halenia coreana)’으로 바뀌었다. 참닻꽃은 닻꽃보다 거가 더 길고 좁으며 안으로 굽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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