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담장' 덕분에 올해도 롯데가 '롯데'했다
● ‘성단장’이 문제인가 ‘성담장’이 문제인가
● 머니볼? 돈은 덜 썼으되 여전히 못하는 팀
● 프로세스 강조하더니 ‘묘수’만 찾아
● ‘전력의 최소화’ 성민규 단장 운명은?
롯데 자이언츠 성민규(40) 단장은 올 시즌을 앞두고 사직구장 리모델링을 진행한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롯데는 석 달에 걸친 공사를 통해 △홈플레이트를 포수 뒤쪽으로 2.884m 옮겨 외야 담장까지 거리를 늘이고 △외야 담장 높이를 4.8m에서 6m로 높였습니다.
성 단장은 유튜브 채널 '야구2부장'에 출연해 "우리 투수들은 플라이볼 유도가 많다. 반면 타격 면에서는 홈런보다 2루타 위주의 팀이다. 외야 수비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장을) 더 넓힐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면서 "단타만으로 쉽게 경기를 이길 수 없는 것은 맞지만 단 1승이라도 추가하기 위해서는 72경기가 이뤄지는 야구장을 넓게 한다는 것이 저희에게는 전력에 도움이 된다고 분석을 하고 판단을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틀린 이야기도 아닙니다. 2019~2021년 3년 동안 롯데 타자가 사직구장에서 때려낸 홈런은 160개로 롯데 투수가 맞은 홈런 214개보다 54개가 적었습니다. 평균적으로 1년에 홈런 18개가 '적자'였던 셈입니다. 그러니 '어차피 우리도 못 때리는 거 너희도 못 때리게 만들겠다'는 접근법이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 단장 기대와 달리 '성담장' 효과는 '전력의 최소화'로 나타났습니다. 4년 연속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한 롯데가 올해도 가을 야구와 멀어진 제일 큰 이유가 바로 성담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롯데가 올해도 실패한 이유를 찾기에 (성 단장이 아니라) 성담장이 정말 좋은 대상이 되고 말았다는 게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일단 성담장 효과는 확실합니다. 지난해 사직구장에서 나온 홈런은 총 123개(경기당 평균 1.70개)였습니다. 프로야구 팀이 안방으로 쓰는 9개 구장 가운데 딱 중간인 5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올해는 7월 말 현재 경기당 평균 1개로 사직은 9개 구장 가운데 홈런이 가장 안 나오는 구장이 됐습니다.홈런 적자 폭도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사직에서 나온 홈런 47개 가운데 롯데 타자가 22개를 때렸고, 롯데 투수가 25개를 맞았습니다. 현재 페이스를 유지하면 시즌이 끝날 때는 롯데 타자가 34개를 때리고 롯데 투수가 38개를 맞습니다. 4개 적자로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겁니다. 롯데는 투수진이 안방에서 허용한 9이닝당 홈런 개수(0.52개)가 가장 적은 팀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홈런 적자는 줄었는데 실점 적자는 더 늘었다는 점입니다. 롯데는 지난해 사직에서 380점을 올리는 동안 435점을 내줬습니다. 상대 팀보다 14.5% 실점이 많았던 겁니다. 올해는 175득점, 259실점으로 48% 차이까지 벌어졌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23실점 경기(7월 24일 KIA전)를 제외해도 34.9% 차이입니다.
홈런을 많지 맞지 않도록 구장 구조를 바꾸는 건 결국 점수를 적게 내주는 방향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롯데는 홈런을 적게 맞고 있는데도 기대만큼 실점을 줄이지 못한 겁니다. 이유는 간단명료합니다. 롯데 투수진이 홈런과 무관한 방법으로 점수를 내주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롯데 투수진 GO/FO는 사직에서 1.48로 더욱 오릅니다. 특히 박세웅(3.24), 이인복(2.11)은 사직에서 '땅볼 투수' 그 자체입니다. 땅볼 투수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존재는 발 빠르게 드넓은 외야를 커버하는 외야수가 아니라 베이스 사이로 빠지는 타구를 어떻게든 막아주는 유격수입니다.
