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아니라는데..커지는 '공공기관 민영화' 논란
노동·시민단체 "민영화 신호탄"
“정부는 민영화에 대해서 검토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검토·추진할 계획이 없습니다.”(최상대 기획재정부 2차관)
‘공공기관 민영화 논란’이 윤석열 정부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논란은 공공기관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 기능과 자산을 민간에 매각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나온 이후 확산되고 있다. 진영에 따라 진단과 주장이 엇갈린다. 야당과 노동·시민사회 단체는 ‘노골적인 민영화’라고 주장한다. 여당과 정부는 ‘민영화 프레임’을 꺼낸 것이라고 일축한다. 윤석열 정부는 민간 중심의 경제성장을 표방한다. 민영화 공방이 더 거세질 전망이다.
■공공기관 기능·자산 축소
기획재정부가 지난 7월 29일 발표한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에는 민간과 경합하거나 비핵심적인 기능은 규모를 축소하거나 민간에 이양하고, 필요하지 않은 자산 등은 매각하는 방안이 담겼다. 경상경비와 업무추진비 예산은 올 하반기부터 줄이고, 내년부터 조직·인력을 감축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비핵심 사업과 자산을 민간에 넘겨 몸집을 줄이는 방식으로 공공기관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박용석 민주노동연구원 비상임연구위원은 “지난 6월 21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 추진을 시사한 이후 나온 구체적인 방안이 혁신가이드라인”이라며 “혁신가이드라인의 취지는 명확하다. 민간(시장) 중심의 경제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기능을 최대한 축소하고,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전제하에 경상비와 복리후생비 등을 줄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노동·시민사회 단체는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이 민영화를 본격 추진하겠다는 신호탄이라고 주장한다. 민영화는 통상 공공기관의 기능(영역)을 민간에 넘기거나 경쟁 차원에서 민간의 참여를 확대하는 일련의 움직임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선 단순히 정부 소유 재산을 민간에 매각하는 방안도 포함할 수 있다.
혁신가이드라인이 나온 후 공공기관 노조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공기관 인력과 처우가 줄어들 것이란 불안이 깔려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론 전기, 가스, 수도, 항공·철도 등 독점적 지위를 가진 공공서비스와 자산이 민간 사업자에게 넘어갔을 때 특혜와 부정부패로 이어지고, 공공서비스 약화와 국민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 양대노총 공공부문 공동대책위는 8월 2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공공기관 민영화 저지 집회를 열고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 규탄과 공공부문 구조조정 저지, 민영화 반대, 공공성 강화 등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8월 30일 전국 공공기관 노조 대표자와 간부 1000여명이 모여 결의대회를 연 후 9월에 더 강력한 공동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등도 8월 23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가이드라인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하고 판단해도 쉽지 않은 사안을 불과 3주 정도의 시간을 주며 (기재부에) 제출하라 다그치는 바람에 지금 연구 현장은 적잖은 혼란에 빠졌다. 획일적인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을 공공연구기관에 강요한다면 과거의 패착을 되풀이하는 백해무익한 행태”라고 했다. 같은 날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조합원들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서비스 부실과 환자 의료비 증가 등을 우려하며 정부의 혁신가이드라인 폐기를 요구했다.
민영화 논란은 정치권으로 확산 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혁신가이드라인을 두고 8월 5일 “대기업에 법인세 감세 혜택을 주면서 그로 인해 생기는 재정 손실을 메꾸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또 8월 8일 기재부가 향후 5년간 ‘16조원+α’ 규모의 국유재산을 민간에 매각하는 방안을 내놓자 8월 10일 페이스북에 “민영화와 특권층 배불리기이며 국유재산법을 개정해 민영화 시도를 저지하겠다”고 했다. 이 의원은 지난 6월 국회 입성 후 1호 법안으로 민영화를 추진할 시 사전에 국회에 보고토록 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여당과 정부는 정치 공세라고 반박한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가 재정 준칙 마련, 조세 개편, 국유재산 매각 등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강화하려는 것은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조치”라고 했고, 추 부총리는 이 의원의 ‘민영화’ 비판을 “뜬금없는 지적”이라고 했다.
