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블랙핑크·아이브·소녀시대..올 여름은 걸그룹
기사내용 요약
1~4세대 동시에 음원차트 톱10 장악
밀리언셀러 잇단 예고…음반 판매량 약하다는 편견 깨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위 뉴진스 '어텐션', 2위 블랙핑크 '핑크베놈', 3위 아이브 '애프터 라이크', 4위 뉴진스 '하이프 보이', 5위 소녀시대 '포에버 원', 6위 WSG워너비(가야G) '그 때 그 순간 그대로'(그그그), 7위 아이브 '러브 다이브', 8위 WSG워너비(4FIRE) '보고싶었어', 9위 있지(ITZY) '스니커즈', 10위 뉴진스 '쿠키'….
지난 26일 자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의 일간차트 톱10 성적표. 바야흐로 걸그룹 천하다.
원래도 걸그룹이 음원차트에서 강하기는 했다. 그런데 최근 차트는 K팝 1~4세대 걸그룹이 모두 덩굴처럼 얽혀 있는, 좀처럼 보기 드문 상황이다. 대표적 여전사 이미지의 1세대 걸그룹 베이비복스 출신 윤은혜(WSG워너비 멤버), 국내 최장수 현역 걸그룹인 2세대 대표 소녀시대, K팝 간판 걸그룹인 3세대 블랙핑크, Z세대 중심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4세대 있지·아이브·뉴진스까지.
톱20까지 살펴도 걸그룹 천지다. 11위 (여자)아이들 '톰보이', 12위 트와이스 멤버 나연 '팝!', 18위 에스파 '걸스', 19위 에스파 '도깨비불'이 차트 상위권을 장악하고 있다.
단언한다. 올해 여름의 대표적 키워드는 걸그룹이라고. K팝 걸그룹 역사서를 만든다면, 올해 섹션이 가장 두꺼울 것이다. 그런데 본래 여름은 걸그룹의 계절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걸그룹 관련 코드가 대중음악계 주요 이슈를 지배하고 있다.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의 특수성을 제외하고, 다른 K팝 관련 키워드를 삼켜버렸다.
지난달 초부터 주 단위로 쟁쟁한 걸그룹들이 컴백하거나 데뷔했다. 에스파, 있지, 뉴진스, 소녀시대, 블랙핑크, 아이브, 트와이스가 7~8월에 새 앨범을 낸 걸그룹 명단들이다.
특히 걸그룹의 고전적 키워드인 섹시함을 강조하지 않는 점이 눈길을 끈다. 지난 6월 프로미스나인을 시작으로 에스파와 블랙핑크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걸그룹이 청량을 강조했다. 코로나19에 대한 반대급부라는 분석과 함께 이제 걸그룹이 특정 이미지로 소비되는 시대는 끝났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수의 걸그룹 밀리언셀러 시대
그런데 블랙핑크가 한달여 만에 이 기록을 다시 깼다. 이들의 정규 2집 '본 핑크' 선주문량이 200만장을 돌파한 것이다. 지금과 같은 블랙핑크 기세라면, 더블 밀리언셀러 등극은 확실해보인다. '본 핑크'는 내달 16일 발매 예정으로 선주문 300만장이 넘을 것으로도 예상된다. 트리플 밀리언셀러에 등극하는 걸그룹이 탄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 리패키지 앨범을 제외한 단일 음반으로 트리플 밀리언셀러에 등극한 K팝 가수는 방탄소년단밖에 없다.
이와 함께 블랙핑크와 3세대 K팝 간판으로 통하는 트와이스 역시 지난 26일 발매한 미니 11집 '비트윈 원앤투'로 선주문 100만장을 기록하며 밀리언셀러를 예고했다. 트와이스의 JYP엔터테인먼트 직속 후배 걸그룹인 있지도 미니 5집 '체크메이트(CHECKMATE)'가 약 90만 장의 출고량을 기록하면서 다음 음반에선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하게 했다.
