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글로벌 전기차 호구
서울의 한 시내버스 회사는 작년 중국 BYD의 전기버스 10여 대를 도입했다. 이 회사는 현대차·에디슨모터스 등 국내 업체가 만든 전기버스도 운영하고 있지만, 중국산 전기버스를 더 늘릴 계획이다. 이 회사 대표는 “중국산 전기버스는 배터리 용량이 커서 같은 가격의 국산 전기차보다 주행거리가 80~90㎞ 더 길다”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전기버스 시장에서 중국산 전기버스는 436대(대형 385대, 중형 51대)가 팔려 전체 판매량의 48.7%를 차지했다. 중국산 전기버스가 국내 시장을 휩쓰는 데는 가성비 외에도 차별 없는 한국의 보조금 제도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형 전기버스에 약 2억원의 보조금이 지급되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상반기 약 790억원의 보조금이 중국 전기버스에 지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중국은 ‘신에너지차 권장 목록’ 같은 제도를 통해 사실상 중국산 배터리·부품을 사용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중국은 보조금 차별을 지렛대 삼아 자국 전기버스 업체를 집중 지원했고, 기술력이 쌓인 중국 전기버스는 일본·미국·유럽으로도 진출하고 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으로 한국산 전기차를 보조금에서 배제한 가운데, 수입 전기차에 차별 없이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한국도 제도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에 이어 미국까지 자국 전기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조금을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상황에서, 우리도 국내 산업 육성을 위해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산을 차별하는 국가에 대해선 ‘상호주의’를 적용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 美·中선 전기차 보조금 차별받으면서 국내선 계속 퍼줘… 국내 전기차 보조금 개편 목소리 거세
한국 시장에선 전기차 보조금에 관한 한 차별이 전혀 없다. 국산이나 외산이나 판매가격 5500만원 미만 100%, 5500만~8500만원 미만이면 50%를 똑같이 지급한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미국 전기차는 테슬라 400억원을 포함해 약 410억원의 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하반기부터 한국GM이 수입 판매하는 볼트EV·볼트EUV도 보조금을 받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1000억원 이상 보조금이 미국산 전기차에 지급될 전망이다.
한국이 올해 상반기 미국에 수출한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 포함) 5만대(10개 모델)는 모두 미국 정부 보조금 대상이었지만, 지난 16일부터 모두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미국에서 1만5000여 대가 판매된 아이오닉5의 경우, 대당 보조금은 최대 7500달러(약1000만원)였다.
중국산에 대한 보조금은 전기버스와 트럭을 합쳐 올 한 해 2000억원이 넘을 전망이다. 중국산 전기 상용차는 올 상반기 1351대가 팔렸는데, 작년 같은 기간(159대)보다 7배나 증가했다. 반면 중국은 한국 배터리 업체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배터리조차 차별해 한국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는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지어놓고도 2년여간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 중국은 2019년 규제를 일부 완화해 한국 배터리 탑재 전기차도 일부 보조금 대상에 넣고 있지만, 자국 전기차·배터리를 보호하는 기조는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환경부도 “내년 개편할 것”… 국내 산업 ‘기여도 지수’ 만들어야
유럽도 자국 자동차 산업에 유리하게 보조금 정책을 펴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은 BMW와 벤츠 등 자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에 보조금을 집중적으로 주고, 프랑스는 자국 생산 비중이 높은 소형 전기차에 보조금이 많이 가도록 한다.
최근 미국이 ‘인플레 감축법’을 시행하자 우리 환경부도 국내 보조금을 개편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환경부는 국내 전기차 충전·AS 인프라 구축 정도를 보조금 지급 기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업계는 인프라 기여뿐 아니라 국내 생산과 일자리 창출 규모까지 총체적으로 살펴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권은경 자동차산업협회 실장은 “미국이 활용하는 ‘부품 원산지 규정’을 적용해 한국산 부품을 많이 쓴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해야 국내 부품 산업이 살 수 있다”며 “국내에서 부가가치를 얼마나 창출했는지 ‘기여 지수’를 만드는 식으로, 영리한 보조금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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