성담장이 롯데 발목 잡았다
그 결과 롯데는 범타처리율(DER)에서 9위 한화 이글스(0.667)와 비교해도 적지 않은 차이가 나는 최하위(0.647)로 7월을 마감했습니다. 만약 롯데 수비력이 한화 정도만 됐어도 7월 말까지 아웃 카운트 49개를 더 잡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거의 두 경기분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이 기록이 더욱 안타까운 건 롯데 투수진이 안방에서 삼진을 9이닝당 9.28개 잡아냈기 때문입니다. 안방 경기에서 투수진이 삼진을 가장 잘 잡는 팀이 바로 롯데였습니다. 요컨대 '탈삼진+땅볼 유도' 능력을 갖춘 투수진이 버티고 있는 롯데가 '뜬공으로 맞혀 잡는 투수'에게 유리하도록 안방 구장 환경을 바꾼 겁니다.
그러니 롯데가 방문 경기에서는 23승 1무 23패로 승률 0.500을 지켜내면서도 안방에서는 34승 4무 43패(승률 0.442)에 그친 건 우연이 아닙니다. 5월 11일만 해도 18승 1무 14패(승률 0.563)로 4위였던 롯데는 이후 안방 경기에서 9연패를 기록하면서 미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신동아' 5월호 '베이스볼 비키니'에 쓴 것처럼 5월은 프로야구 순위가 결정되는 달입니다. 성담장이 올 시즌 롯데 발목을 잡은 겁니다.
호구 되는 곳이 급소
전력 극대화를 이유로 안방구장을 리모델링한 건 올해 롯데가 물론 처음은 아닙니다. 1989년 태평양 돌핀스처럼 높이 7.5m 담장을 설치해 대성공을 거둔 팀도 있고, 2009년 LG처럼 외야 담장을 앞으로 4m씩 당겼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한 팀도 있습니다. 대전구장도 2014년 외야 담장을 뒤로 밀면서 '탁구장' 이미지를 완전히 떨쳐냈지만 팀 성적에 도움이 됐는지는 미지수입니다.그리고 롯데가 시범경기에서 우승하고, 봄에 잘나가다가, DTD(Down Team is Down·‘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뜻인 야구팬 은어) 모드를 시전한 것도 올해가 처음은 아닙니다. 이대호(40)는 잘하는데 팀이 못하는 것도 올해가 처음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아주 전형적으로 '롯데가 롯데 한' 시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도 저것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면 성 단장이 계속 롯데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할 이유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롯데는 2019년 성 단장을 선임하면서 "반복된 성적 부진과 기대 이하의 경기력으로 팬들 앞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너무나도 죄송하다"고 사과한 후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으며 분명한 방향성과 전략에 맞춰 팀을 빠른 속도로 혁신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사과문이 올해 나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물론 성 단장 재임 기간 달라진 것도 있습니다. 2019년 롯데는 신인과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 연봉 총액으로 101억8300만 원을 쓰던 구단이었습니다. 그러고 48승(3무 93패)을 거뒀으니까 1승에 2억1215만 원 정도를 쓴 셈입니다. 올해 연봉 총액은 58억9800만 원으로 줄었습니다. 7월 말 현재 기준으로 계산하면 올해는 1승에 9872만 원입니다. 성 단장 이전에 롯데는 돈을 많이 쓰고도 못하는 팀이었는데 이제는 돈을 적게 쓰고 못하는 팀이 됐습니다.
묘수 세 번 두면 진다
성 단장이 정수보다 묘수에 천착하는 데는 본인 재주를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분명 작용했을 겁니다. 그리고 묘수가 통했다면 성 단장 본인은 물론 롯데 팀에도 분명 도움이 됐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롯데는 갈수록 "묘수 세 번 두면 진다"는 바둑 속담이 떠오르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7월 말에 쓰고 있는 이 글이 세상에 나갈 때도 성 단장은 여전히 성 단장일까요? 아니면 성 전 단장일까요?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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