갓 데뷔한 신인 걸그룹 판매량도 막강하다. 지난 5월 데뷔한 르세라핌이 첫 앨범 '피어리스'로 초동 30만장을 기록하며 신기록을 세운 데 이어 3달 만에 뉴진스가 '뉴 진스'로 초동 31만장을 기록하며 또 데뷔 걸그룹 신기록을 경신했다. 두 팀은 각각 쏘스뮤직과 어도어 소속인데 이들 회사는 하이브(HYBEP) 레이블즈 소속으로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한동안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됐다.
그간 걸그룹은 음원 성적, 보이그룹은 음반 판매량에서 강하다는 것이 오랫동안 불문율처럼 이어져왔는데 걸그룹이 음반 판매량 측면에서도 힘을 발휘하면서 낡은 수식이 됐다.
강력한 4세대 걸그룹들
2018년 데뷔해 이미 글로벌 팬덤을 굳힌 (여자)아이들과 이달의 소녀(이달소), 지난해 '세븐틴'(SVT) 소속사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로 영입된 프로미스나인의 경우 분류 기준에 따라 3.5세대로 영역 또는 4세대에 포함되기도 한다. 블랙핑크가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 역시 이르면 올해 안에 신인 걸그룹 론칭할 것이라는 소문도 파다하다.
여기서 뉴진스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민희진 어도어(ADOR, All Doors One Room의 약자) 대표이사가 지난해 말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출연했을 당시 전개한 '정반합(正反合)' 삼단계 논리를 K팝 걸그룹 역사에 거칠게 적용해보자.
정반합은 헤겔의 변증법(辨證法)을 도식화한 논리다. 변증법은 모순 또는 대립을 근본원리로, 사물의 운동을 설명하는 논리. 기존 기본적인 구도가 정(正)이라고 할 때 시간이 흐른 뒤 이것과 상반되는 반(反)이 만들어진다. 이 정(正)과 반(反)이 갈등을 겪으면서 합(合)으로 초월한다는 논지다.
S.E.S·핑클로 대변되는 1세대는 기획사에서 만들어낸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었다. 다소 비현실적이었다. 소녀시대·원더걸스·카라가 대표인 2세대는 친근함을 내세웠고 '국민 걸그룹'이라는 수식을 받게 됐다. 2세대는 정(正)이 된 1세대의 반(反)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한 때 '트레블'로 묶이기도 했던 트와이스·레드벨벳·블랙핑크 같은 3세대 K팝 걸그룹은 누군가의 롤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친근한 2세대의 반(反). 틴에이저들이 따라하고 싶은 우상으로서 역할을 했고 여전히 하고 있으면서 정(正)이 됐다. 반면 에스파, 있지, 아이브 같은 4세대 걸그룹들은 3세대의 반(反)이다. 세계관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팬덤이 '유희'를 즐기는 형태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근데 올해 데뷔한 4세대 르세라핌과 뉴진스는 '손민수하고'(웹툰 '치즈 인 더 트랩' 등장인물인 손민수가 주인공 홍설을 따라하는 것에서 유래한 말로 '따라한다'는 뜻) 싶은 선망의 대상이자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3세대·4세대의 정반합 특징이 덩굴처럼 엮이며, 데뷔하자마자 여러 세대로부터 팬덤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 걸그룹 트렌드는 세대 통합·연대
뉴진스가 대표적. 1990년대 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 1980년대 아이돌을 선망하는 이들이 방에 걸어놓았을 법한, 청량하고 청순한 이미지들. 세련된 동시에 담백한 팝 댄스('어텐션')·뭄바톤(Moombahton)과 일렉트로팝(ElectroPop)의 근사한 조합('하이프 보이')·통통 튀는 신스 댄스 팝('쿠키')·아련하면서도 사랑스러운 R&B('허트') 등의 명료한 음악. 몽글몽글한 'Y2K'(190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유행한 밀레니얼) 감성과 Z세대 감성의 아련하고 낭만적인 만남. 지금까지 K팝 걸그룹 아이돌이 각각 잘해온 것들을 민희진 식 감성으로 애틋하게 해석해 더 맵시 있게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뉴진스에게서 서현진이 아이돌로 활약했던 1.5세대 걸그룹 '밀크(M.I.L.K)'를 연상했다는 'K팝 고인물'들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하이틴의 뉴트로'라고 명명할 수 있는 비주얼 디렉팅이 영리한 한수다. 예전 향수를 Z세대 앞에 아무렇지 않게 배치하면서 세대 간 음악적 연대(連帶)를 심어놓는 선순환이 돋보인다.