■논란은 정부가 키웠다
정부는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지만 민영화 우려와 반발이 커지는 이유는 뭘까. 박용석 위원은 “윤석열 정부의 경쟁 체제 추진은 곧 민간사업 비중과 참여의 확대를 의미한다”고 했다. 박 위원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 담긴 에너지와 철도 등 추진 항목들을 근거로 제시했다. 에너지 국정과제에는 민간 액화천연가스(LNG) 도입 확대 및 LNG 직수입자 간 국내 재판매 허용, 민간 중심 해외 자원개발 및 민간 해외 탄소시장 진출, 경쟁·시장 원칙 기반 전력시장 구축 등이 포함돼 있다. 철도 분야 국정과제에는 철도 관제권 분리와 철도차량 등의 민간 참여도 제시됐다. 박 위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정의하는 민영화의 개념은 공공기관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민간에 이양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 외에도 공공서비스 영역에 민간사업 비중이 늘거나 민간의 참여가 늘어나는 것 또한 ‘민영화의 과정’으로 본다”고 했다.
과거 공공기관 민영화 추진으로 사회적 논란이 컸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의 학습효과도 지금의 민영화 우려와 반발을 키우는 요인이다. 미국산 광우병 사태로 수세에 몰린 MB 정부는 ‘은밀한’ 민영화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6월 22일 특별기자회견에서 “가스, 물, 전기 이런 것들이 전부 민영화된다고 하는데, 이런 것은 애초부터 민영화 계획은 전혀 없다. (그런 주장들은)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MB 정부는 민영화 우려를 근거 없는 헛소문이라고 일축했지만 이후 국가기록원이 민주당 이재정 의원에게 제출한 캐비닛 문건 등으로 밝혀진 내용을 보면,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그해 4월에 한전의 발전회사 2개 내외를 우선 민영화하는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도로공사를 경영권 민영화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 반대 여론을 의식해 ‘공공기관 개혁’이란 명칭 대신 ‘공기업 선진화’라고 불렀다.
마찬가지로 공공기관의 부채 감축과 자산 매각을 추진한 박근혜 정부에서는 한국석유공사 사옥을 매각한 사례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실패 영향으로 부채가 급격히 쌓인 공사는 기재부 지침에 따라 지은 지 2년밖에 안 된 울산 신사옥을 2017년 1월 코람코자산신탁에 매각한다. 코람코자산신탁은 민간 리츠업계 압도적인 1위 업체로, 재무부 장관을 지낸 이규성씨가 설립해 초대 회장을 맡고 이후 회장들도 모두 재무부 관료 출신이 차지한 것으로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됐다. 특히 올해 3월 사외이사로 합류한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부총리로 있었다. 석유공사 사옥은 팔렸지만 소속 직원들이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았고, 공사는 다시 이 건물에 임대료를 주기로 하고 직원들을 상주시켰다. 감사원은 2018년 석유공사 울산 사옥 매각과 관련해 “평균 임대료로 봤을 때 석유공사가 앞으로 15년 동안 585억원의 손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민영화 우려와 논란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5월 17일 국회에서 박찬대 민주당 의원이 ‘지금도 인천공항공사의 지분 40% 정도를 민간한테 팔 의향이 있나’라고 재차 묻자 “그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김 실장은 2013년 자신이 쓴 <덫에 걸린 한국경제>에서 “정부가 보유한 인천공항과 한국철도공사 지분 일부를 매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재명 의원과 추경호 부총리 간 공방의 단초를 제공한 기재부의 국유재산 매각 방안도 정부가 논란을 키운 사례라 볼 수 있다. 기재부가 민간에 매각하겠다고 한 9개 국유재산 중 강남구 소재 6건과 성북구 소재 1건 등은 매각 제한 대상이다. 국유재산 처분 기준에서는 처분형 재산일 경우에만 매각이 가능하도록 돼 있는데, 해당 재산들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강남의 ‘알짜배기’ 건물을 굳이 부동산 하락세에 매각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계속 갖고만 있어도 자산가치가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국유지인데 매각한다는 게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는 국유재산 매각 이슈에 대해서는 오해와 왜곡이 많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매각 대상인 9개 건물의 연간 임대료 수입이 100억원 안팎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이미 공개한 유휴·저활용 국유재산 매각·활용 활성화 방안을 자세히 보면, 강남 신사동 ‘신사 나라키움’ 건물 11억원 등 전체 연간 임대료 수입이 25억원에 그친다”며 “또 매각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공공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는 모두 매각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소위 ‘알짜’로 불리는 건물 역시 당장 8월에 매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매각 TF를 구성해 향후 5년 안에 최대한 비싸게 팔 수 있는 방안 등을 고민하겠다는 것인데, 마치 노른자위 건물을 당장 싸게 팔아 재벌이나 대기업 특혜를 주려는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고 했다.
■공공기관 부채, 어떻게 봐야 하나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은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 즉 부채 규모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판단에서 나왔다. 지난 6월 기재부가 ‘재무위험기관’으로 선정한 한국전력의 올 6월 말 현재 연결기준 부채(부채총계)는 1년 전보다 28조5000억원 늘어난 165조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21일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 부채가 지난 5년간 급증해 작년 말 기준 583조원에 이른다”며 공공기관 재무 개선을 골자로 한 혁신을 주문했다. 하지만 부채 규모를 기준으로 한 공공기관 재정 운용 진단은 방향성에서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동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장은 “공공기관 개혁 방안의 본질은 공공기관 자체 감사 기능을 키우고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것인데, (혁신가이드라인에서) 그런 내용은 제시되지 않고 부채 총액만 가지고 방만 경영 기관들이라고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 불신을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공공기관의 재무 상태는 부채비율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을 보면 국내 전체 공공기관 350곳의 부채는 2016년 말 499조원에서 지난해 말 583조원으로 17%(84조원) 늘어났지만, 부채비율은 2017년 157.2%에서 2021년 151%로 낮아졌다. 공공기관 재무관리를 지적하고 있는 기재부도 윤석열 정부 출범 이전인 올해 2월 펴낸 보도자료에서 “주요 10개 공기업의 대표적인 재무 건전성 지표인 부채비율이 2021년 상반기 197%로 2017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2017년 이후 매년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재무 건전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일각에선 공공기관의 몸집 줄이기와 동시에 감세에 시동을 건 윤석열 정부가 세수 감소라는 현실에 직면할 경우 공공기관 자산 매각 규모를 예상보다 늘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용석 위원은 “윤석열 정부의 지출 구조조정과 재정건전화 등 ‘작은 정부’와 ‘긴축재정’ 기조로 인해 즉각적인 영향을 받게 될 분야는 공공서비스 영역”이라며 “당장은 공공기관의 비핵심 자산에 대해서만 매각을 강조하고 있지만, 세수감소로 재정지표가 나빠질 경우 핵심과 비핵심 자산 가릴 것 없이 매각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기재부가 지난 5월 각 부처에 전달한 ‘2023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추가 지침’에서는 재량지출 예산을 최소 10%를 의무적으로 삭감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올해 예산 기준 30조원이 넘어간다. 재량지출은 공무원 인건비, 국고 보조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비 등 각 부처가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한 지출이다. 공공기관이 대부분 집행하는 사회간접자본과 사회복지 사업 등에서 사업 비중이 줄고 민간의 참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에 공공기관의 역할과 자산을 넘기겠다는 것 자체가 민영화인데, 정부 당국이 ‘민영화는 절대 아니다’라고 우기는 것은 사실을 감추려 하는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아마도 ‘민영화라는 프레임에 갇히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백번 양보해 공공기관 부채가 문제라고 했을 경우에도, 이는 공공기관이 민간이 하지 않는 공공의 역할과 사회적 가치에 집중한 결과물로 봐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감세를 할 게 아니라 증세를 해서 공공기관 재무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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