아이브 역시 마찬가지다. '애프터 라이크'로 티아라·레인보우·나인뮤지스 등 2009~2010년에 데뷔해 활약한 K팝 2세대 걸그룹을 현재 소환 중이다. 이 노래로 2세대 걸그룹 주요 트렌드 중 하나였던 '뽕짝 바이브'를 환기하고 있다. 시원시원한 안무가 맞물려 소속사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에 속해 있던 선배 2세대 걸그룹 씨스타의 4세대식 재림이라는 반응도 있다.
트와이스 역시 새 앨범 '비트윈 원앤투'와 타이틀곡 '톡댓톡'에 Y2K 감성을 가득 담았다.
일각에서는 최근 여름에 걸그룹이 잇따라 컴백한 것을 두고 '전쟁' '대결' 등의 표현을 쓴다. 온라인에선 블랙핑크가 '핑크 베놈'으로 트와이스를 저격했다는 등의 낭설도 떠돈다. 또 뉴진스의 '쿠키'에 대해 성적인 표현이라며 미성년자 멤버들을 성적대상화했다는, 기획자의 의도와 상관 없는 과도한 해석도 나왔다. 터무니 없는 주장이었는데 이 소문이 계속 퍼져나가자 어도어는 "'CD를 굽다'란 표현과 '쿠키를 굽다'란 표현이 같다는데 착안한 곡"이라고 설명하는 등 아이돌 기획사로서는 이례적으로 적극 해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직까지 K팝 걸그룹은 K팝 보이그룹에 비해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된다. 보이그룹에 비해 팬덤이 두텁지 않다는 판단착오로 쉽게 겨냥하고, 콘텐츠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해석 없이 편하게 재단한다. 최근 걸그룹을 좋아하는 여성 팬덤이 급격하게 늘어났는데 여성 간의 연대의 장이 K팝 팬덤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이와 함께 보이그룹보다 여성그룹 관련 콘텐츠 중에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잇따라 나오면서 K팝 팬덤 자체가 걸그룹에 쏠리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K팝 고인물을 자처하는 30대 후반의 여성 K팝 팬은 "꼭 여돌이여서 덕질 하는 건 아니고, 내가 좋아하게 된 팀이 여돌이였을 뿐 성별이 딱히 중요하진 않은 거 같다"고 말했다.
조혜림 플로(FLO) 콘텐츠 기획 매니저(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보이그룹의 경우 대부분 팬덤 중심, 특히 해외 팬덤 타깃의 독특하거나 강렬한 곡과 퍼포먼스를 선호하는 편이다. 또한 고정적인 여성 팬층의 다양한 니즈에 맞는 스타일링, 메이크업, 콘셉트 등 좀 더 마니악 한 요소가 많은 곡들이 타이틀을 차지한다"면서 "그에 비해 걸그룹들은 남녀노소 넓은 대중을 타깃으로 이지리스닝 곡들이 타이틀 곡으로 선택되고 있다. 걸그룹이 롱런하려면 여성 팬이 많아야 한다는 공식 아닌 공식이 있다. 최근 걸그룹들의 활약은 여성팬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형성돼 있다"고 해석했다.
"뉴웨이브인 뉴진스의 청량감과 00년대 노스텔지어, 그 나이에 어울리는 과함없는 편안한 스타일링. 아이브의 자신을 사랑하는 Z세대의 나르시시스틱과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 샘플링으로부터 피어나는 레트로의 앙상블. 15년간 소녀시대가 굳건히 지켜온 대중성은 성별과 나이에 구분 없이 귀를 집중시킨다"고 부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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